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광장이 개방되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프랑스 파리의 샹젤리제, 중국의 천안문 광장같이 나라의 정체성을 대변하는 국가 상징 가로가 될 것”이라며, 1일 저녁 기념식 ‘광화문광장 새빛들이’ 행사장에서 서울의 찬가와 함께 광화문광장을 ‘시민의 품으로’ 돌려보냈다(?). 언론들은 성대한 행사 장면을 전하며 조선시대 육조거리의 재탄생이라고 사업적 성과를 치켜세우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서울시장 재직 시절 만든 ‘서울광장’도, 오세훈 시장이 만든 ‘광화문광장’도 처음에는 보잘것없이 넓은 공간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 장소를 ‘광장’으로 부르게 된 것은 서울시의 ‘광장 공사’ 이전에 시민들의 대규모 집회 때문이다. 정치적 사안이든 월드컵이든 불특정다수와 함께 공유하고 싶은 이슈가 있을 때 시민들은 집에서 나와 군중들이 모일 법한 장소로 찾아 갔다. 그렇게 한 번 두 번 시민들이 모이고 나면 그 장소는 자연스럽게 ‘광장’이 된다. 광장은 토지 용도의 명칭이나 행정적 기획의 산물이 아닌, 시민들의 자유로운 공간 점유에서 생겨나는 정치적 개념이자 민주주의의 상징인 것이다.

▲ '광화문광장 새빛들이' 행사에 참석한 시민들이 광화문광장과 주변 인도를 가득 메웠다. ⓒ 오마이뉴스 박상규
하지만 서울시청은 그렇게 시민들에 의해서 상징성을 획득한 공간을 족족 접수해왔다. 별 볼일 없는 땅이라고 내팽개쳐 놓았다가 금싸라기가 묻혀있다는 소문을 들은 땅주인처럼 광장을 보는 눈빛이 돌변했다. 물론 처음에는 ‘관리자’로 나섰다. 시민들의 편의를 위해 더 쾌적한 곳으로 만들겠다고 장막을 치고 공사를 했다. 보기 좋게 만들었으니 이제 사용규칙을 만들고 사용 비용을 받는다. 광장의 주체가 ‘시민’에서 ‘서울시’로 변모하는 순간이다. ‘공공질서’를 우선시하는 서울시의 관리규칙에 의해 처음 광장을 만들었던 주체들은 더 이상 광장을 이용할 수 없게 되었다.

광장은 시민들의 ‘집회·결사의 자유’가 구현되는 공간이다. 이 공간이 행정의 손을 타면 토지 용도를 지칭하는 명칭이 되고, 관청이 그 토지의 소유자며 시민들은 사용자로 명시된다. 작년 광우병 촛불집회를 떠올려보라. 촛불이 장기화되자 시민들이 구성한 광우병대책회의에 서울시는 1200만원이라는 서울광장 사용료 고지서를 보냈다. 당신이 서울광장에서 촛불을 한번 들 때 시간당 몇 원의 사용료를 내야했던 것이다. 당신이 군중들과 함께 광장에 모이기 위해서는 ‘허가’를 받아야 하고 ‘허가’를 받지 않으면 과태료까지 붙는다. 애초에 광장을 행정적으로 접수했던 바로 그 순간에, 시민들은 ‘광장’을 빼앗겼다. 그 광장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시민’은 소풍을 나왔거나 관에서 주도하는 문화행사를 즐기러 온 사람들에게만 해당된다. 같은 목적을 가진 다수의 시민들의 집회는 기업과 마찬가지로 취급된다.

▲ 광화문광장으로 진입하지 못한 시민들은 세종문화회관 계단에 앉아 '새빛들이' 행사를 지켜봤다. ⓒ 오마이뉴스 박상규
이순신 장군 동상 하나 서 있는 도로였어도 시민들은 모였고 정치적 발언을 했고 축제를 벌였다. 그 광화문 거리가 서울시에 의해 ‘사용조례’와 함께 ‘광화문광장’이란 이름으로 돌아왔다. ‘일부 또는 전부를 이용함으로써 불특정 다수 시민의 자유로운 광장 이용을 제한하는 행위’는 광장 ‘사용’이며, ‘광장의 조성목적에 위배되거나 다른 법령 등에 따라 이용이 제한되는 경우’를 서울시가 판단해 사용 허가를 내린다.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가 주관하는 행사, 공연 또는 전시회 등 문화·예술행사, 어린이․청소년 또는 여성 관련 행사’가 우선이다. 허가를 받았더라도 ‘국가 또는 서울특별시가 공익을 위하여 광장 사용이 필요한 경우, 시민의 안전확보 및 질서유지 등을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는 서울시가 허가를 취소할 수 있다.물론, 한 시간에 1제곱미터당 10원의 사용료를 지불해야 한다. 광화문광장은 서울시청 행사 광장으로 ‘집회 및 결사의 자유’를 거세당한 채 물리적인 공간의 명칭으로만 시민들에게 돌아왔다. 그 광장은 개방된 것이 아니라 폐쇄된 것이다.

▲ 1일 시민들에게 개방된 광화문광장 '플라워 카펫'에서 시민들이 휴대전화 사진기를 통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박상규
오세훈 시장에게 ‘광화문광장’은 민주주의의 상징적 공간이 아니라 “비즈니스”의 공간이다. 정치적이든 경제적이든 이익을 낼 수 있다는 판단 아래 진행되었다. 그래서 이 사업의 성패를 가늠하는 프레임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설사 광화문광장이 오세훈 시장의 말마따나 관광의 명소가 되어 서울시와 국가의 브랜드 이미지를 높인다 하더라도, 왜 명소를 굳이 시민들의 ‘광장’을 빼앗으면서 만들어야 하는지에 대한 대답은 음울하지 않은가. ‘광화문광장 새빛들이’ 행사는 또 한 번 서울시가 행정의 주체이자 공간의 소유자라는 것을 확인시켜주는 퍼포먼스였다. 휘황찬란한 기념식에 동원되고 꽃밭에서 사진을 찍으며, 시민들은 광장 앞에 ‘민주주의’라는 수식어 대신 ‘쉼터’라고 써야 하는 모욕을 당한 셈이다. 우리는 그렇게 ‘정치’를 빼앗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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