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생각해도 JTBC의 예능 <말하는대로>의 성공은 말이 되지 않는다. 노래를 하는 것도 아니고, 말로 버스킹을 한다는 예능이라니. 아무리 새로운 예능 포맷이 절실한 상황이라도 이건 너무 억지스러운 실험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은 편견이었다. <말하는대로>는 의외의 폭발적 관심을 일으켰다.

물론 운도 따른 것은 분명하다. <말하는대로>가 만들어지고 얼마 후 대한민국은 촛불의 세상이 되었고, 다른 어느 때보다 정의에 대한 욕구와 용기가 커졌다. 여기저기서 의로운 발언이 터져 나왔다. 누군가 연설을 하고, 그에 환호하는 풍경은 자연스러워졌고 심지어 없으면 서운한 상황까지 됐다.

JTBC 예능프로그램 <말하는대로>

<말하는대로>는 주말에만, 광장에서 보던 그 풍경을 안방으로 옮겼다. 그리고 점차 출연자들의 말도 무게를 더해갔다. 많은 이들의 발언 아니 그들의 삶이, 그동안 주목하지 않던 낯설지만 꼭 필요했던 모습들이 우리들의 눈과 귀를 채웠다. 그러면서 참 많은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이 세상을 위해서 아주 많은 노력을 해오고 있었다는 사실에 감동을 받고 또 안도하게 되기도 했다.

그 가운데 꼭 기억해야 될 사람이 있었다. 지금까지 많은 출연자들이 있었지만 그 중 한 사람을 꼽는다면 단연 박준영 변호사일 수밖에는 없을 것 같다. 그는 ‘세상은 저절로 좋아지지 않는다’의 의미를 실천해왔다. 현재의 사법체계 속에서는 불가능에 가까울 정도로 어려운 재심을 전문으로 해왔다. 그리고 억울한 약자들을 무도한 권력의 사슬에서 꺼내주었다.

JTBC 예능프로그램 <말하는대로>

그가 <말하는대로>에 처음 출연해서 한 말이 있었다. 미국의 한 변호사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1930년도의 한 사건. 가해자는 흑인이었고, 피해자는 백인여성이었다. 재판이 시작되기도 전에 사람들은 이 사건의 판결을 이미 내리고 있었다. 그때 변호사의 딸은 승소에 대한 불안을 드러냈고, 변호사는 “수백 년 동안 우리가 졌다고 하더라도 시작도 하기도 전에 이기려는 노력을 포기하는 것은 있을 수 없다”고 했다.

그의 말을 영화 <암살>의 대사로 바꾼다면 “그래도 뭐라도 해야 하니까”로 바꿀 수 있을 것이다. 세상은 저절로 좋아지지 않는 것이고, 반드시 누군가의 노력과 희생이 수반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2016년에 뭐라도 해야 했고, 그것은 촛불을 켜는 일이었는데 세상이 바뀌고 있음을 목격하고 있다. 200만이 넘는 촛불. 그것이 이루어졌으니 사실이 된 것이지만, 누구도 예측할 수 없었고 기대는 더욱 할 수 없는 결과였다.

누군가는 이제 그만 됐다고, 지겹다고 할 때도 묵묵히 세월호 가족들 곁을 지켰던 거지갑 박주민 변호사. 그리고 역사상 고작 몇 건밖에 되지 않는 재심을 이끌어내 판결을 뒤집은 박준영 변호사. 그리고 아직도 우리가 모르는 더 많은 의인들이 세상을 좋아지게 하기 위해서 땀을 흘리고 있을 것이다. 이런 의인들의 말없는 노고와 희생이 이 거대한 촛불현상의 밑거름이 되었다면 비약일까?

JTBC 예능프로그램 <말하는대로>

<말하는대로>가 연말을 맞아 특집을 꾸몄다. 다시 보고 싶은 버스커들을 모은 것이었고, 박준영 변호사도 그 안에 있었다. 이번에 박 변호사가 말한 것은 ‘반성하지 않고, 사과하지 않는 공권력’이었다. 그가 일궈낸 기적적인 재심사건들의 결과는 다시 말해서 그 사건을 유죄로 몰아간 경찰, 검찰, 법원 그리고 변호사까지 모두 공동의 책임을 져야 하고 당연히 피해자에게 사죄를 해야만 하는 일이었다.

그러나 그들 중 누구도 사과하지 않았다. 오히려 사건의 진범들만이 진심으로 피해자들에게 사죄를 했을 뿐이다. 공권력도 잘못할 수 있다. 다만 그것을 공권력 스스로가 인정하지 않을 뿐이다. 그러다보니 억울하게 옥살이하는 피해자들이 생기고 심지어 범인으로 조작되는 일도 벌어지는 것이다. 유신시대를 넘어 현재까지도 말이다. 탄핵이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인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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