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의 날이었던 어제(11월 11일) 한국진보연대와 민주노총 등의 주최로 ‘2007 범국민 행동의 날 민중총궐기 대회’이 열렸다. 이 대회를 불법집회로 규정한 경찰은 전국 421개 중대 64,000여 명을 동원하여 이 대회 개최 자체를 원천적으로 봉쇄하고자 하였다, 하지만, 경찰의 봉쇄작전은 대회참가자들의 격렬한 저항을 초래하며 시위대와 경찰 모두 수십 여 명의 부상자들이 속출하였고, 120 여 명의 ‘불법(!)’ 대회 참가자들이 연행되었다. 또한 경찰은 전국 각지의 고속도로 진입로를 차단하고 대회 참가를 위해 상경하고자 하는 이들을 막는 과정에서 고속도로 통행을 정체시키기도 하였다.

“...서울시청 앞에서 개최할 예정인 대규모 집회는 도심의 극심한 교통체증과 시민불편을 야기할 것으로 우려되어 경찰에서는 집회 금지를 통고한 바 있습니다.” (11월 9일 ‘범국민 행동의 날’ 개최에 대한 정부 담화문 중)

“경찰의 원천 봉쇄는 계엄령을 방불케 한다. 집회와 시위의 자유는 박탈당했고 평화시위의 의지는 권력의 무자비한 폭력 앞에 무참히 짓밟혔다" - (‘2007 범국민 행동의 날 조직위’의 대 국민 호소문 중)

▲ 한국경제 11월12일자 5면.
소통 없는 참여정부 임기말년의 흉흉한 민심의 일단이다. 참여정부는 헌법에 보장되어 있는 집회의 시위의 자유를 ‘교통체증과 시민불편’이라는 궁색한 변명으로 막아버렸다. 5공 시절에 유행하던 사회적 안정과 경제활동의 피해라는 명분까지 끄집어내며 참여정부는 이날 대회에 참가한 노동자, 농민들의 외침을 짓눌러(!) 버렸다.

이번 대회는 최근 다시 이어지고 있는 노동자와 노점상의 분신사건들 조차 대통령 선거에 묻혀 언론에 제대로 보도되지도 않는 현실에 대해 노동자, 농민, 그리고 노점상들이 직접적으로 분노를 표출시킨 사건이라고 볼 수 있다. 또한 정부와 경찰의 원천봉쇄 선언과 구속수사 등의 강경한 입장에도 불구하고 전국적으로 6만 여 명이 대회참석을 위해 길거리에 나섰다는 사실은 이러한 분노가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임을 예견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이들의 분노에 대해 정부와 언론은 어떠한 대화와 소통도 거부할 태세다.

“... 그 동안 정부는 한미 FTA 및 농업대책, 비정규직 및 청년실업, 노점상 등과 관련된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범정부적인 노력을 다하여 왔습니다... 17대 대통령 선거를 불과 40여일 앞두고 도심에서 대규모 집회를 개최하는 것은 사회적 안정을 저해할 뿐만 아니라 국민들의 일상생활과 경제활동에도 막대한 피해를 주는 매우 유감스러운 행동...” (정부의 담화문 중)

"불법집회 엄단 철저히 집행해야"(<한국경제>), "불법적인 파업 · 집회 취소가 마땅하다"(<연합뉴스>), "진보단체 · 노조, 무법천지 꿈꾸는가"(<중앙일보>), "빼빼로데이에 진압출동이라니"(<문화일보>) 등등.

▲ 조선일보 11월12일자 사설.
이러한 대화와 소통 부재의 가장 직접적인 원인은 대화와 소통을 통해서도 거리로 나선 노동자와 농민 등 우리사회 기층 민중들의 분노를 잠재우기는 힘들다는 정부관료와 기득권 세력의 판단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모든 대화와 소통에는 일정한 자기희생이 전제되어야 하다. 폭력으로 외화되는 사회적 갈등의 이면에는 첨예한 이해관계가 잠복해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갈등 당사자들이 서로의 이 첨예한 이해관계 중 일부를 양보하지 않는 한 소통과 대화는 애초부터 불가능하다.

불행한 것은 현재 대한민국 정부관료와 기득세력은 결코 그들의 이해관계를 포기할 생각이 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그들은 기층 민중들의 요구가 과도하다며 직접적인 이해관계와는 무관한 얄팍한 시혜적인 조처들만 남발하거나 때로는 그 시혜적 조처들조차 대화와 소통의 전제조건으로 부풀렸다 줄이기를 반복하고 있다. 그리고 거리로 나선 이 땅의 기층 민중들은 그들의 기만적인 행위에 최소한의 신뢰마저 접어버린 것으로 보인다.

“현 정부가 노동자와 농민, 노점상 들을 죽음으로 몰아넣고 있다.” (2007 범국민 행동의 날 대회 중 권영길 민주노동당 대선 후보)

“한미FTA 저지하고 비정규직 철폐하자. 아이들에게 이런 삶을 물려주지 말자.” (대회에 참가한 제주도의 여성농민)

더욱 불행한 사실은 이런 소통불능 상태를 해결하기 위해 수많은 진보적인 학자와 온건한 개혁주주의자들이 ‘사회적 대타협’을 주장해왔지만 현실에서 아무런 반향도 일으키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그 궁극적 결말은 극단적인 갈등과 혼돈의 ‘파국’이 될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이 파국의 1차적 책임은 지난 5년 동안 어떤 이해관계의 조정도 제대로 성사시키지 못한 채 기층 민중들을 불신과 절망의 나락으로 내 몬 참여정부와 노무현 대통령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

‘금산분리 반대’와 같은 신자유주의 세력들의 극단적인 슬로건이 횡행하고 이를 지지하는 극우 대통령 후보와 중도우파 대통령 후보의 대선 경쟁은 기층 민중들보다는 피해를 덜 입을 것으로 스스로 예상하는 다수의 민중들로 하여금 이 끔찍한 파국상황을 그저 넋 놓고 바라보게만 만들고 있다. 11월 16일 철도와 도로를 멈춰 대화와 소통의 조건을 만들어 보겠다는 화물연대의 파업투쟁은 이 끔찍한 파국 로드맵을 앞당기는 이정표가 될 지, 아니면 말없이 이들을 응시하고 있는 대다수 민중들이 이 파국의 주행에 제동을 걸 수 있는 계기가 될 지 자못 궁금해진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갈만한 세상을 만들고 싶다’는 대학시절의 고민을 놓치 못한 채 공영방송에 입사했지만, 공영방송에서 조차 이 고민을 다 담지 못하고 이제 두 딸아이의 미래를 위한 나름의 헌신과 실천을 고민하는 생태주의자 ‘고니아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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