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조사위원회의 5차 청문회가 열렸다. 어느 때보다 증인이 적었지만 이번 사태의 핵심에 있다는 강력한 의심을 받고 있는 우병우 전 민정수석과, 세월호 참사 당일 대통령 7시간의 비밀을 풀 마지막 열쇠로 주목받고 있는 조여옥 대위가 참석해 무게감은 오히려 더했다. 단지 무게감만 그랬을 뿐이다.

두 증인은 지금까지 청문회에 나온 다른 증인들과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모른다. 아니다 등의 부인으로 일관하면서도 틈틈이 사실만을 말하고 있다는 답변까지 보태는 것도 같았다. 그런 결과를 미리 예고하도 하듯이 이날 청문회는 시작해서 한 시간 가량을 위증교사 문제로 시끌벅적했다. 결국 해당 새누리당 위원들은 오전에 질문이 아니라 해명에 자기시간을 다 써버렸고 오후부터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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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당히 긴 시간 KBS에서 생중계되기도 했고, 그밖에도 여러 방송사와 인터넷을 통해서 수많은 국민들이 지켜본다는 것을 조금이라도 의식했다면, 선거 때마다 반복해오던 국민이 주인이라는 말을 한번만이라도 기억해냈다면 보이지 않았을 촌극이었다. 그렇다고 안 볼 수도 없어 그 상황을 지켜봐야 하는 국민들은 이중고를 겪어야만 했다.

그렇지만 지난 청문회에서 사이다 발언으로 모르쇠의 무한반복에 지친 국민들을 속 시원하게 해준 두 명의 증인이 있었던 것처럼 이번에도 답답한 마음을 풀어주는 증인이 등장했다. 본래는 참고인이었다가 자연스럽게 증인석으로 자리를 이동하게 된 K스포츠재단 노승일 부장이었다.

그가 바로 지난 청문회에서 최순실의 녹취를 박영선 의원에게 전달한 장본인이었다. 그가 많은 증언과 폭로를 했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강력했고, 그래서 그 한 마디면 충분했던 발언이 있었다. 바로 “처벌받겠습니다”였다.

국정조사위원회 5차 청문회

물론 이번 청문회에 나와서 진실을 감춘 모든 사람들이 단지 처벌이 두려워서 그런 것만은 아닐 것이다. 모든 인간이 갖게 되는 방어기제의 발동도 작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시국의 엄중함을 생각한다면 어떤 것도 변명이 될 수 없다는 것도 그들이 깊은 곳에 숨겨둔 이성으로 이미 알고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어쨌든 누가 묻지도 않았는데 최순실의 노트북에서 동의 없이 문건을 카피했다고 스스로 말하고, 그에 대해 뒤늦게 문제 삼으려 하자 당당하고 다소는 비장하게 “처벌받겠습니다”라고 하는 대목에서는 전율을 느껴야만 했다. 그간 청문회에 나와서 모르쇠의 합창단원이 되었던 사람들을 단번에 부끄럽게 만들었고, 그런 부끄러운 장면들에 지친 국민들의 상한 속을 달래주었다.

이날 손석희 앵커브리핑은 하멜의 <조선왕국기>를 인용하는 것으로 문을 열었다. “조선인은 남을 속이는 경향이 매우 강하다. 남을 속이면 부끄럽게 생각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잘한 일로 여긴다” 앵커도 그렇게 말했지만 기분 나쁜 말이다. 그런가 하면 한국이 사기범죄율 1위국가라는 불쾌한 통계도 있다. 그렇게 멀리 가지 않더라도 이번 청문회만 보더라도 정말 한국인은 거짓말을 잘하는 것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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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하멜은 틀렸다. 또한 통계도 틀렸다. 앵커는 그 증거로 가을에서 겨울까지 이어지고 있는 광장 민주주의의 행진, 계절을 잃어버리면서 찾고자 광장으로 모여들고 있는 수백만의 염원과 갈망을 언급했다. 그것은 누군가에게 거짓말을 잘하는 한국인이라는 오명을 쓰게 한 자들에게 속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더 이상 거짓이 피해자만 억울한 것으로 넘기지 않을 것이며, 그것이 나의 문제가 아니더라도 그냥 참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명인 때문이다.

그것을 광장에서 그리고 청문회장에서 우리는 확인할 수 있었다. 당당히 처벌받겠다면서 진실을 밝히겠다는 한 시민의 당당함에서 또 알 수 있었다. 저급한 나라의 고급스러운 시민들, 이날도 난데없이 튀어나온 북한조종괴담 따위 비웃을 수 있는 상식의 무장. 2016년의 대한민국을 보지 못한 하멜은 틀릴 수밖에 없었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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