험난했던 병신년이 가고 정유년은 좀 나아질까 싶었지만 현실은 그런 기대를 허망할 정도로 무너뜨리고 있다. 기껏해야 이틀 지났을 뿐인데 세상은 조용할 기회조차 갖지 못하고 있다. 새해 첫날에는 탄핵으로 직무정지 중인 대통령이 기자들을 기습적으로 불러서 논란이 야기됐고, 다음날에는 최순실의 딸 정유라가 덴마크에서 체포되었다는 소식이 이어졌다.

머피의 법칙이라고 하고 불평을 하려고 하니 불과 며칠 전에 손석희의 앵커브리핑에서 그것은 어차피 일어나야 할 일이었다니, 대한민국에서 태어나고 살아갈 사람으로서는 피할 수 없는 숙명으로 받아들일 수밖에는 없다. 그런 와중에도 소소한 즐거움에 대한 기대도 있었다. 손석희가 진행하는 100분짜리 토론이 JTBC에서 준비되었다.

JTBC 신년토론 특집 <2017년 한국 어디로 가나>

100분짜리지만 100분 토론이라고는 하지 말아달라는 손석희의 너스레에 묘한 회한이 오버랩되지만 지레 속아주는 것도 시청자의 미덕일 것이다. 어쨌든 토론자 또한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이미 현 시국에서 엄청난 인기를 끌고 있는 <썰전>의 유시민과 전원책 그리고 이재명과 유승민 등이 토론에 나섰다.

처음에는 별일 없이 순조롭게 토론이 진행됐다. 대통령에 관한, 워낙 이론이 가능하지 않은 상황이라 그랬을 것이다. 그러나 전설의 100분 토론의 추억을 새기던 시청자들을 갑작스런 불쾌감에 빠지게 한 순간이 있었다. 그 주인공은 안타깝게도 <썰전>의 주인공 전원책 변호사였다. 이재명 시장의 발언에 전원책 변호사는 불같이 격노하는 모습을 보였다.

두 사람의 의견이 갈린 것은 첫째 우리나라 대기업의 법인세 수준이었고, 둘째는 아르헨티나 등의 나라가 망한 것이 부패 때문이라는 이재명 시장의 주장과 복지 때문이라는 전원책 변호사의 주장의 충돌이었다. 이 토론이 아침에 있었더라면 분명 그날 저녁 <뉴스룸> 팩트체크 시간에 다뤄질 만한 논쟁이었다. 아니 논쟁이라고 하기에도 격이 한참 미달한 폭언에 불과했다.

JTBC 신년토론 특집 <2017년 한국 어디로 가나>

과연 이재명 시장이 말한 재벌 기업의 법인세 인상과 복지를 늘리자는 주장이, 누군가 그렇게까지 격노하고 분위기를 다 망칠 정도인지는 공감하기 어려웠다. 무엇보다 격노한 전원책 변호사는 한마디로 막무가내였다. 사회자가 "전 변호사님“을 여러 번 간절하게 불러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손석희가 그토록 안쓰럽기도 처음이었다.

과연 무엇이 팩트인지부터 따져볼 필요는 분명 있을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곧바로 중앙일보에서 이 문제를 인터넷판에 보도했다. 문제는 법인세 실효세율이었다. 재벌닷컴 자료를 인용한 중앙일보(http://news.joins.com/article/21071978)에 따르면 자산규모 상위 10대 그룹 소속 92개 상장사는 2015년 기준 17.6%로 전원책 변호사의 주장이 맞았다. 다만 2014년의 경우라면 12.3%로 이재명 시장이 맞았다.

또한 OECD국가의 법인세 실효세율을 비교하면 미국 26%, 독일 29.55%. 영국 28%인 데 반해 2015년을 기준으로 하더라도 한국의 세율은 매우 낮은 편이고, 이명박, 박근혜 정부의 감세 명분이었던 기업의 투자가 늘어난다는 논리 역시 틀렸다. 기업의 사내 유보금은 550조원이나 된다. 그만큼 투자를 하지 않고 쌓아둔다는 의미다. 과연 누가 엉터리 주장을 했었는지는 대충 감을 잡기에는 충분한 설명을 담은 기사였다.

JTBC <썰전>

그러나 팩트를 떠나 전원책 변호사가 범한 치명적인 잘못은 토론 자체를 망치는 언어와 감정의 폭주였다. 거의 언어폭력에 가까웠다는 평을 할 수 있다. 설혹 이재명 시장이 틀리고 자신이 옳았다고 해도 그래서는 곤란하다. 한편 전원책 변호사는 <썰전>에서 자주 녹화가 아니라 생방송을 하자는 말을 했다. 그때마다 유시민이나 김구라는 펄쩍 뛰며 말리는 모습이었다. 적어도 전원책 변호사의 이날 폭주는 그간 품었던 시청자들의 궁금증 하나는 풀어주었다. 왜 두 사람이 그런 반응을 보였는지 말이다.

편집 없이 고스란히 노출된 전원책 변호사의 토론 자세는 누가 봐도 심각한 수준이었다. 소위 오피니언 리더라는 사람이 티비로 생중계되는 상황에서 분노조절이 되지 않는 모습은 무척이나 안타까웠다. 과연 <썰전>의 패널로 적합한지에 대한 고민이 없을 수 없다. 그러나 보수논객으로는 전원책 변호사에 필적할 인물도 없다는 것이 새삼 씁쓸한 현실이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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