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석희의 앵커브리핑은 늘 상식을 깨는 상식으로 시청자를 각성시킨다. 문화계 블랙리스트를 해석하기 위해 블랙스완에 얽힌 익숙하지 않은 상식을 찾아낸 것은 참 기발했고, 늘 그렇듯이 신선한 감동을 얻게 된다.

블랙스완. 이에 대해 두산백과사전은 ‘극단적으로 예외적이어서 발생가능성이 없어 보이지만 일단 발생하면 엄청난 충격과 파급효과를 가져오는 사건을 가리키는 용어’라고 설명하고 있다. 어원을 더 찾아가면 백조는 모두 흰색이었던 유럽인들이 17세기 말 호주 대륙에서 발견한 검은색 백조(흑고니)에 대한 충격이 설명돼 있다.

JTBC 뉴스룸 [앵커브리핑] '블랙리스트'는 과연 누구인가

무너지지 않아야 할 어떤 명제가 무너질 때 혹은 그럴까 우려될 때 인간은 당황하고 또 두려움도 갖기 마련이다. 그래서 블랙스완은 흑고니라는 동물의 고유명사 외에 상당히 무거운 또 다른 의미를 갖게 된 것이다. 그런 의미의 연장선 속에서의 블랙, 다시 말해서 검은빛의 이미지는 상당히 부정적일 수밖에는 없다.

문화계 블랙리스트는 상당히 오랜 세월 회자되면서 있다 없다의 논란이 이어져왔다. 아마도 그 논란이 없었던 유일한 때라면 김대중, 노무현 정부 딱 10년뿐일 것이다. 물론 그 당시에도 비슷하게 ‘코드’라는 단어로 노무현 정부를 압박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블랙리스트가 있다는 말은 없었다.

그렇지만 이번 시국이 하도 엄중해서 이 일을 제대로 다룰 겨를은 없을 것 같았다. 그런데 갑자기 이른 아침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과 조윤선 문체부 장관에 대한 압수수색 소식이 날아들었다. 만든 사람도 없고, 본 사람도 없다는 문화계 블랙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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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정작 당사자들은 느낄 수밖에 없는 차별과 홀대가 거꾸로 그 블랙리스트의 존재를 확신하게 하는 것은 당연하다. 이번 촛불시국에도 그 블랙리스트에 올랐다는 문화예술인들이 광화문광장에 텐트를 치고 장기간 농성을 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정부가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문화예술인들을 비정상적으로 관리했다면 그 대상으로는 당연히 분노할 일인데 오히려 “영광이다”라는 반응이다. 블랙리스트에 대한 얼마나 통쾌한 반발인가.

바로 그 블랙리스트에 차마 없어야 할 이름의 주인공 고은 시인의 대답이었다. 블랙리스트에 고은 시인이 오른 이유는 ‘문재인 지지’라고 적혀 있었다. 그러나 정작 시인은 그런 적이 없었다는 사실에 분노하면서도 실소하게 된다. 존재해서도 안 될 것이지만 그 전에 문화예술인들에게는 데스노트나 다름없는 블랙리스트를 얼마나 무성의하고, 무책임하게 만들었나를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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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계는 참 어렵다. 다들 살기 힘든 때라 어렵다는 말을 하기 저어되지만 그럴 때일수록 더 고된 생활을 하기 마련이다. 특히 연극, 무용, 국악 등 공연예술분야는 사실상 정부의 보조금 없이는 예술행위 자체가 불가능한 경우도 허다하다. 그런 사정을 이용해 신념을 꺾으려는 의도 자체가 불온한 것이지만 최소한 성실하기라도 했어야 하지 않았을까?

손석희의 앵커브리핑은 말미에 최근 비행기 안에서 난동을 부린 어떤 사람과 또 땅콩회항의 주인공을 거론하면서 블랙리스트란 이런 경우에 가장 걸맞은 것이 아니겠냐는 말을 남긴다. 거기서 앵커브리핑은 끝났다. 허나 그 뒤에 생략된 의도를 생각하게 된다. 앵커브리핑은 늘 그 여운과 숨겨진 함의 찾기에 묘미가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블랙리스트를 뒤집은 블랙리스트가 아닐까? 문체부의 블랙리스트의 수준보다 훨씬 강력한 의미의 블랙리스트를 말이다. 그 최상위 순번에 누구의 이름들이 적혀 있을지는 말하지 않아도 될 일이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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