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22일 미디어법이 국회 본회의에서 날치기 통과됐다. 현재 그 법 개정안은 야4당에서 ‘재투표’와 ‘대리투표’ 논란을 통해 원천무효를 주장하며 헌법재판소에 권한쟁의심판과 효력정지가처분을 신청해놓은 상황이다.

미디어법 개정안에 대해 한나라당과 공동행보를 보였던 자유선진당과 친박연대도 당일 본회의장에서 벌어진 ‘재투표’와 ‘대리투표’ 등 절차상 문제가 있다는 의원들의 커밍아웃으로 내분에 휩싸였다.

자유선진당의 김창수 원내수석부대표는 ‘미디어법 무효’를 주장하며 수석부대표직을 내던졌다. 또한 이상민 정책위의장 역시 미디어법 절차상 문제를 지적하고 나섰다. 뿐만 아니라 친박연대 이규택 대표도 본회의 장에서의 대리투표는 ‘사기’라고 주장했다. 물론 이들이 미디어법을 원천적으로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단지 이야기하는 것이다. ‘대리투표’와 ‘재투표’ 등에는 문제가 있다고.

이런 상황속에서도 꿋꿋하게 미디어법 본회의 날치기에는 전혀 문제가 없다는 듯 제(?) 역할을 제대로 하는 곳이 있었으니 한나라당 박계동 의원이 총장으로 있는 ‘국회사무처’다. 이번 미디어법 본회의 날치기에 큰 역할을 기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의 활약상을 보여주었다.

국회사무처는 한나라당 홍반장?

▲ 22일 국회 본회의에 상정된 방송법 일부개정법률안이 재적 294인에 재석 145인으로 과반수인 147명을 넘기지 못한 것으로 전광판에 표시됐음에도 이윤성 부의장이 재표결에 부치자 민주당 강기정 조정식 의원이 의장석쪽으로 달려들어 거세게 항의하고 있다. 오른쪽에서 이윤성 부의장에게 법안 처리 관련 내용을 설명하는 이가 이종후 의사국장. ⓒ 오마이뉴스 남소연
22일 본회의에서 의사봉을 잡은 이윤성 국회부의장은 분명 “투표를 시작하겠습니다”라고 말했고, 이내 “투표를 다 하셨습니까?라며 ”투표를 종료합니다”라고 선언했다. 그렇게 투표는 종료됐다. 그러나 한나라당 입장에선 안타깝게도 전광판에는 재적 294인, 재석 145인, 찬성 142인, 기권 3인으로 나타났다. 의결정족수가 148명인데 딱 3명이 모자란 것.

이때 국회사무처의 국회의사국장이 등장. 이윤성 국회부의장에게 귓속말을 건넨다. 그리고 이윤성 부의장은 이렇게 말한다. “투표를 다시 해주시기 바랍니다”라고. 바로 방송법 개정안에 대한 재투표가 진행됐다. 참 절묘한 타이밍이다. 과연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 꼴일까?

그렇게 국회는 방송법에 대한 ‘재투표’ 논란에 휩싸였다. 그러자 또 바로 등장한 것이 국회사무처. 급 국회사무처는 기자 브리핑을 통해 “알 수 없는 원인으로 투표가 종료됐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어쩌나. 이미 여러 뉴스를 통해 드러났듯 이윤성 부의장의 종료선언에 따라 투표가 종료된 것이다. (참조: MBC 뉴스데스크 '재투표 당시 상황은?')

그러자 다시 들고 나온 것이 “국회는 오늘 회의와 같이 표결 선언 이후 재적의원 과반수 의원이 투표하지 못한 경우, 투표를 재실시하는 것이 관례”라는 거였다. 국회 사무처는 보도자료를 뿌려 ‘투표 불성립 후 투표 재실시 사례’를 공개했다.

‘재투표’는 관례라는 국회사무처

이들이 내세운 것은 총 4가지 사안으로 ‘약사법중개정법률안’, ‘전원위원회운영에관한규칙안’, ‘북한인권개선촉구결의안’, ‘한미자유무역협정(FTA) 체결 대책 특별위원회 활동기한 연장의 건’ 등이다.

그러나 국회사무처가 제시한 이 사안들은 이번 본회의 날치기 통과된 미디어법과는 전혀 다른 사안들이다. 국회사무처 그네들이 배포한 보도자료만 보더라도 금방 들통 날 거짓말이다.

▲ 국회사무처에서 배포한 보도자료 중 '투표 불성립 후 투표 재실시 사례'로 투표 불성립일과 투표가 재실시 된 날짜가 다르다.
먼저 ‘약사법중개정법률안’, ‘전원위원회운영에관한규칙안’은 각각 회기를 달리하고 있다. 재투표를 진행하긴 했지만 그 회기를 달리한다는 것이다. 또한 ‘북한인권개선촉구결의안’, ‘한․미자유무역협정(FTA) 체결 대책 특별위원회 활동기한 연장의 건’은 회기는 같지만 차수를 달리한다. 미디어법처럼 당일 재투표를 한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또 각 법 개정안에 대한 의사봉을 잡았던 국회의장은 “투표를 종료합니다”가 아니라 “의결정족수에 미달되어 이 표결은 불성립 표결이기 때문에 다음에 처리할 수밖에 없다”며 “이 투표는 성립되지 않았음을 선포합니다”라며 산회를 선언했고, 다음 회기, 다음 차에서 처리했던 것들이다.

이 국회부의장이 “‘투표를 종료합니다’라는 말만 안했어도….”라고 아쉬울 법도 하다. 그러나 어쩌겠나. 국회 의사국장이 투표를 ‘종용’하라고 한 말을 이 국회부의장이 ‘종료’라고 잘못들은 것을.

부정투표 의혹 담긴 CCTV-한나라당만 보여주기?

국회는 방송법 재투표 논란과 함께 ‘대리투표’ 논란에 휩싸였다. 야4당은 한나라당 의원들이 대리투표를 하고 돌아다녔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내용도 구체적이다. 민주당 강봉균 의원은 신문법 개정안 투표에 참석하지 않았으나 전광판에는 ‘찬성’한 것으로 파란 불이 들어왔다가 다시 노란색 불로 바뀐다. 결국 ‘기권’처리됐다. 이에 강 의원은 대리투표하는 것을 봤다며 “당신 그렇게 대리 투표를 하면 어떻게 하냐고 했더니 그 사람이 지웠다”고 설명했다. 뿐만 아니라 신문법 개정안 표결당시 나경원 의원은 본회의장에 없었으나 배석한 것으로 나타났고, 김형오 국회의장이 IPTV법 개정안에 찬성표를 던졌다.

사회를 보던 이윤성 국회부의장 역시 “나도 찬성 눌러라”라고 이야기한 것이 고스란히 방송카메라에 잡혔다. 한나라당도 장세환 민주당 의원이 한나라당 의원 자리에서 반대표를 눌렀다고 주장했고, 장 의원도 이를 인정했다.

결국 이번 미디어법 효력은 대리투표 의혹이 진실로 밝혀지느냐 아니냐로 판가름 날 가능성이 높아졌다.

그러나 여기서도 국회 사무처가 등장해주신다. 야당에서는 대리투표 의혹을 밝히겠다며 당시의 CCTV 촬영본을 제출해달라고 국회사무처에 요청했지만 박계동 사무총장이 ‘사생활보호’를 들어 이를 거절한 것. 민주당이 “켕기는 것이 있어서 그런지 모르겠다”고 꼬집은 것은 이런 맥락이다.

이와 관련해 박경신 교수는 27일 토론회에서 “불특정 다수에게 공개될 수 있는 장소에 나와있는 국회의원들이 프라이버시를 주장하는 것과 그 의견을 받아들여서 공개하지 않는 것은 법리적으로 옳지 않다”며 “본회의 장에 있었냐 없었냐는 것은 공적 영역으로 프라이버시 영역이 아니다”고 주장했다. 또 “설사 CCTV 촬영 내역이 프라이버시라고 할지라도 공익적 차원에서 볼 때 공개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어제 27일 민주당 의원들과의 면담자리에서 국회사무처는 “행정안전부에 유권해석을 의뢰해 봤는데도 안 된다고 했다”고 말해 또 다른 파장이 불 예정이다. 고양이에게 생선가게를 맡긴 격이기 때문이다. CCTV를 공개할 수 없다는 국회사무처 그 배후에 정부가 있다?

국회사무처는 여전히 CCTV 내용을 공개할 수 없다는 입장이고, 민주당은 “한나라당에는 제출됐다”며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 민주당 전병헌 방송법무효투쟁 채증단장, 우제창 김유정 의원이 27일 오전 국회 의사국장실에서 방송법 통과 당시 CCTV화면 등 증거자료 제출요구를 거부한 이종후 의사국장에게 거부하는 이유를 따져 물으며 항의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국회사무처, 여기에 더해 회의록까지 변작?

민주당 김종률 의원은 “국회사무처가 방송법 1차 표결 진행상황을 의도적으로 누락시켰다”고 주장했다. 이에 김 의원은 의도적인 증거변작 및 증거인멸이라며 “형사상 직무유기 및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죄 등 형사고발하겠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국회 사무처는 왜 회의록에 방송법 1차 표결 진행상황을 누락시켰을까? 법적 판결에 있어서 “회의록상 이를 인정할 아무런 증거가 없다”는 등의 판결을 기대한 것은 아닐는지.

김 의원은 이러한 국회사무처를 두고 “재판의 증거자료에 대한 조작 및 인멸 우려가 현실적으로 존재함을 보여주고 있다”고 꼬집었다.

미디어법에 처리에 빨간불이 들어올 때마다 나타나 해결사를 자처한 국회사무처. 본회의장 안에서도, 끝나고 논란이 되고 있을 때에도 그곳에는 항상 국회사무처가 있었다. 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기면 틀림없이 나타난다는 홍반장처럼.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