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신'년은 역설적으로 민주의 목소리를 올곧이 세웠던 해였다. 참 이름다웠던 '병신'년의 마지막 날, 광장에선 10번째 촛불집회가 열렸고, 110만 명이 참석하여 누적 참가인수가 1천만 명을 넘겼다. 그렇게 한 해의 마지막 날에도 광장의 촛불이 불타올랐는데, 따뜻한 위로의 가장 손쉬운 매체 TV가 한 해를 보내는 방식은 어땠을까? 촛불과 함께 좀 달라졌을까?

연일 '블랙리스트'를 지시한 이와 조력자들은 물론 그 리스트의 실체가 구체적으로 드러나고 있는 이 즈음, TV를 보며 한 해를 보낸 시청자들은 그저 '암흑이 없다면 별이 빛날 수 없고, 어둠과 빛은 한 몸이라는(한석규)' 추상적 메타포의 속뜻을 헤아려 보거나,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거나 '참이 거짓을 이긴다'(차인표)는 개념 소감 한 마디에 통쾌해할 수밖에 없었다.

개념 소감으로 만족하기엔 아쉬운

2016 KBS 연기대상 시상식

몇몇 수상자 혹은 시상자의 개념 발언을 제외하면, 작년이나 그 이전이나 그저 등장하는 스타의 면면만 달라졌을 뿐 내용은 달라지지 않았던 시상식과 가요제전. 아니 달라진 것은 있었다. 흔히 12월 31일 밤 12시가 다가오면 거리로 카메라를 옮겨 제야의 종소리를 듣고, 카운트다운의 현장을 중계하던 지상파 방송 3사가 약속이나 한 듯 그 현장음을 소거해 버린 것이다.

MBC와 KBS는 자체 스튜디오에서 팡파레를 울렸고, SBS는 보신각을 비췄지만 원경으로 잠시 스쳐지나가듯 했을 뿐이다. 왜? 혹시나 보신각으로 행렬을 진행하겠다는 촛불 집회 측의 발표에 제 발이 저리기라도 한 것이었을까? 아니면 제야의 종소리 현장에 끼어든 촛불 집회 행렬이 행여 방송국의 집안 잔치에 '누'가 될까 저어했던 것일까? 아니, 애초 세월호 유가족들과 위안부 할머니분이 함께하는 보신각 타종 행사가 못마땅했던 것일까?

그 어느 때보다 격동적이었던 2016년이었건만 여전히 연말 시상식 무대는 마치 그런 세상의 흐름과는 별개의 유흥 파티장 같았다. 과연 이런 방송 환경에서 SBS 시상식 말미 <그것이 알고 싶다> 출신 박정훈 사장의 '변화하는 환경에 걸맞은 방송을 만들겠다'는 출사표는 생소하다.

특히 KBS의 경우 시상식에 앞서 고두심과 최수종을 등장시켜 KBS 연기대상 30주년이었음을 자축하는 자리를 가진다. 하지만, 30년의 축하는 최수종이 전성기를 열었던 대하드라마에 대한 소개가 채 끝나기도 전에, 한류 붐을 일으켰던 <겨울연가>의 주제 음악과 방송 영상으로 이어지며 30년의 관록이 무색해져 버린다. 30주년 기념답게, 아니 공영방송의 권위를 세워 다수의 조연 연기자들을 시상식에 배석시키지만 언제나 그렇듯 관록의 중견 연기자들을 들러리로 세우고 만다. 오죽했으면 중견 연기자 김영철 씨가 그분들에 대한 관심을 호소했을까.

입으로는 30주년을 칭송했지만, 정작 시상식은 2016년 기록적인 시청률로 KBS를 행복하게 해주었던 <태양의 후예>와 <구르미 그린 달빛>에 관심이 집중되었다. 결국 대상을 받은 송혜교, 송중기 커플은 등장부터 방송 중간중간 몇 번의 인터뷰를 통해 무안하리 만큼의 소감을 집요하게 질문 받았고, TV 카메라는 이들의 동정을 놓치지 않았다. 오로지 화려한 성과급의 잔치뿐, 그나마 KBS다운 면피라면 '단막극'에 대한 시상 정도랄까.

여전한 제 논에 물주기 식 시상식

2016 SBS 연기대상 시상식

그나나 KBS는 제 논에 물주기라도 시상 과정에 구색은 갖추었지만, SBS로 가면 그 장르별 시상에,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들 정도로 남발하는 시상 과정이 스타 체면치레용 생색내기처럼 보일 정도다. 무엇보다 매번 시상식이 끝나고 나면 구설수에 오르곤 하는 MC를 연 4년에 걸쳐 사회를 보게 하며, 시상식인지 지인들 모임인지 구분이 가지 않는 언급으로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연례행사를 올해도 변함없이 재연했다. 허긴 대상은 투표에 따른 인기상으로 스스로 폄하한 MBC가 있음에 더 말해 무엇 하겠는가.

무엇보다 시청률에 목매는 방송사답게 결국 시상식은 학교에서 성적 좋은 아이에게 주는 우등상처럼, 시청률 그래프에 따라 그 결과가 점쳐지는 현실이 되고 말았다는 것이다. 그래도 '대상' 쯤 되면 관록과 내공 있는 중견 연기자의 몫으로, 기립박수를 받으며 시상대에 오르던 시상식의 권위를 찾는 것이 무색해졌다. 때문에 대상이 점점 젊은 연기자들의 몫이 되고, 그 대상을 받아든 당사자도 무안해지는 상황이 매년 연출되곤 한다. 그나마 올해 SBS의 대상이 <낭만닥터 김사부>의 한석규에게 갔지만, 23.7%(15회 닐슨 코리아 기준)의 시청률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결과이리라.

한석규는 수상 소감을 통해 '가치가 죽고 아름다움이 천박해지지 않기를, 사람은 무엇으로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해 환기를 했지만, 그 아름다움에 대한 소통과 공감조차 '시청률'이 담보되지 않는다면 인정받을 수 없는 세상인 것이다.

거리의 촛불에 아랑곳없이 여전히 시청률 지상주의와 제 논에 물주기 식, 그리고 아이돌 음악 위주로 흘러간 연말의 TV. 무엇이 무서운지 제야의 종소리 현장조차 중계하지 못하는 연말 시상식과 가요대전을 보고 있노라면 '자괴감'이 든다. 과연 우리는 달라질 수 있을까? 그 어느 곳보다도 강고한 방송 현장의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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