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격적인 대선 국면으로 정국이 이동하는 느낌이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와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양강구도가 유력한 가운데 대권주자들이 출마선언에 가까운 메시지를 내놓고 서로 경쟁 구도를 만들어가는 모양새다.

언론이 전하는 다양한 신년 여론조사 결과를 종합하면 현재 가장 높은 지지를 획득하고 있는 것은 문재인 전 대표이다. 간발의 차로 그 뒤를 잇는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은 기존의 여론조사 결과에 비하자면 지지율이 소폭 하락한 것으로 보인다.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 등에 23만 달러 등 금품을 수수하였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등 본격적인 검증 국면이 시작된 효과라는 해석이다.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가 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의장실을 찾아 정세균 국회의장과 면담 후 떠나자 취재진이 질문하고 있다. (연합뉴스)

대략적인 2위군을 형성하고 있는 것은 이재명 성남시장과 국민의당 안철수 전 공동대표다. 이재명 성남시장은 단순명쾌한 상황규정과 공격적인 현안 대응으로 돌풍을 일으켰으나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 가결 이후 주춤하는 모양새다. 이재명 시장 입장에서 다행스러운 것은 일부 언론을 통해 ‘막말’ 논란 등의 의혹 제기를 받고 있으나 확장성에 제한을 받을 여지는 있을지언정 현재 지지율에 타격을 입는 모양새는 아니라는 것이다.

이재명 시장에 밀리는 형국인 안철수 전 공동대표는 엎친데 덮친 격으로 정치적 위기를 맞이한 상태다. 안철수 전 공동대표가 지지를 요구한 김성식 의원이 원내대표 선거에서 낙선했기 때문이다. 이는 국민의당 창당 이후부터 불거졌던 호남 중진 대 안철수 전 공동대표 측근 그룹의 힘겨루기에서 안철수 전 공동대표 측이 패배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런 사태가 된 근본적 원인은 대권주자로서 안철수 전 공동대표의 지지율이 하락하고 있기 때문이다. 각종 여론조사 결과를 종합해보면 안철수 전 공동대표의 지지율은 호남지역에서도 문재인 전 대표 등에게 밀리는 상황인 걸로 파악된다.

더 큰 문제는 안철수 전 대표의 정치적 위기가 여기에서 그치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는 점이다. 국민의당 대표 선거는 박지원 원내대표와 다른 군소후보들의 대결구도로 굳어지고 있다. 애초 양강구도를 형성할 것으로 기대됐던 정동영 의원은 2일 불출마를 선언했다. 당 대표 선거 불출마 선언은 대권행을 시사하는 걸로도 받아들여질 수 있다. 박지원 원내대표는 정동영 의원의 불출마 선언에 대해 “5개월 뒤 정동영 의원이 자동적으로 당을 이끌어 나갈 자리로 추대될 것”이라면서 “향후 정동영 의원이 그렇게 할 수 있도록 내가 앞장서겠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이렇게 되면 향후 국민의당 입장에서 안철수 전 대표의 ‘효용’은 계속 추락해갈 수밖에 없다.

안철수 전 대표는 원내대표 선거 이후 정치적 칩거를 이어나가고 있는데, 나름 ‘한 방’이 있는 승부수를 던지지 않으면 정치적 미래를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그러나 ‘한 방’이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이라는 점이 문제다. 승부수를 던질 수 있는 주제는 정계개편이나 개헌과 관련된 것 밖에 없는데 하나같이 안철수 전 대표에 불리한 결과를 가져올 뿐이다. 역설적으로 말하자면 불리함을 감수하는 어떤 결단을 내리는 것만이 정치적 기사회생을 노릴 수 있는 유일한 수라는 주장도 가능하다.

국민의당 안철수 전 대표가 지난 31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정호승 시인의 '넘어짐에 대하여'라는 시를 올렸다. (연합뉴스)

국민의당 주승용 원내대표는 당선 직후 “친박과 친문을 제외하고 모두 모이게 하겠다”고 호언장담한 바 있다. 주승용 원내대표만 이런 주장을 하고 있는 게 아니다. 손학규 전 의원은 2일 MBC라디오와의 전화연결에서 자신이 추진하고 있는 ‘국민주권개혁회의’를 언급하며 “기득권과 패권을 거부하는 개혁세력이 민주당이다 국민의당이다 이런 정당소속 여부를 떠나서 폭넓게 참여할 것을 기대하고 있다”면서 일종의 ‘빅텐트론’을 언급했다. 같은 날 정의화 전 국회의장도 YTN라디오와의 전화연결에서 “개헌이라는 것을 고리로 해서 여러 정파들, 여러 뜻있는 정치인들의 규합이 가능하다”면서 정계개편이나 대선 과정에서의 연대 가능성을 언급했다.

이른바 ‘제3지대’ 정계개편을 말하자면 비박계가 새누리당을 탈당해 만든 개혁보수신당을 포괄할 것인지가 쟁점이다. 이 문제를 적극적으로 다루는 인사들은 개헌을 고리로 한 정계개편 필요성을 말하면서도 이에 개혁보수신당을 포함할 것인지 여부는 상황을 두고 판단해야 한다는 입장을 언급하고 있다. 이 ‘판단’의 범주에는 개혁보수신당 소속 인사들 역시 박근혜 정권 탄생에 대한 책임이 있다는 국민 여론과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의 이후 행보 등도 고려해야 하는 게 사실이다.

이런 면에서 볼 때 새누리당이 사실상 와해될 경우 오히려 제3지대 정계개편에 개혁보수신당이 참여하는 그림은 좀 더 어려워질 가능성이 크다. 새누리당 인명진 비상대책위원장은 지난 주 친박계 핵심인사들에 대한 인적청산을 예고하며 병원에 입원해버렸다. 인명진 비대위원장의 이런 행보에 대해 친박계들은 상당한 배신감을 토로하고 있다. 인적청산 대상으로 꼽혔던 이정현 전 대표는 2일 전격적으로 탈당을 선택했으나 서청원, 최경환 의원은 버티기에 돌입한 모양새다. 언론 보도에 의하면 최경환 의원은 “차라리 나를 죽여라”는 등 격앙된 반응을 보이고 있고, 서청원 의원은 본인이 다 짊어지고 탈당 등을 선택하려 했는데 인명진 비대위원장이 너무했다는 볼멘소리를 한다고 한다.

그러나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귀국할 경우 추가 탈당자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는 전망은 새누리당의 앞날을 더욱 어둡게 하고 있다. 만일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의 행보에 따라 새누리당 의원들의 상당수가 탈당을 선택할 경우 개혁보수신당은 보수정치의 ‘적통’을 주장해야 하는 처지에 놓이게 된다.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과 함께 새누리당을 탈당한 인사들이 대거 입당해 ‘새누리당 시즌2’ 그림이 이렇게 되면 비박계 인사들이 참여하는 제3지대 정계개편은 어려워진다.

문재인 전 대표가 이날까지 연이어 국민의당과의 연대 또는 통합을 주장한 것은 이런 정황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문재인 전 대표는 2일 정세균 국회의장을 예방한 자리에서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은) 김대중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 두 민주정부의 후예”라면서 “정권교체라는 대의 앞에서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이 힘을 모으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발언했다. 정치공학으로 따졌을 때 개혁보수신당이 참여하지 않는 형태의 제3지대 정계개편은 국민의당이 외연을 확장하는 정도의 결과를 가져오거나 더불어민주당에서 비주류 세력이 이탈하거나 둘 중 하나의 결과만을 가져올 가능성이 크다. 문재인 전 대표로서는 자신의 피해를 최소화하는 쪽으로 상황을 유도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대선이 가까워지면서 정계개편이라는 명분으로 합종연횡과 이합집산 관련 논의들이 가속화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우려되는 것은 이런 ‘시나리오’들에 매몰되는 경우 오히려 정치의 본질을 벗어나는 논쟁이 확산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박근혜 정권을 만든 보수정권의 실패는 정치가 근본적 해법을 구하지 않고 권력을 쟁취하기 위한 미봉책으로 일관한 결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가치와 노선에 따른 정책을 놓고 경쟁하는 대선 구도가 절실하다.

현재 유력시되는 대권주자 중 가치와 노선을 기준으로한 분명한 메시지를 내놓고 있는 인사는 개혁보수신당의 유승민 의원과 더불어민주당 소속인 안희정 충남도지사 정도 등으로 제한돼있다. 물론 대권 경쟁 구도가 치열해지면 자연스럽게 정책 경쟁이 이루어질 가능성이 커지겠지만 적어도 꼬리가 개를 흔드는 형국이 되어서는 안 된다. 박근혜 정권을 타산지석 삼는 올바른 방법이 무엇인지 고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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