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삼 전 대통령이 김대중 전 대통령 병문안한 것을 두고 언론은 ‘애증의 두 정치인이 반목을 청산하고 화해했다’고 보도했다. 조선일보는 11일자 사설을 통해 ‘김영삼씨가 위중한 병석의 김대중씨를 찾아가 이뤄진 이번 화해가 두 정치가 사이의 화해를 넘어서서 아직도 지역간의 단절과 대립의 두터운 벽을 넘지 못하고 있는 이 나라가 더 큰 통합으로 가는 시작이 되었으면 한다’는 바람까지 더한다.

▲ 경향신문 8월 11일자 1면.
언론이 화해라고 단정한 사실의 기초는 문병을 마친 김영삼 전 대통령이 ‘두 분이 화해한 것으로 봐도 되느냐’라는 기자들의 질문에 답한, “이제 그럴 때가 됐지 않느냐, 그렇게 봐도 좋다”라는 발언이다.

하지만 병상의 김대중 대통령 대리인이라고 할 수 있는 박지원 민주당 의원은 두 전직 대통령의 화해 여부를 두고 즉답을 피한다. 박지원 의원은 11일 MBC ‘손석희의 시선집중’과 인터뷰에서 “직접 오셔서 말씀하신 것에 대해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면서도 “아시다시피 김대중 대통령은 지난 12~3년간 한 번도 김영삼 대통령을 비판하거나 비난하지 않았다”는 발언으로 대신했다. 화해라는 관계가 성립되지 않는다는 얘기일 수도 있다.

또한 이번 병문안이 김영삼 전 대통령의 상도동계 인사와 김대중 전 대통령의 동교계 인사들의 권유에 따라 이뤄졌다는 배경에 대해서도 박 의원은 부인했다. 박 의원은 “저희들(동교동계)이 그러한 제안은 한바가 없다”며 “단지 상도동 비서실에서 출발하시면서 갑자기 출발하신다, 이렇게 연락을 받고 저희들이 성의껏 잘 모셨을 뿐”이라고 말했다.

두 전직 대통령 사이의 반목이 지속돼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박지원 의원의 발언에 따르면 김영삼 전 대통령의 일방적인 화해 ‘제스처’라는 정황을 지울 길 없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현재 병상에서 의사전달은 물론 표현조차 힘겨운 상황이라고 한다. 또한 직접적인 화해 의사가 전달된 것도 아니다.

정확히 지적하자면 김영삼 전 대통령은 이번 병문안 자체만을 가지고도 챙길 것은 다챙겼다. 김 전 대통령은 화해 제스처를 통해 국가의 ‘큰 어르신’으로 자리매김했다. ‘둘이 합쳐 오늘의 한국민주주의를 이룩하는 데 큰 힘을 보탰다’는 김영삼 전 대통령의 자체 평가가 언론을 통해 확산되고 있다.

만약 김대중 전 대통령이 서거했다면 ‘한국민주주의를 이룩하는 데 큰 힘’을 보탠 이는 김영삼 전 대통령 밖에는 안 남는다. 결국 이번 병문안은 김영삼 전 대통령 자기 자신에 대한 과시 이상의 의미를 갖기 어렵다는 얘기다.

한편 11일 이명박 대통령도 병원을 직접 찾아와 김대중 전 대통령의 쾌유를 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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