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영호 전 공사. (연합뉴스)

[미디어스=전혁수 기자] 지난 7월 북한 엘리트 탈북으로 관심을 모았던 태영호 전 공사가 기자간담회를 통해 북한의 실상과 핵 위협, 대북 제재의 효과 등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밝혔다. 그런데 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태 전 공사가 기자회견을 열었는지 의문이 제기된다. 탈북자가 한국 사회에 진출하자마자 공식 기자회견을 여는 것은 이례적인 일로 꼽힌다.

공식 기자회견장에서 기자들도 왜 이 시점에 태영호 전 공사가 공개활동을 시작했는지 의심 섞인 질문을 던졌다. 이에 대해 태 전 공사는 "언론 보도를 통해 보수 진영에서 준비한 마지막 수 아니냐, 정국 물타기 아니냐는 이야기를 접했다"면서 "그런데 저는 한국 정치에 개입할 의사도 없고 정치도 잘 모른다"고 답했다. 태 전 공사는 "저는 한국에 도착한 순간부터 함께 다니는 분들(국정원 직원)에게 언제쯤이면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냐고 물었다"면서 "그분들이 규정에 따라 12월 말에나 사회에 배출될 것이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하지만 태영호 전 공사가 기자회견에서 밝힌 것과는 별개로 이미 안보 여론몰이는 시작됐다. 조선일보가 28일자 <野 햇볕론자들, 태영호 공사 증언 듣고 있나>라는 사설을 통해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28일자 조선일보 사설.

이날 사설에서 조선일보는 "우리 사회에는 태영호 전 공사처럼 북에서 살면서 체험하고 체득한 고위 인사 얘기도 믿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면서 "햇볕론자라고 하는 맹신자들"이라고 말했다. 조선일보는 "북에 돈과 쌀을 주면 핵을 포기할 것이란 단선적 논리를 포기하지 않는다"면서 "지역감정과 정치 논리까지 합쳐져 이제는 거의 무슨 종교처럼 굳어져 있다"고 비난했다.

그런데 조선일보의 비난은 사실과 다르다. 햇볕정책은 '북핵'을 전제로 만들어진 정책이 아니며, 통일을 목표로 만들어진 정책이다. 또한 지역감정을 운운하는 것은 시대착오적 발상이다. 현 시점에서 국민들은 지역감정 등에 의해 정책에 찬반을 논하지 않는다. 박근혜 탄핵 정국이 그 증거다.

조선일보는 "지금 김정은은 햇볕론자들이 돌아올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을 것"이라면서 "그렇게 되면 대북 제재를 무너뜨리고 핵 보유를 기정사실화하면서 다시 돈과 쌀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믿고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실제 지지율 1, 2위를 다투는 문재인 전 민주당 대표는 개성공단은 다시 돌려 북에 달러가 들어가게 만들고 사드는 재검토한다고 했다. 국민의당도 크게 다르지 않은 입장"이라고 전했다.

마치 야당이 정권을 잡으면 국가 안보에 큰 구멍이 뚫릴 것과 같은 우려를 낳게 하는 부분이다. 그러나 조선일보 사설에서는 태영호 전 공사가 개성공단을 "남한의 발전된 실상을 북한에 알리는 데 아주 큰 역할을 했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한 것에 대해 전혀 언급하고 있지 않다.

조선일보는 이에 그치지 않는다. 조선일보는 사설 말미에 "햇볕론자들은 태 전 공사의 이 증언도 무시하고 듣지 않을 것"이라면서 "1997년 귀순한 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 비서는 북에 대한 환상을 깨는 데 전력을 다했다. 그러나 햇볕론자들이 득세하면서 좌절했다"고 말했다.

끝으로 조선일보는 "정치와 정권의 오염으로부터 안보와 통일을 지켜야 하는 것은 결국 국민 뿐"이라고 주장했다. 야당을 오염된 세력으로 규정한 셈이다. 조선일보의 28일자 사설은 대북 햇볕정책에 대한 왜곡된 시선으로 시작해, 사실을 선별해 여론을 호도한 후, 국민들에게 보수세력을 지지해달라고 호소하면서 끝을 맺은 셈이다.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