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보트 태권V와 마징가Z의 김박사들은 외계의 위협에서 보란 듯이 세상을 척척 구해낸다. 그러나 우리 비운의 주인공, 해운대의 김박사(박중훈)는 다르다. 지진연구에 남다른 소양과 재주와 열정을 지닌 그는 누구보다 먼저 ‘메가 쓰나미’의 전조를 발견하고 끊임없이 공무원들에게 위험을 알리지만 번번이 묵살당한다. 김박사의 천재성을 제아무리 강조한다 해도, 공무원들의 업무스타일을 동네북처럼 두들긴다 해도, 그들이 통상적이고 공식적인 절차를 준수하는 이상, 김박사의 실패는 필연적이다. 결국 영화는 공무원의 안전불감증과 무사안일, 복지부동 앞에 천재 과학자가 무릎을 꿇고 마는 비극적 스토리? 그렇지는 않다. 미안하다, 제목은 낚시였다.

전체적인 스토리로 보자면 김박사의 예정된 ‘패배’도, 삽시간에 해운대를 쓸어버리는 광포한 메가 쓰나미도 맥거핀에 가깝다. 윤제균 감독이 “쓰나미만 있는 게 아니라 쓰나미도 있는 영화”라고 이야기한 그대로다. <해운대>는 재난을 빌미로 징한 관계들의 초상을 억센 부산사투리에 버무려낸 회무침 같은 영화다. <딥임팩트>, <투마로우> 같은 할리우드 재난영화들과 <해운대>가 결정적으로 갈라서는 지점이 바로 여기다. 영화는 몇 해 전 유행했던 ‘한국적 블록버스터’라는 말의 쓰임새를 위해 탄생한 것 같다. 물론 할리우드 영화들도 가족의 소중함을 금과옥조처럼 내세우지만, 아무래도 싱크로율이 떨어지는 건 어쩔 수 없는 일. <해운대>는 재난을 통해 억지영웅을 만들어내지 않으면서도 연인과 가족간의 애끓는 정, 개발과 공동체의 결속, 인간의 도리와 정리 등을 효과적으로 드러내 준다.

사실, 중심커플이 셋이나 되는 시놉시스가 그렇게 명쾌하지만은 않다. 해운대 상가번영회 회장인 만식(설경구)은 연희(하지원)에게 호감 이상의 감정을 품지만 2004년 쓰나미에 휩쓸린 원양어선에서 그녀의 아버지를 구해내지 못했다는 자책감에 맘을 드러내지 못하고 그녀 곁을 어정쩡 맴돈다. 해양구조대원인 만식의 동생 형식(이민기)은 순찰 중 피서객인 삼수생 희미(강예원)을 구한 후 그녀의 적극적인 애정공세에 끌린다. 지질학자 김박사(박중훈)는 메가 쓰나미 경고가 먹히지 않은데다 전처 유진(엄정화)과 아빠의 얼굴조차 모르는 딸을 마주쳐 복잡한 심경이다. 피서객이 빽빡하게 몰려든 해운대로 쓰나미는 서서히 몰려오는데, 공동체는 개발 앞에 흔들린다.

극한의 상황에 처하면 인간의 본성이 드러난다는 것은 상식적이다. 돌발적으로 생긴 사연이든, 해묵고 뜨악해진 사연이든, 굽이굽이 돌아 새롭게 출발하려다 암초를 만난 사연이든, 각자의 사연이 경연하는 무대는 목숨이 경각에 달린 순간이다. 상식을 훌쩍 뛰어넘는 경악할만한 재해는 갈등을 폭력적으로 해소한다. 목숨이 왔다갔다하는 순간, 이박삼일 눈물 찍어내며 하소연해도 끝이 없을 세상사 곡절 많은 각자의 사정들은 미처 떠올릴 틈조차 없다. 대개의 화해는 목숨을 담보로 이루어진다. 그리하여, 개발에 앞장섰던 작은아버지는 개발 반대의 최선두에 섰던 조카 만식과 목숨으로 화해하고, 건달 아들의 면접을 위한 구두를 사려던 어미는 흙탕물 위 둥둥 뜬 구두 한 짝과 함께 목숨을 잃는다. 짧은 순간 끌림을 경험했던 커플(형식-희미)은 생사를 달리한 채 영원한 추억으로 갈리고, 쿨하게 떨어져 살았던 부부(김박사-유진)는 아이를 매개로 뜨거운 화해를 성사시킨 직후 아이만 남겨둔 채 해일 속으로 사라진다. 역시 생존을 위한 사투를 벌이지만 주인공 대접을 받아 끝까지 살아남는 만식과 연희는 언제 그런 갈등이 있었냐는 듯이, 폐허가 된 삶의 터전에서 새로운 삶을 약속한다.

영화는 곳곳에서 부산성을 드러내려 애쓴 흔적을 보여준다. 배우들의 사투리는 핍진하다 할 만하고, 조금은 군더더기처럼 보일 야구장 씬은 롯데의 성적에 따라 프로야구 흥행이 들썩거리는 ‘야구도시 부산’의 근래 풍경을 확실히 담아냈다. 만식이 연희에게 어설픈 ‘쁘로뽀즈’를 날리는 대목에선 불꽃축제가 화려한 빛깔을 자랑한다. 부산풍광에서 빼놓을 수 없는 광안대교의 풀샷 역시 재난영화에 걸맞는 방식으로 등장한다. 기본은 확실히 넘긴 쓰나미 CG는 해운대 앞 골목들과 대형건물들이 쓸려가는 장면들을 비교적 호쾌하게 보여준다.

배우들의 연기도 안정적이다. 재난영화의 긴장감도 잘 살아난 편이다. 연희와 만식의 전봇대 씬, 유진의 엘리베이터 씬 등은 관객들의 가슴을 조마조마하게 만들법하다. 쓰나미 정국에서 보여주는 동춘(김인권)의 액션영화와 개그영화를 오가는 연기는 옥죄는 긴장을 이완시키는 동시에 긴장을 배가시키는 신묘한 효과를 보여준다. 다만, 김박사와 유진이 딸을 헬기에 태우며 보여준 신파(“내가 네 아빠다!”, “아빠~”)는 살짝 자제하거나 조금 비틀었더라면 좋았을 뻔 했다.

‘해운대 100만 인파’는 여름 미디어의 대표적인 클리셰다. 해운대에서 회 한 접시 안 먹어 본 사람도 많지 않을 것이고, 달맞이 고개에서 밥 한끼 먹어보지 않은 이도 드물 것이다. 영화가 욕망하는 지점은 해운대 100만 인파의 기시감을 공략하는 동시에 가족/애인과의 정이라는 이중의 기시감을 교차시키는 전략이다. 여기에 이제는 익숙한 풍경이 되어버린 재난영화의 CG라는 클리셰를 더하면 삼중의 기시감 전략이 완성된다. ‘반복이 아니면 어떤 것도 의미를 생성해내지 못한다’고 했던가. 익숙함을 되새겨 자극하는 것, 변할 수 없는 블록버스터의 법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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