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하산 사장’ 논란으로 언론계 안팎의 비난을 받던 구본홍 YTN 사장이 결국 사퇴 의사를 밝히고 YTN을 떠났지만, 석연치 않은 사장 선임과정에서 촉발된 지난 1년 간의 YTN사태는 아직, 결코 해결되지 않았다. 구본홍 반대 투쟁을 했던 노조원 6명은 여전히 해직 상태이며, 징계 처분 취소 소송, 업무방해와 관련한 소송 등 노사 간 법적 소송도 여전하다. 이 과정에서 간부와 노조원 사이 갈등의 골은 계속 깊어져만 갔다.

노조원 6명, 아직도 해직자 신분

지난해 10월6일 YTN 인사위원회가 징계 조치가 내린지 10개월이 지난 현재, 징계를 받은 노조원 33명 가운데 17명은 현업으로 복귀했지만 해임 통보를 받은 6명의 노조원은 아직도 현업에 복귀하지 못했다.

▲ 2008년 10월6일 노조원 33명에 대한 징계가 내려진 직후, YTN노조원 150여명이 회사 쪽의 징계 강행에 대응하기 위해 19층 보도국에서 긴급 조합원 총회를 열고 있다. ⓒ송선영

당시 인사위원회는 노종면 전국언론노동조합 YTN 지부장과 현덕수 전 지부장을 비롯한 노조원 6명에 대한 해임과 노조원 6명에 대한 정직, 노조원 8명에 대한 감봉, 노조원 13명에 대한 경고 조치를 당사자들에게 통보했다. 이는 지난 1992년 MBC 방송민주화운동 당시 위원장과 사무처장 등 2명이 해고된 이후 16년 만에 다시 나타난 언론인 해고이며, 1980년 전두환 정권의 언론 통폐합 사태 이후 처음 있는 ‘무더기 해고’였다.

이후 전국언론노동조합을 비롯해 외교통상부, 통일부를 출입하는 기자들이 기자실 차원에서 징계 규탄 성명을 내기 시작했으며, 국제기자연맹과 같은 국제 언론 단체의 규탄도 이어졌다. 뿐만 아니라 정치권, 언론계, 시민사회단체, 법조계에서도 이를 규탄하고 나섰으며, 18대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출석한 구본홍 사장은 이에 대한 따가운 지적을 받았다.

현재 YTN내부에서 해직 문제를 해결하려는 움직임은 없다. 노조가 회사 쪽을 상대로 제기한 징계 처분 취소 소송 결과에 따라 해직자들의 복직 여부가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YTN노사는 앞서 징계 처분 취소 조정을 두 차례 했으나, 노사 간 이견이 커 결국 결렬됐다.

지금까지 두 차례 공판이 진행됐으며, 지난달 14일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렸던 2차 공판에서 노조 쪽은 “구본홍 사장이 날치기 주총을 통해 선임돼 YTN 조합원들이 저항할 수밖에 없었고, 인사 명령 등도 인정할 수 없었으며 결국 부당한 대량 징계까지 이어졌다”고 주장했다.

구 사장이 해직자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갑작스럽게 사퇴한 것에 대한 비판도 있다. 구 사장은 몇 차례 담화를 통해 “노사가 진정으로 화합해 YTN사태를 해결해야 한다”고 했지만 실제적으로 해직 문제에 있어서는 다소 유보적인 태도를 보였다. 업무방해, 공동폭행 혐의 등으로 불구속 기소된 YTN 노조원들에 대한 공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구 사장은 “노종면 노조위원장을 처벌해야 한다”고 말해 논란이 일기도 했다.

해직자 복직이 이뤄지지 않고서는 YTN사태가 완전하게 해결되었다고 보기 어렵다.

YTN의 한 간부는 “YTN이 해결해야 할 가장 1순위는 해직된 노조원들의 전원 복직”이라며 “복직이 해결되지 않는 이상 YTN의 발전은 불가능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 노조원도 “구 사장은 시급한 해직자 문제를 해결하지 않은 채 사퇴를 했다”며 “일을 벌려놓고 (무책임하게) 사퇴한 것”이라고 비난했다.

노조원-간부 갈등

당초 YTN노조의 투쟁은 ‘대통령 언론 특보 출신이 언론사 사장으로 와서는 안 된다’는 ‘상식’으로 시작되었지만, 투쟁 과정에서 노조원들과 간부들과의 갈등은 걷잡을 수 없을 만큼 깊어졌다.

▲ 2008년 7월22일 오전 7시 35분 경, 구본홍 사장 출근이 임박하자 일제히 후문으로 내려온 간부급 회사 측 관계자 20명 ⓒ송선영

일부 간부들은 노조가 지난해 ‘구본홍 출근 저지 투쟁’을 이어갈 당시, 매일 아침 회사 뒷문에 나와 구 사장의 출근을 맞았다. 간부들은 노조원들이 구 사장을 향해 강하게 항의하는 과정에서 물리적 충돌이 우려될 때 마다 대오를 유지해 구 사장을 둘러싸는 행동을 보이기도 했다. 또 노조원들에 대한 잇따른 징계의 중심에는 간부들이 있었고, 이들은 인사위원회를 통해 노조원들의 징계 수위를 결정했다.

이 뿐만이 아니다. 노사가 서로에게 제기한 고소고발 취하를 뼈대로한 지난 4월1일 노사 합의 직후 표면적으로 YTN사태가 일단락 된 것처럼 보였으나 보도를 둘러싼 보도국 간부들과 노조원 사이의 첨예한 갈등이 있었다. 이 과정에서 한 간부가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관련 뉴스 대신 북한 핵 관련 뉴스를 먼저 내보내라는 지시를 해 뉴스 편집 순서가 뒤바뀌는 등 내부적으로 큰 논란이 되기도 했다.

지난 1여 년 동안의 투쟁 과정에서 노사는 서로가 큰 상처를 주었고, 또 입었다. 정작 상처를 입힌 구 사장은 “그동안 적지않은 심적 고통을 받았으며 갈등을 겪는 동안 몸과 마음이 지쳐서 이제는 쉬면서 안정을 취하고 싶다”고 떠났지만, YTN 구성원들의 상처는 근원적 해결 없이 계속 방치되고 있는 셈이다.

방송사 민영화의 압박

그 동안 YTN노조의 투쟁 과정에서 신재민 문화체육관광부 차관을 비롯한 정부 관계자들은 ‘YTN 민영화’ 가능성을 수차례 노골적으로 시사해왔다. 정부의 “YTN의 공기업 지분을 매각해 민영화할 것”이라는 이같은 주장은 조선일보를 비롯한 보수신문들의 단골 이슈로 등장했다.

▲ 조선일보 8월4일치 5면

YTN은 민간 기업이지만 전체 지분 가운데 공기업 지분이 38.36%로, 사실상 공기업적 성격이 짙다. YTN의 주주 현황을 보면 한전KDN가 21.43%로 최대 주주이며, KT&G 19.95%, 미래에셋생명보험 13.57%, 한국마사회 9.52%, 우리은행 7.41%, 우리사주조합 등을 비롯한 기타를 포함해 28.12%이다.
구 사장이 사퇴 의사를 밝힌 지 하루만인 오늘, 조선일보가 <여(與) 핵심관계자 “공(公)기업 지분 팔아 민영화”>를 통해 여권 관계자의 발언을 인용해 민영화를 언급한 것도 익숙한 보도 패턴이다.

조선일보는 “방송계에서는 구 사장의 사퇴가 공기업이 보유한 YTN 지분 매각을 촉발, 실질적 민영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며 “바뀐 방송법에서는 1인 지분 한도가 40%(대기업과 신문은 30%까지 제한)까지 늘어나 경우에 따라선 현재의 공기업보다 더 많은 지분을 보유한 민간 최대주주가 나올 수도 있다”고 말했다.

조선일보는 YTN의 민영화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바뀐 방송법’이라는 표현을 써 방송법 개정을 기정사실화 하고 있지만, 방송법은 재투표와 대리투표 논란으로 헌법재판소에 효력정지 가처분신청과 권한쟁의 심판 청구가 제기된 상태다.

이에 대해 노종면 지부장은 “언론관련법은 대리투표와 재투표 등으로 사실상 폐기되어 있는 상태로 헌법재판소의 판결을 기다려야 하는데 (조선일보 등은) 마치 YTN 지분을 마음대로 소유할 수 있는 것처럼 보도했다”고 비판했다.

조선일보는 또 YTN 민영화 반대를 주장했던 구 사장의 사퇴로 간부들 사이에서 “정부가 민영화 수순에 들어간 것으로 보고 있다” “민영화를 막을 수 있는 센 사람이 새 사장으로 와야 한다” 등의 발언이 오가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나 한 간부는 “회사의 미래를 생각하는 데 있어서는 노사가 따로 있을 수 없기에, 민영화를 막겠다고 했던 구 사장이 사퇴하면서 ‘차기 사장은 누가될까’ 라는 등의 논의 과정을 통해 자연스럽게 민영화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 수준”이라며 “회사의 미래에 대해 간부들도 고민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 2009년 5월14일 YTN건물 로비에 걸린 펼침막 ⓒ송선영

남은 절차

YTN은 오늘 서울 시내 모처에서 긴급 이사회를 열어 구 사장의 사퇴 의사를 수용, 배석규 현 전무이사를 대표이사로 하는 임시 대행체제에 들어갔다.

이 자리에서 배 전무는 “사장이 임기 중에 중도 사퇴하는 일이 발생한 것은 불행한 일”이라며 “급격한 미디어 환경변화와 경기침체로 인한 경영위기 그리고 노사갈등 등 어려운 상황에서 단 한순간도 회사의 경영공백이 있어서는 안 되는 만큼 소신과 대표이사로서의 권한을 갖고 회사를 적극적으로 이끌어가겠다”고 밝혔다.

YTN 이사회는 주주들의 의견을 모아 차기 사장 선임 과정 등을 비롯한 선임 전반에 대한 논의를 추후에 진행한다는 계획이다. 이 과정에서 사장후보추천위원회를 통해 사장 후보를 공모하고 서류 심사, 면접 등을 통해 최종 사장 후보를 결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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