휘트니 휴스턴과 케빈 코스트너가 주연한 영화 ‘보디가드’가 뮤지컬로 환생했다. 1992년의 원작 영화를 관람한 관객이라면 알겠지만, 보디가드가 온 몸을 던져 톱스타를 경호한다는 변형된 ‘백마 탄 왕자’ 플롯 덕에 당시 전 세계 흥행을 주도한 영화가 ‘보디가드’다.

뮤지컬은 원작 영화의 줄거리에 휘트니 휴스턴의 명곡들을 삽입한 주크박스 뮤지컬로, 휘트니 휴스턴의 풍부한 음역대의 노래를 소화하기 위해 여주인공의 가창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반면, 남주인공은 단 한 곡밖에 노래를 부르지 않는 아이러니를 갖는다. 즉 여주인공이 뮤지컬 넘버의 대부분을 소화해야 하는 쏠림현상이 발생한다는 이야기다.

뮤지컬 <보디가드> ⒸCJ E&M

트리플 캐스팅 여주인공 가운데 한 명인 이은진(양파)은 십대 당시 휘트니 휴스턴의 노래로 오디션을 볼 때 제 2의 휘트니 휴스턴이 되고 싶다는 소망을 밝힌 적이 있다. 이런 그녀가 휘트니 휴스턴의 노래를 담은 뮤지컬에 데뷔한다는 건 오디션 당시의 소망이 뮤지컬 무대에서 이뤄졌음을 보여준다.

‘보디가드’의 무대 연출은 ‘아이다’의 마지막 장면을 연상하게 만드는 기법을 애용한다. ‘아이다’의 마지막 장면은 아이다와 라다메스 장군이 산 채로 매장되는 장면이다. 이때 무대는 그냥 암전이 아니라 카메라의 조리개가 좁아지는 듯한 무대 연출 기법을 활용한다. ‘보디가드’는 이런 ‘아이다’의 마지막 무대 마냥, 장면이 전환할 때 보통의 뮤지컬에서 애용되는 암전이나 무대 소품의 재배치가 아닌 조리개가 줄어드는 방식을 활용하고 있다.

뮤지컬 <보디가드> ⒸCJ E&M

뮤지컬에서 배우가 부르는 넘버는 가수가 콘서트에서 노래할 때와 큰 차이점이 하나 있다. 뮤지컬은 캐릭터의 대사를 노래로 대체한다는 장르적인 특징을 갖는다. 대사가 아니라 음악이라는, 언어보다 호소력이 짙은 넘버를 통해 주인공의 극적인 감정을 구현하는 장르가 오페라와 뮤지컬의 특징 아니겠는가.

‘보디가드’는 다른 뮤지컬과는 차별화된 특징을 갖는다. 타 뮤지컬이 캐릭터의 감정이 고조될 때 넘버를 부르는 것과는 다르게, ‘보디가드’의 1막은 뮤지컬 넘버가 시연되는 때가 여주인공 레이첼이 무대에서 노래할 때 많이 할애된다는 점이다. 2막에서는 타 뮤지컬처럼 캐릭터의 고조되는 감성을 노래로 구현하지만, 1막에서는 넘버 하나를 제외하고는 모두 레이첼이 무대에서 부르는 노래가 넘버로 구성됐다.

이는 서사적인 이해를 돕기 위해 극의 흐름을 대사로 촘촘하게 직조하기 위한 연출로 읽을 수 있다. 하지만 다른 관점으로 보면 여주인공의 독창을 감상하기 위한 자리로 전락할 수 있는 위험도 상존한다. 서사적인 흐름 가운데 여주인공의 감정을 극대화하기 위해 넘버가 사용된 게 아니라 여주인공의 무대 장면에서만 넘버가 활용되기에, 자칫하면 뮤지컬이 아닌 여주인공의 가창력을 감상하기 위한 콘서트장으로 비칠 위험성이 1막의 넘버 활용법에 존재한다.

뮤지컬 <보디가드> ⒸCJ E&M

서사적인 플롯의 부자연스러움도 지적하고 넘어가야겠다. 경호원 프랭크를 ‘극혐’에 가깝게 증오하던 레이첼이 1막 후반부에서 딱 한 번 구출된 후 비호감이 호감이 되는, 극적으로 변하는 심리적인 변화의 모티브가 도통 뮤지컬 가운데서 보이지 않는다. 이는 타 뮤지컬 ‘인 더 하이츠’에서 베니가 니나의 아버지에게 해고당했음에도 불구하고 베니가 니나와 입맞춤하는 개연성 부족과 맥락을 같이 한다.

CJ E&M은 글로벌 프로듀싱 1호 작품인 ‘킹키부츠’로 홈런을 날렸음에도 그 뒤를 이은 작품 ‘보디가드’는 ‘킹키부츠’에는 미치지 못하는 소포모어 징크스를 안고 가게 됐다.

늘 이성과 감성의 공존을 꿈꾸고자 혹은 디오니시즘을 바라며 우뇌의 쿠데타를 꿈꾸지만 항상 좌뇌에 진압당하는 아폴로니즘의 역설을 겪는 비평가. http://blog.daum.net/js7kei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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