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1일 광화문광장이 열렸다. 그러나 ‘모든’ 시민들에게 평등하게 열린 것은 아니었나 보다. 광화문광장에서의 자유로운 활동은 경찰들에 의해 제지됐고 또다시 닫혀있는 ‘광장’만 하나 더 늘었다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기자회견조차 자유롭게 할 수 없는 광장을 과연 시민들에게 열려진 ‘광장’으로 볼 수 있을까?

개장하고 방문객을 맞이한 광화문광장은 주말에만 약 35만 명(서울시 집계)이 다녀갔다고 하니 그만큼 시민들 관심이 많다는 증거일 수 있겠다. 그러나 바로 그 광장을 두고 시민사회단체들과 야4당은 ‘표현의 자유’가 없는 광장이라며 우려의 목소리를 높였다. 집회·시위를 원천적으로 봉쇄하도록 한 ‘광화문광장 조례’로 인해 자유로운 활동이 가능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주장은 바로 확인이 가능했는데…. 사연인 즉, 지난 3일 광화문광장에서 ‘광화문광장 조례’ 규탄 기자회견을 하던 10여명이 바로 그 자리에서 연행된 것이다. 당시 남대문 경비과장은 “피켓을 들고 있는데 무슨 기자회견이에요?”라며 기자회견을 미신고 불법집회로 규정, 참석자들을 체포해갔다. 순식간에 벌어진 사건이다.

▲ 8월 4일 시청별관 앞에서 진행된 '광화문 광장을 소통의 공간으로 개방하라!' 기자회견의 모습ⓒ나난
이는 광화문광장에서 정치적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지 않는다는 실체적 진실이 드러난 것으로, 기자회견 주최단체들은 다시 모일 수밖에 없었다. 이들은 오늘 4일 장소를 바꿔 서울 시청별관 앞에서 ‘광화문 광장을 소통의 공간으로 개방하라’며 다시 기자회견을 열었다.

“오늘 기자 분들이 많이 오셨다. 물론 ‘오늘도 연행할까’가 궁금하겠지만, 오늘 기자회견의 강조점은 광장에서의 표현의 자유, 누구나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데 그것을 하지 못하도록 한 것에 대한 항의를 하기 위함이란 사실을 알아 달라. 우리가 광장에서 누리는 표현의 자유만큼 시민들도 누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

기자회견에 참석한 원용진 문화연대 집행위원장의 발언이다. 원 위원장의 말마따나 오늘의 기자회견은 무엇보다 광장에서의 표현의 자유가 얼마나 억압돼 있는지를 항의하는 일일 것이다. 그러나 역시나 관심 대상은 ‘어제도 든 피켓 오늘도 들었는데…’에 맞춰졌다. 이는 곧 ‘오늘도 불법집회인데 어떻게 할래?’라는 물음이고 또 다시 기자회견 참석자들을 연행할 것인지에 관심이 집중될 수밖에 없는 오늘의 기자회견이라는 뜻이기도 했다.

때문에 경찰들의 행동 하나하나에 기자들의 시선이 모아졌다. 그러나 기자회견장 주변에 배치돼 있을 뿐 별다른 움직임 없이 기자회견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다.

기자회견에서 인권사랑방 명숙 활동가는 “우리들이 원하는 것은 화려한 꽃밭이나 분수대가 아니다”고 광장에서의 표현의 자유를 보장할 것을 촉구했다. 그는 “현 정부가 정치적 표현의 자유는 몰라도 문화적 표현의 자유를 인정하는 하는 듯 보이지만 결코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지난 6월 언론악법에 반대하는 영화상영을 준비했으나 당시 남대문경찰서는 내용이 정치적이라는 이유로 불허했다는 것이다. 이에 그는 “현 정부의 정치적 잣대는 정부정책에 반대하느냐 옹호하느냐에 달려있는 것 같다”고 비판했다.

경찰들이 움직이기 시작한 것은 명숙 활동가의 발언이 끝난 11시 23분경. 남대문 경비과장은 참석자들을 향해 “미신고 불법집회를 하고 있다”며 “자진해산 하지 않으면 강제해산 하겠다”는 경고방송을 내보냈다. 그리고 잠시 후 여경까지 충원되는 모습이 보였다. 자칫하면 연행될 수도 있었던 일촉즉발의 상황이 연출된 것이다.

그러나 경찰이 3차 경고방송은 기자회견문을 모두 낭독한 이후에 나왔다. 그렇게 오늘의 기자회견은 다행히 큰 충돌은 없이 마무리됐다.

▲ 기자회견의 모습(왼), 경고방송하는 남대문경찰서 경비과장의 모습(오른)ⓒ나난
그런데 이상하다. 10명이 연행된 어제 기자회견도 그렇고 오늘의 기자회견 역시 경찰은 불법 미신고집회로 규정했다. 그러나 어제 참가자들은 연행, 오늘은 아무런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 이 차이는 고작 3차 경고방송의 시점인데, 문제는 이것 역시 경찰의 자의적인 판단에 따르고 있다는 점이다.

단적인 예로 어제 기자회견에선 경찰은 기자회견을 시작하자마자 5분도 되지 않아 1차 경고방송을 내보냈고, 이윽고 기자회견문을 읽는 과정에서 3차 경고를 마치고 바로 연행에 들어갔다. 그러나 오늘은 1차 경고방송도 기자회견이 시작되고 23분여가 지난 상황에서 나왔고, 더더욱 오늘은 기자회견이 끝나는 것을 보고서야 3차 경고방송을 하는 경찰의 모습이었다. 실제 1차, 2차, 3차로 내보내는 경고방송에 대한 명확한 기준과 규정은 “없다”. 따라서 경찰의 맘대로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는 것이다. 어제처럼 연행하려 했다면 기자회견이 시작하고 나서 바로 3차 경고방송까지 내보내고 연행할 수 있었는데 말이다. 그렇다면 오늘 경찰은 연행을 목적으로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제 기자회견 참석자들은 왜 연행됐을까? 이에 진보신당 정종권 부대표가 기자회견에서 “어제 기자회견에서 연행된 활동가들의 죄목은 ‘이명박 대통령과 오세훈 서울시장의 사유재산 침범죄’가 아닐까 생각한다”고 비난했다. 그렇다. 어쩌면 어제의 기자회견은 시청광장이나 청계광장처럼 이명박 정부를 상징하는 곳에서 정부에 반하는 행동을 꼴 보기 싫었기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는 말이다.

어제 기자회견 참석자들은 연행됐고, 오늘은 연행은 없었다. 그것이 오늘 기자회견이 어제와 다른 이라면, 같은 것은 어제의 기자회견이 경찰의 자의적인 판단에 의해 ‘미신고 집회’로 규정되듯이, 오늘의 기자회견 참석자들을 ‘연행할 것인지’ 혹은 ‘안할 것인지’ 역시 경찰의 자의적인 판단에 따랐다는 점일 게다. 경찰은 달라진 것이 없었다.

한편, 이날 기자회견을 마친 후 전국언론노동조합 한명부 지도위원은 ‘언론장악 저지’, ‘민주주의 수호’라고 쓰인 몸자보를 착용하고 광화문광장을 한 바퀴 도는 1인시위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언론노조, “다 같이 돌자, 광장 한바퀴”

어제 3일 광화문광장에서 “광화문 광장에 표현의 자유를 달라”던 기자회견을 진행했던 10여명이 그 자리에서 바로 연행됐다. 이에 발등에 불이 떨어진 쪽은 전국언론노동조합. 당장 오는 8일 언론노조는 광화문 광장에서 언론악법 저지 퍼포먼스 진행을 예정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광화문광장에서 ‘기자회견’을 하던 사람들이 잡혀갔으니 퍼포먼스에 차질이 빚어질지 모른다는 우려가 드는 것은 당연.

▲ 한명부 언론노조 지도위원ⓒ나난
이에 한 지도위원은 오늘 한 가지 실험을 감행하기로 했다. 토요일에 진행할 퍼포먼스를 먼저 시행해보기로 한 것이다. 만약 오늘 연행되지 않는다면 토요일에도 당연히 연행되지 않을 것이라는 계산이다. 기자회견이 끝난 후 ‘언론장악 저지’, ‘민주주의 수호’라는 글귀가 쓰인 몸자보를 부착한 한 지도위원은 광화문광장으로 성큼 성큼 걷기 시작했다. 물론 경찰들 역시 그의 뒤를 쪼로로 따랐다.

한 지도위원은 “오는 토요일에 광화문광장에서 지금과 같은 몸자보를 부착하고 5m~10m 간격으로 광장을 도는 1인시위 퍼포먼스를 기획했다”며 “어제 활동가들이 연행되는 모습을 보고 굉장히 걱정했다”고 이야기했다. 때문일까? 광장쪽으로 걸어가는 그의 눈에는 근심이 가득했다. 자칫 바로 연행될 수도 있는 상황인데다, 오늘 그가 연행된다면 토요일에 기획된 퍼포먼스를 원점에서 다시 기획해야 하는 일이 벌어지기 때문이다.

드디어 이순신 동상 앞에 선 한 지도위원. 그리고 그 뒤에는 경찰간부가 무전기를 통해 “다른 행동은 보이지 않는다”며 한 지도위원의 행동 하나하나를 전하는 모습이 보였다. 그렇게 한 지도위원은 광화문 광장을 돌기 시작했고 이순신 장군 동상에서 시작된 퍼포먼스는 ‘플라워 카펫’을 지나 다시 이순신 동상으로 발걸음이 멈췄다. 모두들 긴장하는 순간.

경찰간부는 “이제 가세요”라는 말만은 전할 뿐, 한 지도위원에게 아무런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

이 말이 끝나자마자 한 지도위원은 “토요일에 광화문광장에서 예정했던 문화행동 할 수 있겠네”라며 환한 웃음을 지어보였다. 그렇게 한 지도위원은 무사히 사무실로 돌아갈 수 있었다. “토요일날 굉장히 재밌을 것 같다”는 말을 남기며….

▲ 광화문 광장을 돌고 있는 한명부 지도위원의 모습ⓒ나난
현행 집시법에는 1인시위에 대한 규정은 따로 “없다”. 집시법은 2인 이상을 규정으로 하기 때문에 ‘1인시위’는 오히려 집시법 기준으로 본다면 ‘시위’로 규정되지 않아 ‘집시법’으로 처벌되지 않을 뿐이다. 또한 집시법에는 “일정한 간격이 떨어진 장소는 동일 장소로 보지 않는다”고 보고 있기 때문에 언론노조의 퍼포먼스는 실행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문제는 또다시 여기에 있다. 그 일정한 간격을 어느 정도로 둘 것인가. 이 역시 명확한 규정이 없기 때문에 각 관할 경찰서의 지침에 따르고 있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지난 6월 울산지법 제3형사부는 “피고인들이 공동 목적을 갖고 일정한 지점에서 동시에 피켓을 들고 서 있는 형태로 3∼4명이 1조로 교대 시위한 점, 30∼70m 간격을 두고 사회통념상 단일한 구역에서 동일한 취지의 의사를 표시해 일반인도 복수 시위 참가자의 존재를 충분히 알 수 있었던 점 등에 비춰 순수한 형태의 1인시위로 볼 수 없다”는 판결을 내린 바 있다.

그렇다면 이 또한 정치적으로 현 정부에 반하는 것이 아닌지에 대한 것이 첫 번째 기준일 수 있고, 그에 따라 ‘1인시위’가 아니라 ‘불법’집회로 규정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정부의 맘에 따라 그때그때 다른 집시법 적용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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