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에 이렇게 연기 잘하는 사람들이 많았나?

정말 놀랐다. 대한민국에 이렇게 연기 잘하는 사람들이 많았을 줄이야. 이런 인재들이 사방에 득실거리는데 충무로에선 왜 이들을 캐스팅하지 않는지 모르겠다. 감독들 눈이 죄다 청맹과니인가?

보라. 온 국민이 서슬 퍼렇게 눈을 부릅뜨고 지켜보는데도 전혀 흔들림 없이 거짓을 농하는 저들의 대범함을. 모두가 아는 사실을 저 혼자 모른다는 듯이 사뭇 당당하게, 때로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때로는 얼굴을 붉히며 되묻기도 하고, 때로는 눈을 내리깔며 한결같이 내뱉는 말, "모릅니다... 기억이 안 납니다... 전혀 알지 못 합니다... 그런 적이 없습니다." 운운.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이 7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최순실 국정농단 의혹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 특위 2차 청문회에서 답변하고 있다. Ⓒ연합뉴스

물론 아는 사실을 너무 과하게 부인하려다 "기억을 몰랐던 것 같습니다"고 말해서 NG를 낸 증인도 아주 없지는 않았지만, 할리우드 연기귀신들도 NG를 자주 내는 걸 생각하면 그 정도야 익스큐스 아닌가.

최순실 사단을 지배하는 어둠의 컨트롤타워가 있는 것 같다!

내 느낌이다. 그러나 내심 확신하고 있는 사항이기도 하다. 나는 증인들의 말을 들으며 그 속에서 어떻게든 진실을 털어놓지 않으려는 완고한 몸짓을 보았다. “진실을 말하고 싶지 않다. 이제까지 안 했지만 앞으로도 더 격렬하게 안 하고 싶다"는 격한 발버둥 말이다.

궁금하지 않는가? 이들이 왜 이렇듯 격렬하게 저항하는지, 그리고 전 국민 공지의 사실을 왜 이렇듯 부인하고 덮으려 하는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랴"는 말도 있지만, 이들이 하고 있는 짓들이 바로 그러하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 있다는 이런 황당한 자신감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아무리 생각해도 답은 하나밖에 없다. 사전에 짜여진 각본에 따라 그런 식으로 말하도록 교육받았다는 것!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도록 역할을 부여받았다는 것! 공범의식으로 하나 된 사람들에게 이런 일사불란한 대응쯤이야 여반장일 터다. 한쪽이 뜯겨나가면 나머지도 줄줄이 뜯겨나갈 수밖에 없다는 걸 뻔히 아는 판에 말이다.

고영태 전 더 블루케이 이사가 7일 국회에서 열린 최순실 국정농단 의혹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 특위 2차 청문회에서 질의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박헌영과 이만희 새누리 의원이 연기한 '짜고치는 고스톱'은 이러한 심증에 확신을 더해주는 결정적인 장면이 됐다. 이들이 주고받을 대사를 고영태는 이틀 전에 이미 예언했다. 그러면 고영태는 이런 사실을 어떻게 알았을까? 이에 대해 고영태를 포함한 모두에게 모범답안이 미리 배포됐고, 고영태가 그 가운데 한 대목을 발설했다고 보는 게 합리적이고 자연스럽다.

한 가지 더. 내가 최순실 뒤에 있는 어둠의 컨트롤타워를 말하는 건 단순히 청문회장의 웃기는 풍경 때문만은 아니다. 박근혜의 '피눈물' 발언 이후 본격적으로 세를 불리기 시작한 박사모 등 수구세력들의 발호, 그리고 헌법재판소 판결을 어떻게든 지연시키려는 친박일당의 치밀한 전략 등이 이와 전혀 무관치 않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한결같이 입을 다물고 모르쇠로 일관하는 청문회 증인들. 촛불을 꺼트리자며 대형교회까지 끌어들여 무장무장 세를 부풀리는 자칭 애국보수들, 헌재 판결을 최대한 늦출 수 있다고 공언하는 사람까지 국회 탄핵소추 대리인으로 끌어들여 시간을 끌려는 청와대와 새누리당, 이들 트로이카의 환상적인 콜라보를 보면서 '보이지 않는 손'을 의식하지 못 하는 게 오히려 이상한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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