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노무현 대통령과 참여정부에 누구보다 날선 비판에 앞장섰던 전여옥 입에서 인간 노무현을 인정하는 말이 나오니 여간 어색한 게 아니네요. 사람이 변한 걸까요? 아니면 시대상황이 그만큼 변한 걸까요?

전여옥 (채널A ‘외부자들’)

내 눈이 간사해서 그런지 몰라도, 채널A 시사프로 '외부자들'에 출연 중인 전여옥 얼굴이 예전에 비해 한결 푸근하고 편안하게 보이긴 하더군요. 그것까지 부인하고 싶진 않습니다. 세칭 '오크' 시절에 비하면 상전벽해 내지는 격세지감이라고나 할까요?

그러나 대부분의 노무현 지지자들에게 전여옥은 "미숙아는 인큐베이터에서 키운 뒤에 나와야 생명 유지 가능" 발언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증오와 혐오의 대상에 다름 아니었습니다. 도저히 용서할래야 용서할 수 없는 인간폐기물같은 존재?

그런 전여옥의 입에서, "노무현은 우리가 불편할 정도로 솔직한 대통령", "시대를 앞서갔고 서민적이고 대중적인 대통령이었다", "그동안 나도 많이 변했다. 노무현을 우리의 대통령이라고 인정해야 한다"는 등의 말들이 급작스레 쏟아져 나왔으니 당황스러울 수밖에요.

전여옥을 불편 불쾌하게 생각했고 그를 비판하는 글을 많이 썼던 사람으로서, "나도 많이 변했다"는 그의 말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것인가, 아니면 정치적 스탠스에 따라 또다시 바뀔 수 있는 립서비스로 치부할 것인가는 쉽게 답하기 어려운 난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왜냐면 이 문제가 단순히 인간 전여옥에게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은 과연 달라질 수 있는가? 따위의 담론과도 연결되기 때문입니다. 달라질 수 있다면 전여옥의 변화도 가능할 것이고. 그 반대라면 연기한 게 되겠지요.

그 전에 문제의 전여옥 발언이 나오게 된 경위부터 잠깐 살펴볼까요? 사실 이것은 진행자인 남희석이 전여옥을 위해 판을 깔아준 거나 다름없습니다. 토론하던 주제 하나가 매듭되기가 무섭게 남희석이 끼어들어 갑작스레 그에게 '인큐베이터 발언'을 던졌으니까요.

3일 밤에 방영된 '외부자들'을 라이브로 보신 분들은 느꼈겠지만, 전여옥은 남희석의 돌발질문에 전혀 당황하거나 놀라지 않았습니다. 대신 마치 순서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처럼 차분하게 자신의 과거발언을 해명하기 시작했지요.

물론 짜여진 대본에 따라 물음과 답을 주고받았으니 충분히 그럴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작가와 연출자에게 어떤 식으로 진행될 것이란 설명도 미리 들었을 테고요. 그런데 이처럼 돌연하고 뜬금없는 질문을 작가 혼자서 삽입시켰을까요?

혹시 거기에 전여옥의 생각이 개입된 건 아니었을까요? 이 자리를 빌어 과거의 굴레를 벗고 새로운 이미지로 어필하고 싶다는 전여옥 개인의 희망과 부탁을 작가가 받아들인 건 아니었을까요?

이것을 따져 묻는 이유는 자신에게도 흉터로 남아있는 "노무현 인큐베이터" 발언을 전여옥이 한 번은 반드시 털고 넘어가야 할 거리로 인식했을 수 있고, 그래서 '노무현 재평가' 발언도 그런 맥락에서 사전에 계획된 것이었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전여옥은 바뀐 자신의 생각을 이참에 TV 브라운관을 통해 고해성사하고 싶었을지도 모르지요. 최근 책을 출판하고 새로운 행보를 이어가고 있는 자신에게 유리한 기반을 조성하고자 이미지 세탁을 하고 싶었을 수도 있고요. 열길 물속도 모르는 판에 전여옥의 속을 어떻게 알겠습니까마는.

생각컨대, 전여옥의 변화가 진짜냐 가짜냐, 그게 중요한 건 아닐 겁니다. 문제는 사람들이 그를 어떻게 받아들일 것이냐 하는 거지요. 진심이라고 받아들이는 이에게는 진심일 것이고, 거짓으로 받아들이는 이에겐 여전히 거짓일 테고 말입니다.

우리는 서로에 대해 외부자들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말은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나 자신도 수 십 번 변하거늘 어찌 타인의 진정성을 함부로 논하고 멋대로 재단할 수 있겠습니까.

글을 맺기 전에 살아온 경험에 비추어 한 마디 보태자면, 전여옥의 변화된 인식과 바뀐 말에 대해 성급하게 단정하기 전에 짐짓 거리를 두고서 전여옥의 굴곡진 인생을 느긋하게 완상하는 여유도 때론 필요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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