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홍 전 YTN 사장의 사퇴로 ‘YTN사태’가 해결될 것이라는 기대와는 달리, 구 전 사장 사퇴를 기점으로 YTN이 다시 격랑을 맞고 있다.

인사를 통해 임기가 보장된 보도국장을 교체하고 임장혁 <돌발영상> 팀장을 대기발령 조치하는 등 임시 대표이사를 맡은 배석규 전무의 일방적인 행보에 대해, 전국언론노동조합 YTN지부(지부장 노종면)는 배 전무에 대한 불신임투표를 진행하는 동시에 법적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밝혀, 파문은 더욱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

▲ 배석규 전무 ⓒ송선영

민주당, 민주노동당, 창조한국당 등 정치권에서도 YTN 사장 공모 과정을 앞둔 배 전무의 일방적 태도에 대한 비난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어 단순한 노사 갈등 차원을 넘어 ‘낙하산 논란’과 같은 사회적 이슈로 부각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배 전무는 지난 5일 보도국장을 포함한 실·국장들에게 보직사퇴서 제출을 요구했다. 10일 인사를 통해서는 노사 협약에 따라 보도국원들의 선거를 통해 선출돼 임기가 보장된 보도국장을 교체했으며, 회사 쪽의 징계로 방송되지 않다 최근 부활한 <돌발영상>의 임장혁 팀장을 경영기획실 인사팀으로 3개월 대기발령 조치했다.

잇단 강경 행보… “정권에 잘 보여야 사장 된다고 보는 듯”

배 전무의 최근 잇단 강경 행보는, 사장에 출마하기에 앞서 보도국 내부의 기강을 세우기 위한 것이라고 보는 시각이 많다. 보도국 내부 기강 세우기에 실패한 구 전 사장과는 달리, 인사권을 발동해 내부를 다잡아가는 모습을 청와대 쪽에 보이고 싶어한다는 것이다. 그는 지난해 5월 구본홍 전 사장과 함께 사장 공모에 응모한 바 있으며, 내부에서는 다음 사장 공모에 참가할 것이라는 소문이 돌고 있다.

앞서 YTN노조는 지난 5일 성명을 통해 “직무대행에게 허락되는 소신은 능력 있는 후임 사장이 투명하게, 조속히 선임되도록 최선을 다하는 것이지, 마치 사장이 된 것처럼 권한을 행사하는 것이 아니다”라며 “사장 직무대행 역할을 맡았다면 사장 자리에 욕심이 없으며 추후 사장 공모에 나서지 않겠다는 입장부터 분명히 밝히라”고 강조한 바 있다.

노종면 지부장은 “배 전무는 정권에 잘 보여야 사장이 될 수 있다고 보고 있으며, (잇단 강경 조치는) 정권의 코드에 맞추기 위한 과정이 아닌가 생각된다”며 “선·후배간의 인간적 관계나 언론인의 상식과 양심, 회사의 미래 등을 무시하고 독주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다른 노조원도 “고의적으로 노조를 자극하기 위해 계속 문제를 일으킨다는 관측도 있고, 이러한 행보를 청와대 쪽에 보여 자신을 과시한 뒤 사장이 되고 싶은 마음이 있는 것 같다”며 “내부 구성원들도 구본홍씨가 차마 하지 못했던 것들을 서슴없이 하는 것을 보고 ‘아무리 사장 욕심이 있다 하더라도 어떻게 이럴 수 있냐’며 괘씸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노조원도 “지금 배 전무가 임시 대표이사로서 해야 할 일은 빠른 시일 내에 후임 사장 인선 과정을 통해 경영 공백을 최소화 하는 것”이라며 “YTN 출신인 배 전무가 적어도 언론인으로서 소양이 있다면 이 같은 일은 할 수 없다. 이는 결국 YTN 사장이 되기 위해 후배들은 안중에도 없고 정권에 아부해 이익을 얻으려는 것”이라고 일갈했다.

“구본홍 그 이상으로 혹독하게 해줄 것”

▲ 서울 남대문로 YTN타워 ⓒ미디어스

배 전무의 이 같은 행보에 대한 비난 여론도 높다.

최상재 언론노조 위원장은 “최근의 인사 조치는 노사 간의 단체협약과 내부의 관례를 무시한 상식 밖의 월권으로 원천무효”라며 “이는 <돌발영상>이 언론법 날치기 통과 이후 언론법을 비롯해 정권에 대해 비판하자 이를 적극 대응하기 위해 나선 배석규의 정체성을 보여준 것”이라고 비난했다. 이어 “(이같은 행보를 계속 보일 경우) 구본홍 그 이상으로 혹독하게 해줄 것”이라고 경고했다.

민주당 노영민 대변인은 브리핑을 통해 “전임 구본홍 사장이 정권이 부여한 임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자 자진사퇴라는 방법으로 도중하차 시킨 정권은 이제 사장 직무대리를 앞세워 기어이 YTN의 입을 틀어막아 보겠다는 심산인 모양”이라며 “이런 엄청난 결정은 정권의 뒷배 봐주기가 없다면 불가능한 일로 정권의 방송장악 음모에 YTN이 또다시 제물이 되려는 모양”이라고 맹비난했다.

민주당 소속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 의원들도 이날 성명을 내어 “이번 조치는 노사간 단체협약을 깡그리 무시하고 보도국을 직접 통제해 정권에 비판적인 보도를 말살하고 보도전문 방송의 공공성과 공정성을 뿌리부터 거세하겠다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진보신당은 이날 논평을 통해 “YTN 사측의 폭거이자 방송을 통째로 집어 삼키기 위해 소위 ‘미운털’을 뽑아내려는 정권의 의도가 노골적으로 드러난 것”이라고 밝혔으며, 민주노동당도 브리핑을 통해 “단순한 인사발령이 아니며 향후 YTN을 국민의 방송이 아니라, 정권의 방송으로 만들려는 시나리오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임을 알 수 있다”고 일갈했다.

창조한국당도 “‘대행’이라는 완장에 도취된 자가당착적 행태라고 밖에 볼 수 없다. 배 대행은 ‘대행’의 의미가 무엇인지조차 생각지 못하고 보도국 장악을 시도하고 있으며, 스스로 언론인인지 정권의 하수인인지조차 구분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노조, 가처분 신청 및 민·형사상 소송 제기 예정

이날 YTN노조는 △임장혁 팀장에 대한 대기발령 무효 통보 △보도국장 선거제 폐지 및 임명제 환원 조치 불법 및 무효 통보 △정영근 국장에 대한 전보 발령 무효 통보 등의 공문을 변호인단의 자문을 거쳐 배 전무 앞으로 보냈다. 또 오는 12일과 13일 이틀에 걸쳐 전 노조원을 대상으로 ‘배석규 직무대행 신임 여부 투표’를 진행한다.

YTN노조는 이 밖에도 이번 인사 조치와 관련해 가처분 신청과 민·형사상 소송을 제기할 방침이다.

▲ 배석규 전무의 인사 조치와 관련해, YTN노조가 10일 저녁 서울 남대문로 YTN타워 17층 대회의실에서 대의원대회를 열고 있다. ⓒYTN노조

배석규 전무의 잇단 강경 행보를 둘러싼 일련의 과정들은 ‘낙하산 사장’ 문제로 시작된 ‘YTN사태’와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과거, 이명박 대통령의 언론 특보 출신인 구본홍씨가 사장으로 오는 것을 반대하면서 YTN사태가 시작되었다면, 지금은 청와대와 직접적인 연결 고리가 없는 배 전무 스스로가 인사권을 휘둘러 보도국을 ‘장악’하려 한다는 성격이 짙다. 그러나 과거 구본홍 반대 투쟁과 배석규 전무의 행보 모두 인사, 징계 등의 조치를 통해 보도에 영향을 줘 ‘공정보도’를 할 수 없는 환경을 만들고 있다는 점에서는 공통점이 있다.

YTN사태 당시, 청와대 고위관계자를 비롯한 정부 관계자 등이 YTN사태에 노골적으로 개입했다는 정황이 드러나 큰 논란이 된 바 있다. 아직까지는 배 전무의 행보에 대해 ‘정권 차원의 언론 장악 노골화’ 라기보다는 사장 공모에 앞서 개인적인 욕심에 인사권을 행사했다고 보는 시각이 많다. 그러나 배 전무가 이번 인사 조치를 시작으로 보도국을 재편해 보도에 영향을 주고, 정권 비판적인 보도를 축소하고, 노조 활동에 앞장선 노조원들을 징계하려 한다면, 사장 공모 과정에서 또 다시 ‘정권과 결탁해 YTN을 손보려 한다’는 낙하산 논란이 일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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