갱년기의 사전적 의미를 찾아보면 '노년기 남녀의 내분비나 신체적, 정신적 변화 증후군'이라 되어 있다(다음 백과). 혹은 좀 더 구체적으로는 여성에게 있어 생리를 기준으로 생리가 없어지기 전후 '폐경기' 1년간을 가리키기도 한다(의학 용어 백과).

갱년기쯤엔 여성의 몸에 어떤 문제가 생긴다. 찾아보면 십중팔구는 갱년기의 증상, 쉽게 말해 그 모든 게 다 '갱년기' 때문이다. 잠이 안 오는 것도, 땀이 많이 나는 것도, 문득문득 우울해지는 것도, 심지어 발바닥이 아프거나 온몸이 쑤시는 것까지 갱년기 때문이니, 이쯤 되면 만병은 '갱년기'로 통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예전에는 갱년기 증상이 '생리'를 중심으로 여성만의 문제인 듯했지만, 최근 들어 남성들에게도 '갱년기'가 존재한다는 사실이 밝혀지며 남녀 모두의 '증후군'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런데 갱년기의 '갱'은 한자로 更. 다시 혹은 재차, 고치다, 개선하다의 뜻을 가진다. 삶을 다시 살고 고치거나 개선해서 살 수 있다는 뜻인데, 현실에서 갱년기를 맞이한 중년들은 마치 삶의 ‘종착역’에 도달한 듯 우울하다. 왜? 11일 밤 <SBS 스페셜>이 그 이유와 해법에 주목한다.

47세 박수홍, 눈물이 많아진 그를 보고 주변에선 '갱년기'란다. '아직 결혼도 안 했는데!', 발끈해보지만 그의 내레이션으로 시작된 <SBS 스페셜- 중년의 사생활, 갱년기>에 등장한 그와 동년배의 남자들은 박수홍 판박이다.

갱년기 증후군에서 헤어 나올 수 없는 중년

'SBS 스페셜- 중년의 사생활, 갱년기'

박수홍의 내레이션으로 시작된 다큐는 그와 동갑내기인 정은영-송무석 씨 가정으로 시선을 옮긴다. 은영 씨가 하이 소프라노로 중학생 아들을 깨우는 이 집의 아침, 은영 씨의 목소리는 전쟁의 서막이다. 그렇게 힘들게 아들을 깨워놓은 은영 씨, 그 순간부터 '사춘기' 아들과 '갱년기' 엄마의 갈등이 시작된다. 중학생이 되면서부터 '욱'하며 반항하는 아들, 그런 아들을 보며 예전과 달리 '울화통'을 터트리는 엄마. 그 둘 사이에서 아빠와 작은아들은 눈치 보느라 바쁘다. 남편과 두 아들 뒤치다꺼리에 살림살이, 거기다 부업으로 신발 꿰매는 일까지 하는 은영 씨의 하루는 24시간이 부족하다.

그런데 그것도 부족해서 요즘 은영 씨는 시도 때도 없이 열이 오르고 땀을 뻘뻘 흘리는 갱년기에 시달린다. 몸으로 드러나는 증상만이라면 그나마 선풍기를 틀고 부채질을 하며 참을 수 있다. 아들과 싸우다, 잔소리하다 자신도도 모르게 불쑥 '이렇게 살려고 살아온 게 아닌데' 하며 솟구쳐 오르는 서러움에 자기도 모르게 자꾸 눈물 바람을 한다. 그런데 눈물이 많아진 건 은영 씨만이 아니다. 가장인 무석 씨도 마찬가지다. 요즘 제일 재밌는 TV프로그램이 연속극이고, 그걸 보다 자기도 모르게 눈물을 흘리는가 하면, 설거지를 하다말고 뜬금없이 '엄마가 보고싶'단다.

이 눈물이 흔해진 부부의 병명은 바로 그 이름도 무시무시한 '갱년기'. 다큐는 갱년기를 맞이한 정은영-송무석, 윤정섭 부부와 그 친구들의 사연을 통해 갱년기의 증상에 접근한다. 윤정섭 씨 친구들의 모임, 흔히 중년 남자들의 모임에서 그러하듯 건강한 성생활에 대한 관심으로 시작된 우스개로 편하게 시작된 이야기는 전과 같지 않은 몸과 마음의 상태 그리고 갱년기에 대한 공감으로 이어진다. 특히나 다큐는 갱년기의 남자들에 주목한다. '울면 안 돼'를 주입 받은 수컷의 사회 속에서 '갱년기'를 맞이한 남자들은 더 이상 남성답지 않고, 심지어 여성스러워져 가는 자신들의 변화에 당혹스럽다.

'SBS 스페셜- 중년의 사생활, 갱년기'

그리고 이어진 중년에 들어선 남녀들의 호르몬 검사, 그들의 호르몬은 그들의 변화를 고스란히 설명해 준다. 사춘기 아들이 보이는 '질풍노도'의 모습이 그의 몸에서 열 배 이상 분비되는 '남성 호르몬'으로 설명되듯이, 붉으락푸르락 화를 잘 내는 은영 씨의 증상은 여성 호르몬 에스트로겐을 비롯하여 행복을 느끼도록 해주는 세로토닌 등의 급격한 감소로 설명된다. 남성들도 마찬가지다. 급격하게 줄어든 남성 호르몬의 감소가 바로 그들 자신도 당혹스러워 하는 변화의 원인인 것이다. 고등학생이 된 아들들의 이해를 받는 윤정섭 씨의 아내가 상대적으로 갱년기 증상이 덜한 것과 달리, 사사건건 사춘기의 아들과 충돌이 잦은 정은영 씨의 호르몬 수치는 더욱 심각한 것으로 드러난다.

호르몬 수치로 드러난 갱년기의 상태. 이렇게 다큐는 중년들에게서 나타나는 당혹스러운 변화를 '호르몬'이라는 불가항력의 신체적 변화를 통해 설명한다. 즉 나만 이상한 것이 아니라 여성 중 14%만이 무사히 넘기는, 그리도 뜻밖에도 남성들 중 63.8% 경험하고 있는 증상의 원인을 짚는다.(이화여대 간호학부)

호르몬 만능주의를 넘어

'SBS 스페셜- 중년의 사생활, 갱년기'

하지만 '모든 게 다 호르몬 때문이었어'라는 식으로 마무리되지 않는다. 오히려 이 갱년기 증상의 정도 차이가 '내재되어 있는 우울이 겉으로 드러나는 것'(크리스티안 노스럽 박사)이란 관점에서 접근한다. 은영 씨와 무석 씨 부부는 서로의 하루 생활을 지켜보며 그간 자신만 힘들게 살아왔다고 생각한 것과 달리, 서로가 일상에 얼마나 지쳐가고 있는가를 깨닫게 된다. 24시간이 부족해 동동거리는 아내의 모습에 남편은 눈물을 흘릴 뻔했다고 토로할 정도이다. 또한 중년의 남자들은 사회와 가정의 '가장'이란 짐을 내려놓고 편하게 자신의 감정을 마주한다. 마치 일본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한바탕 울어보기 모임처럼.

그렇게 호르몬으로 설명되었던 갱년기는 호르몬이 아닌 각자가 처한 사회적 위치에 따라 주어진 해법에 의해 점차 '호르몬' 수치조차 갱신되어 가는 '기적'을 보인다. 인간의 노화를 결정하는 건 '호르몬'이지만 그조차도 삶의 방식과 관계에 따라 달라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SBS 스페셜- 중년의 사생활, 갱년기'

다큐가 더욱 긍정적인 지점은 바로 갱년기의 '갱', 즉 새로 고쳐 사는 삶의 긍정성에 주목한 점이다. 실험에 통해 더 이상 청춘이 아닌 갱년기의 우울한 면 뒤에 숨겨져 있는 장점을 찾아낸다. 청년들과의 실험에서 분명 갱년기의 중년들은 젊은이들보다 체력도, 순발력도 떨어졌다. 하지만 놀랍게도 그들은 젊은이들보다 공간지각력, 언어능력, 귀납적 추리 능력이 뛰어났다. 이는 지난 60년간 미국 세로 연구소의 연구 결과이자, 짧은 시간이지만 다큐의 실험 결과이기도 하다.

즉 청춘의 시대인 이 시대가 중년, 중년에서 노년으로 넘어가는 갱년기의 '더 이상 젊음이 아님'에만 주목하는 것과 달리, 그리고 의학적으로 호르몬의 부정적 수치라는 결과만이 아닌, 진짜로 그 옛날 마을을 이끌던 '어르신'의 존재 이유처럼 ‘갱년기'는 그 각도에 따라 얼마든지 새로 삶을 살 수 있는 기회라고 다큐는 말한다. 그리고 실험을 통해 증명한다. 그간 집중했던 '성적 에너지' 대신 새로이 쓸 수 있는 '지혜'에 주목한다면, 갱년기 이후의 삶은 얼마든지 살만한 인생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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