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19일 용산참사가 터진 다다음날 행정안전위원회 전체회의가 열렸는데 신지호 의원은 “전철연은 사람을 죽이고, 범죄 경력까지 있는 단체다. 불특정 다수의 무고한 시민 재산과 생명을 위협하는 도심 테러행위로도 볼 수 있다”고 말했죠. 경찰의 특공대 투입작전에 대해서도 “경찰특공대 운용 규칙을 보면 시설을 불법점거하고 난동하는 범죄를 진압하는 것이 특공대의 임무”라며 공권력 투입을 정당화했더랬습니다.

김문수 경기도지사는 쌍용자동차 공권력 투입 작전 개시 하루 전날인 3일 “회사는 망해 배가 가라앉고 있는데 회사를 살릴 책임이 있는 사람들이 스스로 죽겠다고 한다. 자살특공대를 만들어서 시너를 끌어안고 옥쇄투쟁을 하고 있다”고 말했더군요.

이런 걸 한 칼이라고 하지요. 특정한 사건이 터지거나 정점에 올랐을 때 핵심을 찌르는 한 마디가 갖는 위력, 이 분들은 그걸 터득하고 있는 거지요. 그걸 잡으면 특정 사건에 대한 초기 프레임을 결정할 수 있는 거거든요.

용산참사가 터진 당일과 다음날까지도 사람들과 언론 대부분은 그 엄청난 사건의 발발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 지 경황이 없었는데요. 신지호 의원의 그 한마디는 이후 용산참사에 대한 언론의 프레임 뿐 아니라 검찰 수사발표 때까지 쭉 기본 줄거리를 이루었죠.

쌍용자동차 노동자에 대해 ‘자살특공대’라 일성을 내지른 김문수 도지사의 한마디도 그렇습니다. 공권력 투입 작전 개시를 바로 앞둔 시점, 누군가의 죽음이 불가피한 것을 직감한 정치 지도자로서 행여 불행한 사태가 벌어지더라도 빠져나갈 알리바이를 미리 만들어놓은 거지요. 거 봐라 자살을 선택한 거 아니냐 라는.

신지호 의원이나 김문수 도지사는 노동운동과 민중운동의 생리를 너무나 잘 알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지요. 신지호 의원은 노회찬 대표나 조승수 의원 등과 함께 인민노련에 몸담았다가 일찌감치 ‘고백’을 통해 변절을 선언한 인물이고요, 김문수 경기도지사도 이재오 씨 등과 함께 민중당의 고문을 역임하는 등 한 때 민중운동을 이끌었던 인물입지요.

변절이나 말바꾸기는 뭐 흉도 아니죠

변절, 그거 이젠 흉도 아니죠. 변절에 대해 도덕적 잣대를 갖다 대는 것조차 우스운 세상이 되었으니까요. 최홍재 방문진 이사님의 변절도 변절 그 자체가 남사스런 일은 아닐듯 합니다요. 뒤져보니 ‘만세파’였다고 하는데 그건 좀 흥밋거리긴 하네요.

▲ 최홍재 공정언론시민연대 사무처장 ⓒ여의도통신
2004년 11월 23일 자유주의연대 창립식이 열렸고 최홍재 이사님은 그때 운영위원으로 결합하셨죠. 당시 최홍재 이사님을 인터뷰 한 기자에 따르면 변절하기 전에 이른바 ‘만세파’로 많이 알려져 있었다고 되어 있더군요. 고려대 총학생회장을 역임하는 등 학생운동 핵심부에 있을 때 다른 학교 간부들과 회의를 할 때면 항상 ‘장군님 만세’를 외치고 회의를 시작하자는 제안을 하고 다녔다고요.

좌우당간 변절 그 자체는 별 이야기꺼리가 아니고요, 요즘은 변절 자체보다는 응당 변절자의 ‘실력’에 관심이 더 많은 분위기지요. 그래서 신지호 의원이나 김문수 도지사가 한 칼을 날리면 저런 실력을 가진 사람이 변절했다는 게 아쉽다 뭐 그런 정도의 생각이 들 뿐인 거죠.

방문진 이사로 선정되셨더군요. 내일 임명장을 받는다고요. 임명장을 받기 전부터 MBC 민영화라는 민감한 이슈를 언급하는 등 스포트라이트를 톡톡히 받으시더군요. 덕분에 미디어스 편집국에서 ‘러브레터’ 대상으로 발탁되신 거고요. ‘변절’ 이야기부터 해대서 심란할지 모르겠으나 사실은 사실이니까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시고요. 한편으로는 말바꾸기 논란이 있을 수도 있겠는데, 이도 크게 개의치 않아도 될듯 합니다. 말을 잘 바꾸는 것도 현실에서는 세련된 정치의 한 덕목으로 쳐지곤 하니까요.

기왕에 나온 말이니 짚고 가자면 지난 5월 11일 ‘언론관련 임용직 안 맡으시겠습니까?’라는 미디어스 기사를 들 수 있겠네요. 그러니까 미디어발전국민위가 한창 진행중인 때였고, “1년간 언론관련 임용직을 안 맡겠다는 선언을 하자”는 양문석 민주당 추천위원의 제안이 있었더랬죠. 최홍재 이사님은 “제의가 들어오더라도 거부하겠다”고 밝히고 “방송사 쪽으로 갈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 없다”고 답하셨더군요. “소신과 양심에 따라 행동하고 있는 위원들에게 자리를 노리고 있다는 식으로 말하는 것은 대단히 불쾌하다”고 덧붙이기도 하셨고요.

뭐 관계없습니다. 그건 그때 일이고 방문진 이사는 방문진 이사 일이니까요. 이런 부분을 누군가가 특별히 문제삼지도 않으니까요. 현실에서 벌어지는 기상천외한 스펙터클에 비하면 이런 해프닝이야 견주기조차 한가한 일이니까요.

한 칼의 예리함이 아쉽군요

좀 유감입니디만, 요점을 말하자면 최근 언론에 노출된 최홍재 이사님의 발언에서는 신지호 의원이나 김문수 도지사 같은 한 칼의 예리함이 느껴지지는 않는다는 겁니다. 아직 젊은 나이와 짧은 연륜 탓에 그런 것인지 아니면 공정언론시민연대라는 단체 활동 정도의 경험에서 오는 역부족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요.

가령 이사에 임명되기도 전에 언론에 MBC 민영화 추진을 거론했는데, 뭐랄까요 ‘쎄다’, ‘좀 강한데’ 같은 그런 느낌이 별로 안 들더라고요. 지난 4일 한 라디오에 출연해서 MBC 민영화 문제를 묻자 “피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국민의 동의를 받아나가는 과정을 밟으면 잘 풀려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답했죠. 경향신문과의 전화 통화에서도 “공영방송법 제정, 민영 미디어렙 도입 등이 올 하반기에 이뤄지는 만큼 MBC로서는 공영이든 민영이든 위상을 결정지어야 하기 때문”이라며 두루뭉술하게 넘어갔더군요. 신지호 의원이나 김문수 도지사 같았으면 어떻게 말했을까요. ‘MBC의 좌파점령군를 몰아내고 깔끔하게 민영화하겠다’라는 식으로 정면승부를 하지 않았을까요. 그랬으면 아마 언론들도 ‘좌파점령군’과 ‘민영화’라는 단어를 앞세워 보도했을 테고, 노조나 MBC 당사자들 내부 분란도 더 선명하게 하는 효과를 낳지 않았을까요.

글쎄요.. 그렇게 하지 않아도 MBC 민영화 수순을 밟아나갈 수 있고, 서두르지 않아도 예정된 시나리오 대로 추진하면 된다는 계산일 수도 있겠죠. 암튼 뭔가 젊은 혈기나 본색 같은 게 보이지 않아 관전하는 맛이 덜하다는 그런 이야기입니다요.

공정언론시민연대 홈페이지에 올라온 최홍재 이사님의 칼럼들을 훑어봤습니다. 틈틈이 MBC 민영화의 필요에 대해 주장해 오셨더군요. 가령 올 초에 쓴 ‘[칼럼]MBC 엄기영 사장님께 드립니다’에서 “야만적인 방송은 지금 현재 MBC가 보여주는 방송 그 자체입니다. 지금의 MBC는 국민의 방송이 아닙니다. 노조방송이자 불법방송입니다”라고 강하게 단정했더군요.

이런 문구가 있네요. “아시다시피 MBC는 원래 민간인의 것이었습니다. 이것을 신군부가 장악하기 위해 강탈한 사실이 있지요. 이런 역사적 사실 때문에 민주화가 시작된 1988년 방송노동조합도 민영화를 주창하였고 민주화세력의 대명사인 김대중 대통령 당시 1999년에도 MBC의 단계적 민영화가 추진된 바 있습니다. 더구나 현재의 언론관계법은 매체 다양화에 대한 법안이지 MBC 민영화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습니다”라는.

MBC 민영화의 필요를 우회적으로 짚은 거라 봐야겠죠. 글을 쓴 시점의 한나라당의 언론관계법이나 이번에 날치기 통과된 법은 큰 틀에서 내용 차이가 없다 하겠는데, MBC 민영화와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건 좀 지나친 은폐 아닐까요. 차라리 당시에도 국민적 논의가 필요하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했어야 일관성이라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말씀입니다요. 하기야 디테일하게 하자면 이번에 통과된 한나라당의 미디어법에 공영방송법 제정이 포함되지 않았다며 피해갈 수도 있겠군요.

MBC 민영화 그냥 내놓고 이야기하세요

추측입니다만, 방통위가 무효투표 논란을 개의치 않고 시행령 마련에 착수하고요, 이에 따라 종편채널 도입과 지상파방송과 케이블방송의 겸영이 이루어지면 방문진은 지역 MBC 광역화 문제를 건드리겠죠. 지역 MBC 광역화를 이루면 서울 MBC의 민영화를 어떻게 추진할 지 고민할 테고요. 일부 지역 MBC에 대한 서울 MBC 지분을 케이블에 매각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지상파방송과 케이블의 겸영도 현실화 되겠죠. 여기에다 미디어렙 도입을 적극 검토하게 될 테고요. 이게 민영화 수순인거죠. 그냥 이런 이야기를 소탈하게 꺼내셔야죠. 수군수군 하며 진행해도 이미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이야기 아닌가요.

7월 8일 쓴 ‘[칼럼]MBC 점령군’이라는 글, 고건 좀 괜찮았습니다. MBC노조가 7월 2일 쓴 ‘방문진이 MBC 점령군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성명을 조목조목 따졌더군요. “공영방송에 대한 분명한 철학과 MBC 노조가 벌여온 점령군적 자세는 완전히 상치됩니다. 만일 MBC 노조가 과거의 계급성, 편파성을 깊이 반성하고 공정한 방송으로 MBC를 국민에게 되돌리겠다는 의사를 분명히 표시한다면 지금까지의 야합스러운 관례조차 완전 부정적으로 생각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MBC에 대한 점령군은 그 누구라도 퇴치되어야 합니다”는 말로 매듭한 글입니다.

글쎄요.. ‘노조가 장악한 MBC’, ‘계급성’, ‘편파성’ 따위를 지적하셨는데, MBC가 과연 얼마나 계급적이고, 편파적인지 잘 개량이 되질 않는군요. ‘PD수첩’ 건이 논란이 되긴 했으나 그런 정도로 계급성, 편파성 같은 딱지를 붙이면 곤란하죠. 계급성의 잣대를 말하자면 우리 사회 어떤 계급 계층을 위한 방송인지 다수를 위한 것인지 소수를 위한 것인지 따위를 세세히 따져봐야 할 일이고, 편파성을 이야기하자면 기계적 중립조차 대의제 미디어의 발전을 저해한다는 맥락에서 살펴봐야 할 일 아니겠습니까요.

‘PD수첩’ 공방으로 요즘 MBC 내부 분위기가 아주 험해졌다는 이야기가 있더군요. 오동운 MBC PD는 최근 한 토론회에서 “MBC 안에서는 개별 프로그램, 진행자, 앵커에 대한 파편화가 시도되는데 그런 공격을 통해 MBC 내부의 자율성, 독립성을 공격하고 있다”고 하더군요. ‘PD수첩’에 대한 검찰 수사가 1년 가까이 이어지고, 제작진이 기소된 사건은 제작자들에게 언제든 같은 상황에 놓일 수 있다는 파급 효과를 남겼다는 거죠. 그것이 프로그램의 내용, 아이템 선정에서 위축되게 하는 부정적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는 것이고요.

같은 글에서 최홍재 이사님은 ‘공영방송은 어느 개인의 것도, 어느 기업의 것도 될 수 없다. 오로지 국민의 몫이다’라는데 동의하셨죠. 그렇담 국민을 위한 공영방송의 내부 분위기가 이처럼 험해지는 데 대해 차분히 진단하고 살펴봐야 할 때가 되지 않았을까요. MBC에 대한 점령군이 퇴치되어야 한다고 했는데, 그게 MBC노조의 점령이든 뉴라이트의 방문진 이사 점령이든 그런 수준의 문제만은 아니지 않느냐는 거죠. 지금 MBC를 점령하는 점령군의 실체는 사실 MBC 민영화 추진 그 자체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요. 민영화란 곧 사유화라는 건데, 이는 국민이었던 주인이 특정 자본, 특정 개인으로 바뀔 수 있다는 걸 의미하죠. 방문진 이사진에 뉴라이트 인사가 대거 투입되자 가까운 미래가 그리 될 거라는 걸 MBC 당사자들 어느 누구도 부인하지 않더군요. 더군다나 방통위나 방통심의위, 검찰 등도 계속 괴롭혀대는 지라 공영방송 MBC의 내부 분위기가 안 험해지면 그게 이상한 거죠.

좀 길어졌네요. 러브레터를 정리할게요. 내일 임명장을 받게 되면 심기일전 하시어 들판을 질주하는 맹수처럼 뜻하는 바를 이루길 바랍니다. 노파심이지만 변절의 지난 과거에 행여 마음 캥겨 하는 일도 없길 바라고요. 무엇보다 적시적때에 한 칼 제대로 하는 실력을 갖춘 인사로, 신지호 의원이나 김문수 도지사에 필적하는 미디어계의 실력자로 일취월장하시길 앙망하면서 이만 줄입니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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