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웃기지는 않았다. 이번 주 <1박2일>에서 강호동이 몸을 날렸을 때다. <1박2일>은 폭우가 쏟아지는 가운데 저녁밥을 건 진흙탕 3종 경기 복불복을 펼쳤다. 그중 하이라이트는 10바퀴 돌고 3단 뛰기였다.

강호동은 처음부터 진흙탕을 보면 뒹굴어야 한다며 분위기를 잡았다. 멤버들은 쏟아지는 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진흙탕에 널브러졌다. 그때 강호동이 번외경기로 포토제닉상을 제안한다.

얼마나 멀리 뛰느냐와 상관없이 무조건 웃기게 뛰는 것이 중요한 몸개그 게임이었다. 그 제안은 받아들여졌다. 마침내 번외경기가 시작됐을 때 강호동이 한 것은 극히 평범한, 100% 예측가능한 몸 던지기에 불과했다.

국민MC라는 타이틀에 값하는 번뜩이는 천재성이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도 없었을 뿐더러, 일반적으로 웃기는 수준의 개그감각조차도 없었다. 그저 몸을 던졌을 뿐이다. 이런 몸개그는 의욕은 충만한데 감각은 모자란 학생들에게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에 불과했다. 실망스러웠다.

▲ 8월 9일자 <1박 2일> 화면 캡처.
하지만 거부할 수 없는 강호동의 충성맹세

강호동은 자신이 포토제닉상을 제안해놓고 상념에 빠졌다. 반드시 웃겨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일 터. 그러더니 갑자기 ‘신인으로 돌아가, 신인으로!’라고 하면서 얼굴을 비롯한 온몸에 진흙을 바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미친 듯이 몸을 던져 엎어지고 자빠졌다.

이미 말한 것처럼 웃기지는 않았지만 강호동의 진심은 느껴졌다. 예능 패권 시대의 양대 맹주 중 하나인 국민MC 강호동이 진흙을 처바르고 미친 듯이 몸을 던지는 모습. 그것은 시청자에 대한 ‘충성맹세’로 보였다.

브라운 아이드 걸스는 ‘아브라카다브라’에서 사랑을 위해서라면 ‘뭐라도 난 하겠어. 더한 것도 하겠어’라고 노래한다. 강호동은 온몸으로 ‘시청자를 위해서라면 뭐라도 난 하겠어, 더한 것도 하겠어’라고 말하고 있었다.

이것이 강호동과 <1박2일>을 살린 정신 중 하나다. 한때 식상함에 빠져 쇠락해가던 <1박2일>은 지난 겨울 야생 캠프를 하면서 각오를 다졌다. 그때 멤버들이 보여준 처절함에 놀란 평자들은 <1박2일>이 지나치게 가혹하다는 글들을 쏟아냈다. 물에 빠졌을 때도 위험하다는 둥, 가혹하다는 둥 비난이 일었다.

하지만 <1박2일>은 ‘시청자를 위해서라면 뭐라도 난 하겠어’ 정신으로 밀어붙였다. 그리고 그 한 가운데에는 ‘예능의 정석‘으로 무장한 강호동이 있었다. 강호동의 정석은 간단하다. ’‘물을 보면 빠져라, 진흙탕을 보면 뒹굴어라’.

과거의 연예대상 MC들 중 스튜디오에서 편하게 앉아 깔끔한 진행을 고수했던 사람들은 모두 하락세에 빠졌다. 야생에서 몸을 던진 두 사람, 즉 유재석과 강호동만이 국민MC로 성공할 수 있었다.

젊은 후배들보다도 더욱 강하게 몸을 던지는 강호동을 보며, 비록 웃기지는 않았지만 그를 지금의 성공으로 이끈 각오를 느낄 수 있었다. 끊임없이 몸을 낮추고 초심으로 돌아가 시청자를 위한 삐에로가 되겠다는 정신. 시청자를 위해서 이렇게 몸을 던지는데 그를 어떻게 미워할 수 있으랴. 강호동의 충성맹세는 거부할 수 없었다.

▲ 8월 9일자 <1박 2일> 화면 캡처.
강호동의 한계와 장점

강호동의 한계는 분명하다. 안 웃긴다. 이 점 때문에 그가 연예대상을 탈 때마다 논란이 일어났던 것이다. 과거 <X맨>의 ‘당연하지’ 코너에서 가수보다도 못 웃기는 강호동을 보며 안쓰러웠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하지만 강호동에겐 그것을 상쇄하는 힘이 있다. 이번에 진흙탕 3종경기에서 그 힘의 한 자락이 보였다. 그것은 흐름을 읽는 능력, 그리고 냉정하게 판단하는 능력이다.

강호동은 복불복 게임을 시작하며 지금이 진흙탕에서 화끈하게 널브러져야 할 때라는 걸 직감했고, 또 게임을 하던 중에 번외경기가 필요하다는 걸 깨닫고 제안했다. 폭우와 진흙탕이라는 주어진 상황을 최대한 이용할 수 있는 판단력이었다.

그 속에서 본인이 직접 못 웃기는 건 애석한 일이지만, 그는 웃기는 판을 펼칠 줄 알았다. 사람들이 게임을 접으려 하자, 지나치게 몸을 던진 후유증으로 정신을 못 차리는 가운데에서도 ‘아냐 아냐 아냐 김C 김C 김C'라며 김C를 지목한 것이다.

김C는 주저주저하면서 나서더니 결국 웃겼다. 강호동이 그 순간에 김C를 지목하지 않았으면 발생하지 않았을 웃음이었다. 멤버들 중에 그 상황에서 누가 웃길 수 있는 지를 그 경황 중에도 정확히 판단한 것이다.

강호동이 이번에 보인 충성맹세와 판단력. 시청자가 왜 다른 감각적인 재담꾼 MC들을 놔두고 투박한 강호동에게 정을 느끼는지, 강호동이 왜 그렇게 성공했는지, 그 이유의 일단을 보여줬다.

문화평론가, 블로그 http://ooljiana.tistory.com/를 운영하고 있다. 성룡과 퀸을 좋아했었고 영화감독을 잠시 꿈꿨었던 날라리다. 애국심이 과해서 가끔 불끈하다 욕을 바가지로 먹는 아픔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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