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전혁수 기자] 8일 오후 1시 30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 18층 전국언론노동조합 회의실에서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의 구속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이 열렸다. 이번 "헌정유린·사찰의 주범 김기춘을 구속하라" 기자회견은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언론개혁시민연대, 언론노조, 진보네트워크센터, 천주교인권위원회 등이 주최했다.

▲8일 "헌정유린·사찰의 주범 김기춘을 구속하라" 기자회견 모습. 왼쪽부터 이광철 변호사, 김동찬 언론개혁시민연대 사무처장, 강문대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사무총장, 장여경 진보네트워크센터 활동가. ⓒ미디어스

이날 기자회견에서는 고 김영한 전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의 비망록을 바탕으로 김기춘 전 비서실장의 헌정유린에 대한 내용이 다뤄졌으며, '법조계 개입 및 통제'는 강문대 민변 사무총장이, '민간인 사찰 및 사이버 검열'은 장여경 진보네트워크센터 활동가, 국정원 사찰에 대해서는 이광철 변호사가 분석·발표했다.

김영한 전 수석의 비망록에 따르면 김기춘 전 비서실장은 언론·문화·예술 등 사회 전 분야에 걸쳐 검열과 통제를 지시했고, 민간인에 대해서도 세월호 참사 이후 박근혜 대통령을 향하는 비판을 잠재우기 위해 반헌법적인 민간인 사찰도 마다하지 않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김영한 전 수석의 비망록에 따르면 청와대는 민변 소속 인사들에 대해 소위 '뒷조사'를 했고, 통합진보당 해산과 세월호 유족 변론을 맡은 변호사들에 대한 신상조사에 나서기도 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청와대 민정수석실에서 조사한 통합진보당 해산 및 세월호 유족 변호인 명단. (자료=전국언론노동조합)

대한변호사협회 산하 보수성향의 임의 변호사단체들을 통합해 민변에 대응하는 모임을 꾸리는 등의 공작을 펼쳤던 사실도 드러났다. 또한 '법원이 지나치게 강대해졌다'면서 상고법원을 이용해 법원을 길들이려 했던 정황도 밝혀졌다. 3권 분립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행위를 벌인 셈이다.

청와대는 대한변협 선거에도 개입하려는 시도도 펼쳤다. 김영한 전 수석의 비망록에는 2015년 1월 대한변협 선거에 합리 적인사로 단일화하라는 지시 내용이 적시돼 있었다. 그리고 이를 위해 보수시민단체의 관여가 필요하다는 내용도 담겨 있었다.

청와대의 개입은 법조계에 그치지 않고 민간에까지 파고들었다. 정부 비판적인 다음 아고라 대응을 위해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인적 구성'을 요청하기도 했다는 의혹이 일고 있다. 아울러 청와대 비판 인터넷 게시물에 대해 적극적인 수사를 지시하기도 했다. 이후 방심위는 명예훼손 게시물을 당사자 뿐 아니라 제3자가 신고할 수 있도록 통신심의규정을 개정했다.

▲김영한 전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의 비망록 일부. '방심위-피해자 본인 신청이 있는 경우에만'이라는 메모가 적혀있다. (자료=전국언론노동조합 제공)

정부는 카카오톡 감청에도 강제력을 행사했다. 2014년 10월 1일 당시 정진우 전 노동당 부대표가 카카오톡 압수수색 기자회견을 갖자, 전 국민적으로 사이버망명이 확대 됐다. 이에 10월 8일 이석우 카카오 대표는 공식사과를 하고 감청 중단을 전격 선언했는데, 청와대가 이 대표에게 압력을 넣은 정황이 밝혀진 것이다.

국회 법사위 국정감사에서 이석우 대표가 10월 16일 "감청영장에 협조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명확히 하자, 청와대는 입법 등의 적극적인 대응을 시작했다. 11월 4일에는 카카오톡 감청영장 집행을 위한 연구TF팀을 설치하고 11월 12일에는 감청영장에 응하지 않는 카카오톡에 대해 불만을 표출하기도 했다. 급기야 12월 이 대표가, 2015년에는 김범수 카카오 이사회 의장이 연달아 검찰과 경찰에 소환돼 수사를 받는 일이 벌어졌다.

결국 2015년 10월 카카오는 실시간 감청이 아닌 보관했다가 전달하는 방식으로 감청협조를 재개했다. 대법원이 감청협조가 위법이라고 결정해 다시 협조가 중단되자, 새누리당은 사이버테러방지법의 입법을 촉구하고, 2016년 테러방지법과 함께 국회의장 직권상정까지 추진했다.

이 외에도 청와대는 윤창중 국무총리 지명자의 낙마에 힘을 보탠 불교계, 천주교 신부 등 종교계 인사들에 대해서도 불법 민간인 사찰을 진행했고, 미국에서 시위를 벌인 교포들에 대해서도 '불법시위꾼'으로 낙인찍고 사찰을 지시했다.

이러한 각종 사찰에 국정원이 수차례 관여한 것도 드러났다. 국정원은 국정원법에 따라 국내 보안 정보 및 국외정보, 방첩, 정부전복, 테로 등 5개 사안에 대해서만 정보수집활동을 할 수 있다. 그러나 보안정보가 아닌 민간에 관여한 의혹이 드러난 것이다. 통상적으로 국정원이 국가보안법에서 말하는 국내 정치, 사회 현안 등에 개입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금지돼 있다.

이광철 변호사는 "김영한 전 수석의 메모에서 발견된 국정원 관련 사안들은 막연하게 추측해왔던 국정원의 국내 정치, 사회에 대한 개입을 확인해주는 것"이라면서 "국정원이 박근혜 정부의 청와대와 결합해 여론을 유리한 방향으로 이끌어나가려 한 것은 국정원의 국내문제 개입"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국민이 원하는 국정원은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지킬 수 있는 국정원"이라면서 "권력자를 비판하는 야당과 국민을 겁박하는 그런 국정원이 박근혜 같은 괴물들이 온전히 존재할 수 있게 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 (연합뉴스)

이러한 국정농단과 각종 불법사찰을 주도한 청와대의 중심은 바로 김기춘 전 비서실장이었다는 것이 8일 기자회견을 개최한 주최 측의 주장이다. 김영한 전 수석의 비망록에 담긴 내용은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다뤄졌던 내용이고, 수석비서관회의를 주관하는 직책이 바로 비서실장이기 때문이다.

김동찬 언론개혁시민연대 사무처장은 "어제 청문회에서도 확인됐지만 김기춘 전 비서실장은 법률미꾸라지라는 별명 답게 법망을 요리조리 빠져나가고 있다"면서 "이런 메모가 등장을 한 이유 등을 정확히 파악해서 국민들에게 알려야만 (김기춘 전 비서실장에 대한) 법률적 심판이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김 사무처장은 "추가적으로 고발을 하거나, 또 다른 형태를 통해 시민사회가 대응해야 할 필요가 생기면 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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