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버스터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당신의 말은 기본적으로 거짓말이다. 블록버스터를 좋아하지 않기 위해선 전제가 필요하다. 물론, 누군가도 '언젠가부턴' 블록버스터를 좋아하지 않을 수 있다. 칼포퍼의 말을 약간 비틀자면, 어렸을때 블록버스터 매니아가 아니었던 사람은 바보고 늙어서까지 블록버스터 매니아로 남아있는 사람은 더 바보일지도 모른다. 언제나 영화는 꿈을 제조하는 공정이고, 신화를 현실로 재현하는 결과물이다. 영화사의 동서고금, 장르를 막론하고 블록버스터를 향한 도전과 집념이 멈추지 않고 있는 이유는 여러가지 맥락에서 설명이 가능하겠지만, 가장 원천적인 이유는 영화에 투영되어 있는 우리의 욕망이 그것을 원하기 때문일 것이다.

한국 영화의 비약적 성장 이후에도, 블록버스터를 지배해 온 것은 여전히 헐리우드였다. 인지할 수 있는 것 이상의 스펙터클, 인정할 수 없는 것 이상의 현실을 앵글에 담기 위해선 '자본'과'기술'그리고 '노하우'의 3박자가 정교하게 맞아떨어져야 한다. 한국형 블록버스터란 독특한 표현이 있긴 했지만, 여전히 그것은 헐리우드의 완성력에 약간은 미치지 못하는 국산 영화들을 예우(혹은 위로)하는 표현이었다. 해운대는 또 다시 그 경계 위에 섰는지도 모른다. 더이상 애국심은 통하지 않는다.

이번 주 말랑한 미디어는 '블록버스터'이다. 해운대의 예사롭지 않은 흥행성적에 감흥받은 기획이다. 해운대가 영화 자체로 꽤 흥미롭다는 반응과 제보가 여럿 있었다. <편집자>

언제나처럼 블록버스터의 계절이 성큼 다가왔다. 우리에게 이미 매우 익숙해진 단어 블록버스터, 주로 여름이나 크리스마스와 같은 전 세계적 휴가 시즌이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영화를 매개로 한 초국적 엔터테인먼트 자본의 한판 승부를 어떻게 봐야 할까.

블록버스터의 기원이나 사전적 의미를 되짚어보는 것이 반드시 무의미한 일은 아니지만, 이미 그것이 우리 일상 안에 압도적으로 자리 잡은 상황이란 점에서 약간 형식적인 노릇인 것은 사실이다. 본래 한 동네를 완전히 작살내는 초고화력 폭탄을 지칭했던 이 단어는 1975년 스필버그가 <죠스>로 1억불 이상의 흥행 수익을 올리며 게임의 제왕이 된 이후 세계 영화 시장을 작살내는 초대형 이벤트의 대명사로 완전히 안착해 버렸다. 스필버그의 벗이자 동반자인 조지 루카스가 <스타워즈>(1975)로 올린 약 1억 8000불의 흥행기록은 블록버스터 시대에 대한 확인사살이었음에 다름 아니다.

혹자들은 블록버스터가 영화의 한 장르이거나 혹은 제작규모에 따른 분류라고 오해하기도 하는데 전혀 사실 그렇지 않다. 블록버스터는 어떤 특정 장르를 지칭하는 것이 전혀 아닐뿐더러 일부의 오해와는 달리 초대규모 물량을 투여한 작품을 지칭하는 것도 아니다. ‘원조’격인 <죠스>만 해도 단 몇 백만 달러의 제작비를 투여한 중소 규모의 상업영화에 불과했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이야 스필버그가 영화 흥행의 대명사로 인식되고 있지만 이 작품을 만들 당시만 해도 흥행성 여부가 충분히 검증 안 된 신인급 감독에 불과했으며 ‘식인 상어와의 대결’이란 소재도 B급 영화에나 어울리는 것이었다. 오히려 제작비로 치자면 당시로는 최대 규모인 약 3500만불을 투입하고도 흥행에 참패하여 제작사 유나이티드 아티스츠를 문 닫게 만들고 마이클 치미노 감독(<디어 헌터>)의 캐리어를 끝장내 버린 전설의 작품 <천국의 문>(1980)을 따를 수 없다. 블록버스터 시대 개막에 도장을 찍은 <스타워즈> 역시 당시 헐리우드에서 주류 영화 시장에서는 생소한 소재 때문에 업계 시사회 당시 관계자들에게, “이건 애들이나 볼만한 영화”라는 조롱을 들었던 엑스팩터에 불과했다.

그럼에도 블록버스터가 전 세계 흥행을 기대하며 대규모 제작비를 퍼부은 대형 상업영화를 지칭한다는 인상이 강력하게 자리 잡은 것은 대규모 영화자본의 반복적 홍보의 학습효과 덕분이다. 시작은 비록 재기 넘치는 신인급 감독들의 참신한 개인기와 어느 정도의 천운으로 시작되었으나 이게 자국에서나 세계 시장에서 ‘먹힌다’는 것이 증명된 이후 자본은 꾸준히 인위적인 블록버스터 만들기를 시스템화 하며 세계정복을 향한 총력전을 벌여나갔다. 젊은 스필버그나 루카스가 멋도 모르고 폭탄을 든 채 적진으로 뛰어들었다가 무공훈장을 받은 애숭이 병사들이었다면 그들의 성공을 발판으로 지휘관을 전면 교체하고 병력을 재정비한 초거대 영화 자본의 공습이 뒤이어졌다. 1970년대 전반만 해도 헐리우드 주류 영화의 지향이 <대부>(1972)와 같은 웰메이드한 드라마였다면 앞서 언급한 <천국의 문>의 실패(<천국의 문>은 흥행 결과와 무관하게 수정주의 서부극의 완성으로 손꼽히는 비운의 걸작으로 자리잡았다.)는 패러다임의 교체를 극적으로 시사한다. 탄탄한 극적 개연성을 바탕으로 한 심층적 드라마의 시대가 끝나고 전 세계 누구나 세대 막론하고 100여분 동안 입을 딱 벌리고 즐길 수 있는 영상 롤러코스트의 시대의 문이 열린 것이다. 영화 자본은 몇 번의 전략 수정을 통해 보편적 소재와 시청각적 즐길 꺼리들을 집대성하는 제작 방식을 구축했고 연쇄폭발 같은 전 세계 동시 개봉과 주류 미디어를 도배하는 공세적 마케팅으로 세계 침공을 이벤트화 했다.

그러나 이후 헐리우드 주류 자본의 블록버스터 전략이 언제나 성공적이었던 것은 아니다.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속성상 관성적 자기 복제와 어리석은 반복은 자신의 지반을 잡아먹는 독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는데 이는 블록버스터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다이 하드2>(1990)와 <클리프 행어>(1993)로 90년대 초반 흥행의 총아로 떠올랐던 레니 할린은 아내인 지나 데이비스를 기용하여 <컷스로트 아일랜드>(1995)와 <롱 키스 굿나잇>(1996)을 연이어 찍지만 <컷스로트 아일랜드>는 7000만불을 손해보고, <롱 키스 굿나잇>은 3000만불을 손해보며 결국 부부 사이까지도 갈라서게 만드는 결과를 낳는다. <언터쳐블>(1990)과 <늑대와 춤을>(1991), <보디가드>(1992)의 케빈 코스트너가 90년대 중반 이후 겪은 실패담도 마찬가지다. 제작과 주연 겸한 <와이어트 어프>(1994)에서 6000만불을 쓰고 2300만불을 건지며 망조를 보이기 시작하더니, <워터 월드>(1995), <포스트 맨>(1998)까지 실패가 이어지며 이 ‘언터쳐블’해보였던 빅스타는 B급 배우로 전락하고 만다.(개인적으로는 이런 허풍스런 영화들보다는 그가 한물간 노장 투수 역을 맡았던 소박한 야구 영화 <사랑을 위하여>가 훨씬 재미있었다. 여기의 감독은 무려 <스파이더맨>의 샘 레이미이다.)

그러나 자본은 결코 만만하게 물러서는 법이 없었다. 어리석은 실패가 몇 차례 되풀이 되자 재빠른 판갈이를 시작했다. 80년대 말, 90년대 초의 스타워즈를 이끌던 액션 블록버스터 주역들의 수가 어느 정도 읽히기 시작하고 식상하다는 냄새가 풍기자 주류 영화계의 밖에서 칼을 갈던 젊은 재능들을 긴급하게 수혈해 온 것이다. 90년대 가장 전복적인 B급 좀비물 <데드얼라이브>(1992)로 세계 젊은이들을 들끓게 만들었으나 헐리우드 진출작 <프라이트너>(1997)에서는 그저 그런 스코어를 기록한 뉴질랜드 영화 악동 피터 잭슨을 초대형 프로젝트 <반지의 제왕> 3부작(2001~2003)의 지휘관으로 전격 발탁한 것이 대표적 케이스일 것이다. 이런 흐름은 단발로 끝나지 않았는데 <유주얼 서스펙트>(1995)로 스릴러 작가의 가능성을 선보인 브라이언 싱어를 <엑스맨> 1, 2부에 기용한 것이나 <이블데드> 3부작(1982~1992)과 <다크맨>(1990) 등으로 다소 컬트적 감독으로 분류되던 샘 레이미를 <스파이더맨> 3부작(2002~2007)에 전격 투입한 것은 1990년대 중반 이전의 정서로는 상당히 받아들이기 힘든 변화였다.

이런 변화는 블록버스터의 질적 진화로 이어졌다. 이전까지 블록버스터 기획물에 당연히 따라 붙던 약점들이 보완되기 시작한 것이다. 물량과 액션은 있으나 드라마의 부실과 스테레오 타입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단순한 캐릭터 묘사 같은 것들 말이다. 그리고 지금까지 제출된 ‘진화의 최종 버전’은 지난 해 개봉한 <다크나이트>(2008)가 아닌가 싶다. 이미 <메멘토>(2000) 등으로 선악의 경계가 희미해지고 구원의 탈출구가 사라져 버린 시대의 비극을 유니크하게 묘사했던 크리스토퍼 놀란은 전작 <배트맨 비긴스>(2005)를 통해 중견 감독 조엘 슈마허(<배트맨 포에버>, <배트맨과 로빈>)를 만나 완전히 망가져버린 낡은 배트맨 시리즈와의 결별을 선언한 바 있다. 그러나 놀란의 명성에 비하면 <배트맨 비긴스>의 진화는 뭔가 미진함을 남겼던 것이 사실인데 3년 만에 돌아온 후속작에서 정상적 정의실현이 불가능해진 고담시를 배경으로 배트맨, 조커, 투페이스라는 상반된, 그러나 어떤 면에서는 서로 지독하게 닮아있는 개성적 캐릭터 간의 지독한 투쟁과 게임의 진경을 전시하며 작품으로서 완성도 있는 블록버스터의 신기원을 펼쳐보였다.

물론 여전히 어리석은 블록버스터가 사라진 것은 아니나 그보다 훨씬 무서운 사실은 그런 와중에도 자본의 블록버스터 게임은 멈춤 없이 전진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전혀 섞일 듯 보이지 않는 재능까지도 블랙홀처럼 빨아들이는 이 게임의 속도전에 마냥 굴복할 것인가는 이미 선택 옵션이 아닌 듯 보인다. 블록버스터는 이미 영화를 넘어 황혼을 맞이하는 세계 제국의 사투르날리아(Saturnalia, 고대 로마의 축제)다. 올 여름도 콜로세움에는 검투사들이 가득 모여 들어 있다. 업앤다운을 선택하거나 숨 죽여 기도하며 메시아를 기다리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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