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세상이 축복으로 가득해야 할 크리스마스, 드디어 서정(서현진 분)은 그토록 오랫동안 주저해왔던 동주(유연석 분)의 사랑을 받아들였다. 처음 거대병원에서 선후배 사이로 만났던 그때 동주로 인해 흔들린 마음을 주체하지 못했고, 그로 인해 선배를 사고로 잃게 된 서정은 오래도록 그 죄책감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하지만 응급실이 봉쇄되고 동주가 과로로 쓰러지게 되자, 서정은 더 이상 자신의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사선을 넘으며 간호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던 서정에게서 자신에 대한 감정을 확신한 동주는 서슴지 않고 서정을 안는다.

<낭만닥터 김사부> 14회는 오래도록 줄다리기를 해왔던 서정과 동주 두 남녀가 도달한 사랑을 크리스마스의 축복처럼 아름답게 그려낸다. 이는 동시에 지난하게 죄책감에 사로잡혔던 서정이 그 죄책감으로부터 해방된 순간이기도 하다. 하지만, 정말 아름다운 것은 두 젊은 남녀의 사랑만이 아니다. 오히려 토핑처럼 얹혀진 사랑 아래, <낭만닥터 김사부>가 13, 4회를 통해 그려내고 있는 진짜 이야기는 아이러니하게 AI가 전국을 강타한 대한민국의 현실에서 오버랩되는 응급 의료시스템에 대한 주장이다.

메르스 의심 환자, 응급실을 덮치다

응급실을 담당했던 서정이 '오더리'의 치욕을 넘어 드디어 이사장 인공심장 배터리 교체 수술진으로 입성하고, 거대병원에서 온 선배조차 장모님과 아내를 만나기 위해 자리를 비운 사이 응급실은 온전히 며칠간 과도한 업무에 시달린 강동주의 어깨 위에 얹혔다. 애인의 자살 시도라 호들갑을 떨며 응급실로 들어온 가짜 환자로 인한 해프닝으로 한숨을 돌릴 사이도 없이 들이닥친 한 가족, 고열에 기침까지 하는 청소년 자녀와 함께 온 부모 역시 기침을 하며 심상치 않은 증세를 보인다.

SBS 월화드라마 <낭만닥터 김사부>

이 환자를 진찰하던 강동주와 오명심 수간호사는 의미심장한 눈빛을 교환하는데, 얼마 전 사우디로 출장을 다녀왔다는 아버지로 인한 '메르스'가 의심되는 상황인 것이다.

김사부와 통화하기가 무섭게 강동주와 오명심을 비롯한 응급실 인원들은 신속하게 움직인다. 우선 메르스가 의심되는 환자와 가족들을 최대한 격리가 가능한 곳으로 이동시키고, 혹시나 그들로 인한 바이러스 감염을 막기 위해 응급실을 폐쇄시킨다. 응급실 환자들에게 마스크가 공급되고, 의료진 역시 방진 마스크를 구비한다.

2015년 메르스 사태의 원인은 이후 문형표 장관의 사과문에서도 드러나듯이 '전파력 판단의 미흡'이 가장 컸다. 처음 발병한 병원에서, 이후 발병자를 옮기는 과정에서도, 병원 측은 안이한 대응으로 메르스에 대한 초동 대처에 실패했고, 그 결과는 가공할 만한 전염성 질환으로 우리 사회를 공포에 몰아넣었다. 하지만 이와 같은 사태의 재연을 방지하겠다는 관계자의 말에도 불구하고, 최근 AI로 인한 상상초월의 가금류 살육 사태는 우리 사회에 여전히 이런 질병 방제 시스템이 얼마나 부실하게 작동되고 있는가를 증명하고 있을 뿐이다.

SBS 월화드라마 <낭만닥터 김사부>

그런 현실에서 '혹시나 메르스일까?'라는 의심만으로 신속하게 환자들을 격리하고, 응급실을 폐쇄한 <낭만닥터 김사부> 속 대처는 그저 결국 게장을 잘못 먹어 파라고니미아시스로 인한 해프닝으로 종료됐다. 하지만 이 해프닝은 만약의 사태에 신속정확하게 대처할 수 있는 돌담 병원의 빛나는 시스템에 대한 경의이자 선언이다.

메르스일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들자, 돌담병원 의료진은 신속하게 움직인다. 환자를 격리시키고 응급실을 폐쇄하고, 이에 반발하는 환자 보호자를 무력으로 제압하면서까지. 이런 돌담병원의 대응 양식은 비상시에 전혀 대비되어 있지 않은 보건소의 모습이나, 탁상공론식의 대응으로 목소리를 높이는 이른바 '관계자'의 무능한 방식과 대비를 보인다. 아마도 지금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무능한 질병 방제 시스템은 저렇게 책상에서 서류로 만들어진 양식에 따라, 허황된 매뉴얼에 따라 전혀 현실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처리된 방식들일 것이다. 그러기에 메르스 의심 환자가 자신의 발로 시내를 돌아다니고, 보호 장구 없이 환자를 이송하는 그런 사태를 만들었을 테니까.

시스템과 소명 의식

SBS 월화드라마 <낭만닥터 김사부>

드라마에서 돋보이는 것은 책임자의 소명 의식이다. 강동주는 과로에도 불구하고 당연히 응급실 폐쇄에 대한 책임을 지려 한다. 그리고 강동주가 쓰러졌을 때, 컨트롤타워인 김사부는 어쩌면 생명에 위협이 있을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솔선수범하여 응급실로 들어가려 한다. 이제는 우리 가슴에 맺힌 그 단어, '컨트롤타워' 말이다. 송현철이 젊은 의사를 죽음으로 몰아넣을지도 모른다고 비아냥거리기만 하고 제 살 궁리를 하는 그 순간, 김사부는 담담하게 자신을 내놓는다. 물론 김사부 대신 응급실에 들어간 이는 윤서정이다. 이후 김사부와 오명심의 대화에서 동주에 대한 연심으로 말릴 수 없었다고 했지만, 과연 윤서정이 응급의학과 전문의가 아니었다면 김사부가 허용했을까?

의학 드라마 <낭만닥터 김사부>는 그저 감동과 헌신의 순애보가 아니다. 강원도 외곽의 쓰러져가는 듯 보였던 돌담병원. 하지만 그곳은 주변에 카지노가 있고, 도로가 서로 병목해 있는 '응급 환자'들의 양산지이다. 그리고 그저 김사부와 몇몇 의료진의 '성의'가 전부인 듯 보였던 병원은 회를 거듭할수록, 알고 보면 그 어떤 대학병원 저리가라 할 '시스템'을 갖춘 병원임이 드러난다. 아직은 구체적으로 드러나고 있진 않지만, 김사부가 그리고 있는 원대한 꿈이라는 것도 바로 이런 돌담병원의 지형적 위치와 시스템과 관련이 있지 않을까?

그렇게 드라마는 '낭만'을 내세우며, 사실은 우리 사회에서 가장 필요로 하는 기본적 제도와 그를 움직이는 인간들에 대한 끊임없는 질문은 던진다. AI로 가금류를 2000만 마리를 넘게 살육하지만 여전히 그 확산을 막지 못하고 있는 대한민국 상황, 그에 반해 일본은 단 60만 마리의 살처분. 아니 방역보다 사전 확산을 막기 위한 시스템 가동에 힘쓴다는 소식이 주는 교훈을 복기하고 있는 것이다. 아직도 그날, 컨트롤타워인 푸른 집의 그 사람이 무엇을 했는지를 놓고 갑론을박해야 하는 현실에 대한 기본적 물음과 답을 드라마가 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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