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 보니 이번 주로 <썰전>이 200회를 맞았다고 한다. 4년이나 된 것이다. 호사다마라고, 하필 200회를 앞두고 <썰전>에 때 아닌 위기가 있었다. 다들 알다시피 JTBC 신년 토론에 출연해서 막무가내의 토론방식을 보인 전원책 변호사가 일으킨 파문이었다. 분명 더 떠들썩하게 200회를 자축할 수도 있겠지만 시작을 사과로 해야 하는 <썰전> 입장에서는 아무래도 조금은 조심한 흔적이 역력했다.

그렇지만 그 위기는 <썰전>의 유용함을 뿌리째 흔들지는 못할 것이다. 아직 끝나지 않은 정치의 시절, 채널A에서 <썰전>을 본 따 만든 <외부자들>라는 프로그램이 의외로 관심을 받을 정도로 정치, 시사 토크쇼의 수요가 엄청나기 때문이다. 분명 전원책 변호사의 잘못은 크고, 보통의 경우라면 하차도 당연한 일이겠지만, <썰전>은 시청자들의 비난을 온몸으로 안고 갈 작정을 한 것 같다.

JTBC <썰전>

그것은 시청자들 역시 크게 다르지 않을 듯싶다. 마음 한구석은 여전히 불편하지만 그렇다고 안 볼 수도 없으니 꾹 참자는 투로 보인다. 탄핵은 곧 대선이라는 엄중한 시국이 강제한 타협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어쨌든 그간 피디의 노고가 정말 컸음은 한 마디 칭찬을 하지 않을 수 없는데, 이날 그 피디가 등장했다. 비록 뒤통수만 나왔지만, 적절한 자막과 소심한 오디오로 출연한 장면이었지만 그 임팩트는 매우 컸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바로 손석희 사장과의 만남이었기 때문이었다.l

본래는 <썰전> 200회를 축하하는 메시지 정도를 딸 생각이었겠지만 피디 입장에서는 혹 떼려다 혹 붙인 격이기도 했고, 혹 떼려다 도깨비 방망이로 꿀잼을 얻은 횡재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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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석희 사장이 등장하는 장면에 애써 제목을 붙이자면 ‘알고 보면 <썰전> 최다 출연 손석희 사장님의 축하영상’이었다. <썰전>이 방송 이후 홈페이지에 제공한 방송 클립에는 큼지막한 하트가 있었다는 것은 빼도록 하겠다. 여하튼 손석희 사장이 최다 출연일 수밖에 없는 이유는 <썰전>이 뉴스를 다루기에 인서트로 자주 등장하기 때문이다.

통틀어 2분 남짓한 영상이었는데 이 짧은 출연에도 시청자 반응은 가히 폭발적이다. 손석희 사장은 공식적으로 화를 내지 않는 사람이라고 스스로 말한 바 있다. 그 말은 아주 많은 파생을 가능케 하는데 이를 테면 강요하지 않는 사람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분명 그럴 것이다. 그러나 <썰전> 영상을 보면 그 믿음에 의심을 갖게 된다.

손석희 사장은 자신의 말투로 보통의 축하 멘트를 먼저 내놓았다. 그렇게 끝나려는 순간 “다만”이라는 부사가 등장했다. 말을 이어가던 손사장은 느닷없이 <썰전> 인터뷰와 일문일답을 시작했다. “녹화를 월요일에 한다면서요?” 그 영상의 한쪽에는 인터뷰하던 피디 신체의 일부분이 등장하면서 자막이 추가됐다. “오들오들”이란 의태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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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걸 하루나 이틀 정도 늦추면?" (...) “제작진이 굉장히 힘들다면서요?” 여전히 피디는 듣고 있을 뿐이었다. 사실 대답이 필요 없었을지도 모른다. 손사장의 질문은 이어졌다. “도저히 못하나요?” 말인즉 하라는 것이다. 그때야 비로소 피디의 대답이 나왔다. “노력해보겠습니다” 그러자 손사장은 피식 웃었다. 피디도 따라 웃었지만 웃는 게 웃는 게 아닌 웃음이었던 것은 분명하다.

그 다음 말 때문에 더욱 그러했다. "대개 노력하다보면 되거든요“ 쐐기를 박는 말이었다. 전세를 바꿔볼 생각이었던지 피디가 다시 질문을 던진다. ”<썰전>에서 뵙기는 어려운 거죠?“ 손사장 대답 ”네“ 시쳇말로 단호박 대답이었다. 김이 새야 하는 대답이었는데 피디는 ”감사합니다“라고 했다. 엥? 섭외에 실패했는데 감사하다니. 너무 긴장해서 그저 습관처럼 튀어나온 생활의 인사말이었거나 아니면 진심으로 손사장이 <썰전>에 나와 주지 않는 것이 감사하다는 뜻인지 헛갈렸다.

JTBC <썰전>

전혀 근거는 없지만 어쩌면 그 피디는 과거 손석희 교수에게 수업을 받았던 학생일지도 모른다. 그때 손교수의 수업은 빡세기로 소문났다고 한다. 강의 제목은 ‘말하기와 토론’이었지만 학생들 사이에서는 ‘말하기와 토하기’로 통했을 정도라니 알 만하다. 사람 좋은 미소를 잃지 않으면서 <썰전> 피디를 몰아가는 자세는 딱 그 ‘토하기’를 각오하라는 말이나 뭐가 다른지 모를 일이다.

사실 그것은 <썰전>에 무리지만 꼭 필요한 부분이었다. 쏟아지는 뉴스와 속보 속에 <썰전>의 이슈 따라잡기가 쉽지 않아 그간 추가 녹화를 하는 경우가 있었다. 그래서 종종 시의성이 식은 뉴스를 다루기도 한 점이 시청자들의 불만 아닌 불만이었던 것을 손석희 사장이 넌지시, 그야말로 넌지시 독려했던 것이다.

요즘 <뉴스룸>을 진행하면서 준비가 충분치 못한 기자를 나무라는 손석희 앵커의 모습이 화제가 되곤 한다. 그런가 하면 <뉴스룸>이 끝나는 지점에서 시작되는 소셜 라이브를 통해서는 후배 기자들에게 역으로 당하는 모습도 역시 눈길을 끌었다. 이래저래 손석희 앵커의 일거수일투족이 모두 화제가 되고 있지만 이번 <썰전> 영상은 그 중에서도 재미로나 의미로나 최고였다. 의도했다면 유재석도 울고 갈 예능감이겠지만 그럴 리는 없고, 그저 외유내강 아니 외유내독의 품성을 들켜버린 것 아닐까 싶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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