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_ 과거 텐아시아, 하이컷 등을 거친 이가온 TV평론가가 연재하는 TV평론 코너 <이주의 BEST & WORST>! 일주일 간 우리를 스쳐 간 수많은 TV 콘텐츠 중에서 숨길 수 없는 엄마미소를 짓게 했던 BEST 장면과 저절로 얼굴이 찌푸려지는 WORST 장면을 소개한다.

이 주의 Best: 가만히 있지 않겠습니다! <솔로몬의 위증> (12월 23일 방송)

같은 반 친구가 죽었다. 자살로 사건이 종결되는 줄 알았으나 타살 의혹이 제기됐다. 죽음에 얽힌 진실을 밝히고자 했던 친구는 의문의 교통사고를 당했다. 다른 친구가 또 다시 진실을 밝히기 위해 언론의 힘을 빌렸지만, 진실이 드러나기는커녕 오히려 여론의 뭇매만 맞았다. 그 와중에도 어른들은 무조건 “가만히 있으라”고 했다. “가만히 있는 게 너희들한테 유리하기 때문이다”라는 억지 논리까지 갖다 붙이면서.

JTBC 금토드라마 <솔로몬의 위증>

실화가 아니다. 다큐멘터리도 아니다. 심지어 일본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드라마 <솔로몬의 위증>이다. <솔로몬의 위증>은 친구의 죽음에 얽힌 진실을 파헤치는 고등학생들의 이야기다. 그럼에도 3회까지 보면서 떠오르는 일은 단 하나로 압축된다. 2014년 4월 16일, 바로 그 날. 어른들은 가만히 있으라 했고, 언론은 자기 입맛대로 써내려갔으며, 사람들은 빨리 잊으라고 재촉했다.

그래서 <솔로몬의 위증>을 보는 건, 단순한 드라마 시청 행위 그 이상이 되었다. 극 중 정국고등학교 학생주임 교사는 “우리는 학교 정상화를 해보려고 애쓰는데 학교가 이렇게 된 건 다 너희들 때문이다, 이 철딱서니 없는 것들아”라고 오히려 학생들 탓을 한다. 진실을 밝히는 행동은 철딱서니 없는 행동으로 전락했다. 이에 고서연(김현주) 학생은 이렇게 받아친다.

“어른들 말만 들으면서 가만히 있었어. 해결해주겠지, 기다리고만 있었어. 근데 이게 뭐야. 달을 가리키면 손가락이 아니라 달을 봐야 되는 거 아냐? 우리가 알아야 된다고 생각해. 아무도 안 알려주면 직접 알아봐야 한다고 생각해. 그러니까, 우리가 밝혀내자. 이소우가 왜 죽었는지.” 당당히 우리 손으로 진실을 밝히자고 말했던 학생은 교사에게 뺨을 맞았다. 그리고 학교 측은 이를 “교권 침해”라고 몰아세웠다.

고서연은 굴하지 않고 교내재판을 준비했다. 500명 학생들의 동의를 받기 위해 교실 밖을 나섰다. 그리고 ‘이소우는 왜 죽었는가, 우리가 밝혀내자’는 판넬에는 세월호를 잊지 말자는 뜻의 노란 리본이 달려 있었다. 분명히 일본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드라마인데, <솔로몬의 위증>은 어쩐지 세월호 아이들에게 보내는 따뜻하면서도 힘 있는 편지가 될 것 같다. 우리는 아직 너희들을 잊지 않았다고, 꼭 진실을 밝혀주겠다고 말이다. 진실의 무게만큼이나 묵직한 드라마가 우리 눈앞에 나타났다.

이 주의 Worst: 청문회보다 더 재미없는 <개그콘서트> (12월 18일 방송)

유병재는 최근 JTBC <말하는대로>에 출연해 “요즘은 코미디로 쓸 소재가 많아서 뷔페에 온 느낌이다”라고 말했다. 풍자 소재가 넘쳐나다 보니 어떤 것을 소재로 삼아도 다 코미디로 승화되는, 말하자면 개그 소재 풍년의 시대. 그러나 KBS <개그콘서트>는 잘 차려진 밥상에 숟가락도 못 올리고 있고 있다.

KBS 예능프로그램 <개그콘서트>

‘대통형’은 대통령과 주요 장관들을 주인공으로 한 풍자 코너다. 그러나 사실상 풍자라기보다는, 화제가 되고 있는 최순실 및 정치인들의 유행어를 모방하는 수준에 가깝다. 박근혜 대통령은 ‘헤어와 메이크업이 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청와대 조리실장의 마지막 인사를 거절했다. 이와 관련, ‘대통형’에서는 “내일 청와대 조리실장이 인사 좀 드리고 싶다고 합니다”라는 유민상 국무총리의 말에 서태훈 대통령이 “그럼 내일 샵에 좀 다녀올게요. 생얼로 인사할 순 없잖아요”라고 답했다.

자, 어디가 풍자인가. 말을 하는 사람만 달라졌을 뿐, 대사는 똑같다. 김대성 문화융성부 장관은 매주 ‘10억 체조’를 들먹이면서 체조 이름만 바꿔 우려먹는다. 굉장히 1차원적인 풍자, 아니 성대모사라 할 수 있다.

풍자 코너만의 문제는 아니다. 전체적으로 코너의 재미가 동반 하락했는데, 그 중에서도 여성을 소재로 한 코너는 재미도 없을뿐더러 불쾌하기까지 하다. 리얼 코너를 표방하는 ‘정명훈’은 세 명의 개그맨에게 즉석 상황을 제시하며 애드리브를 요구한다. 지난 18일 방송분에서는 ‘처음 본 여자를 사로잡는 멘트’였다. 개그맨 김정훈은 유치한 율동과 함께 “번호 좀 주세요. 당신의 개가 될게요 월월월”이라고 했다. 여기까지는 ‘무리수’ 정도로 치부할 수 있다.

그러나 정명훈의 대사는 정도가 심했다. 진행을 맡은 개그맨 정승환은 정명훈을 굉장히 치켜세우며 “이 역사적인 순간, 웃을 준비 되셨습니까?”라며 한껏 객석의 분위기를 띄웠다. 그리고 이어지는 정명훈의 한 마디. “당신은 내 인연입니다. 네 이년” 객석은 웃지 않았다. 예의상으로도 아무도 웃지 않았다. 이것을 ‘말장난 개그’라고 짠 것인지 저의가 의심스러울 정도다.

KBS 예능프로그램 <개그콘서트>

‘신랑 입장’ 코너는 기혼녀를 공격했다. 겉으로는 남편들의 애환을 다루는 것처럼 보이지만, 개그맨들의 대사를 뜯어보면 결국 ‘남편 월급으로 사치부리는 아내’를 공격하기에 여념이 없다. “제 와이프는 요리를 안 하는데 그릇을 그렇게 사요. 그것도 제 카드로.”, “더 신기한 건 그거 넣는다고 200만 원짜리 장식장을 또 하나 샀어요. 그것도 제 카드로.”, “큰 애 감기 걸린다고 코트 사주러 백화점에 갔는데 자기 털 코트를 샀어요. 그것도 제 카드로.” 계속해서 자신의 카드로 무엇을 한 아내의 행위를 강조한다. 마치 남편은 뼈 빠지게 돈을 버는 개미이고, 아내는 그 돈을 흥청망청 쓸데없이 쓰고 다니는 배짱이인 것처럼 말이다.

누군가는 어떤 개그를 보고 불편할 수 있다. 그것은 풍자를 잘했다는 뜻이다. 그러나 불편한 게 아니라 불쾌했다면, 그것은 개그의 잘못이다. 거창한 풍자는 차치하고라도, <개그콘서트>가 불쾌하지 않을 정도의 재미만이라도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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