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치기 처리된 한나라당의 미디어법 가운데 신문법 표결 과정에서, 한나라당 의원들이 최소 17건 이상 대리 투표를 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대리투표채증단장 전병헌 민주당 의원에 따르면, 전자투표 과정에서 재석 버튼을 누른 뒤 찬성 버튼을 누르는 과정을 두번 이상 반복한 사례가 17건에 달한다는 것이다. 재석 버튼을 누른 뒤 ‘취소’와 ‘반대’ ‘찬성’을 섞어 누른 경우까지 합하면 34건이다.

22일 날치기된 미디어법은 3개월뒤 발효된다. 이 사이에 재투표 적법성 논란, 대리투표 의혹이 얼마나 해소되는 지에 따라 미디어법 추진의 정당성이 확보될 것이다. 이를 위해 국회 본청의 CCTV 영상자료를 확보해 ‘의혹’을 확실히 하는 게 한나라당과 조중동으로서도 중요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비록 날치기라 하더라도 미디어법이 일단 통과됐으니, 절차적 하자 정도 따위는 무시해도 된다는 것일까? 조중동은 대리투표 의혹 등에 대해 침묵에 가까운 축소보도로 일관하고 있다.

27일자 조선일보는 대리투표 의혹과 관련해 4면 오른쪽 하단의 <‘땡볕’에 거리나선 민주> 기사에서 전국대장정에 돌입한 민주당에 대해 다루며 말미에 대리투표 의혹을 제기하는 전병헌 의원의 주장을 전했다. 하지만 조선일보는 곧바로 “전자투표 기록에선 한나라당 의석에서 ‘반대’와 ‘찬성’ 버튼이 교대로 눌러진 경우도 십수 건 발견돼 민주당의 투표 방해 의혹도 제기됐다”고 덧붙였다.

중앙일보도 12면 하단 <초강경 모드 정세균 성공할까 패착일까>에서 장외투쟁의 중심에 선 정세균 민주당 대표에 대해 전하며 말미에 전 의원의 주장을 짧게 보도했다.

동아일보 역시 5면 <여, 국면전환 민생행보…야, 대여투쟁 장외행보>에서 뚜렷이 엇갈리는 여야의 행보를 다루며 전 의원의 주장을 말미에 보도했다.

대리투표 의혹 대신 이들 신문에는 “국회에서 통과된 미디어법의 후속조치로 방송법 시행령을 조속히 개정, 연내에 종합편성채널과 보도전문 채널을 승인하겠다”는 최시중 방통위원장의 기자회견 내용이 대대적으로 실렸다. 경향신문과 한겨레가 최 위원장의 발언에 대해 “야당이 헌재에 효력정지 가처분을 청구하고 방통위 내부에서조차 ‘후속조치 중단’을 요구하고 있는데도 법 통과를 기정사실화하기 위한 밀어붙이기를 선언한 것”이라고 비판적으로 보도한 것과 대조적이다.

조선일보는 1면 <‘지상파 3, 종합편성 3, 보도채널 3’ 시대 열릴 듯>에서 최 위원장의 기자회견을 전하며 “자본력 있고, 경쟁력 있는 사업자 중심의 실질적 경쟁 체제를 유도하자는 취지로 보인다”는 박천일 숙명여대 교수의 발언을 전했다. 박 교수는 ‘정치심의·편파심의’ 비판을 받았던 방통심의위원 여당측 인사로 활동했던 인물이다.

한가지 주목할 것은 최 위원장의 기자회견 내용을 무비판적으로 열심히 받아쓴 이들 신문들 1면에 ‘뚝섬 여름’이라는 사진이 실렸다는 것이다. 조선일보는 1면 사진 ‘와글와글 신나는 뚝섬’에서 서울 한강시민공원 뚝섬지구 야외수영장에 시민들이 주말을 맞아 물놀이를 즐기는 장면을 보도했다. 조선일보는 뚝섬 야외수영장에 대해 “유수풀 등 다양한 물놀이 시설을 새로 갖추고 지난 25일 재개장했다. 입장료는 어른 5000원. 4~12세 어린이 3000원. 13~18세 청소년 4000원”이라고 설명했다.

중앙일보도 1면 사진 ‘뚝섬의 여름’에서 “26일 많은 시민이 새롭게 단장하고 재개장한 한강 뚝섬 야외수영장을 찾아 더위를 식히고 있다”며 시민들이 재밌게 놀고 있는 모습을 내보냈다.

이들 신문의 1면에 등장한 “헌재의 결정과 상관없이 방송법 시행령을 준비하겠다”는 최 위원장의 발언과 물놀이를 하고 있는 시민들의 사진이 절묘하게 맞아 떨어진다. 마침 한겨레 1면에서도 ‘물놀이 사진’이 등장했으나, 사진 속 시민들은 ‘언론악법 원천무효’라는 피켓을 들고 있다.

1면 사진의 중요성과 현 시국을 감안할 때, 조선일보·중앙일보의 1면 사진에서 “이제 모든 것을 잊고 물놀이나 가라”는, 음험한 속내가 읽히는 건 나 뿐만이 아닐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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