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의 30년의 세월을 넘어 ‘정경유착’ 문제 때문에 재벌 총수들이 국회에 출석하는 일이 또 벌어졌다. 국회의원들이 재벌 총수들에게 불호령을 내리는 과거와 유사한 광경 역시 그대로 펼쳐졌다. 이 나라의 경제를 이끌고 있다고 하는 총수들이 “기억나지 않는다”, “잘 모른다”는 바보 같은 답변만 반복하는 것도 처음 보는 광경이 아니다.

6일 진행된 국회 국정조사에 출석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구태를 다 버리고 정경유착이 있었으면 다 끊겠다”고 발언했다. 이재용 부회장은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 등에 대한 출연을 결정한 걸로 알려진 미래전략실에 대해 “국민들의 부정적 인식이 있다면 없애겠다”고도 말했다. 언론은 이재용 부회장의 미래전략실 폐지 발언에 대해 사전에 조정된 내용이 아니었지만 평소 그의 소신이었다는 맥락 역시 전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가 여기서 새삼 느끼는 것은 “정경유착이 문제”라고 지적하는 정치인의 발언에 “정경유착을 끊겠다”고 기업인이 대답하는 광경 역시 새롭다고 볼 수 없다는 거다. 거의 30년 전 재벌 총수들과 국회가 벌였던 신경전에서도 비슷한 문답이 오고 갔다. ‘정경유착’은 기업과 관련한 사건만 터졌다 하면 단골메뉴처럼 불려 나오는 단어다. 사건이 벌어진 이후의 상황도 늘 비슷하다. ‘정경유착’의 주인공인 정치인과 기업은 반성한다며 보여주기식 개혁에 몰두하고, 언론은 정치가 기업 활동을 제약하는 현실에 개탄하며 공정한 경쟁에 기반한 시장원리의 철저한 구현 필요성을 목 놓아 외친다.

남는 의문은, 도대체 왜 이런 일이 틀에 박힌 듯 반복되느냐는 것이다. ‘정경유착’의 원인에 대해선 박정희 정권 시절의 국가 주도 수출경제의 잔재라는 주장이 다수다. 박정희 정권은 관치금융을 통해 기업을 통제하면서 정부가 의도한 발전전략에 기반해 이들에게 특혜를 주거나 손해를 입히거나 했다. 바로 이 시기의 행동양식이 정치권과 재계에 남아있기 때문에 미르재단, K스포츠재단 등의 사태가 일어난다는 설명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6일 국회에서 열린 '박근혜 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의혹 사건 진상 규명을 위한 국정조사 특별위원회' 오후 회의에서 삼성물산 합병과 정유라 지원과 관련한 의원질의에 답하다 안경을 고쳐쓰고 있다. (연합뉴스)

그런데 과연 그런 것인지 의문이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한국 경제는 이른바 ‘신자유주의 개혁 조치’로 불리는 일련의 과정을 통해 박정희 정권식 경제발전 전략에 이별을 고했기 때문이다. 경제관료들은 외환위기 당시 미국이 주도하는 IMF와의 협상을 진행하면서 국내 기업에 유리한 노동유연화를 적극적으로 도입하고 관철시켰고 정부의 시장 개입 여지를 축소했다.

1998년 김대중 대통령은 취임사를 통해 “도대체 우리가 어찌해서 이렇게 되었는지 냉정하게 돌이켜 봐야 합니다. 정치, 경제, 금융을 이끌어온 지도자들이 정경유착과 관치금융에 물들지 않았던들, 그리고 대기업들이 경쟁력 없는 기업들을 문어발처럼 거느리지 않았던들, 이러한 불행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라고 발언했다. 그의 문제의식과 세계적 대세에 따라 이후 한국경제는 급속하게 신자유주의적 세계체제의 일부로 편입되었다. 2005년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권력은 시장으로 넘어갔다”고 발언했다. 대기업 총수들에게 중소기업들과의 ‘동반성장’에 나서줄 것을 요구하면서 일종의 ‘립서비스’로 내놓은 말이지만 기업과 시장을 대하는 정부의 태도가 반영된 발언이라는 점을 부정할 수는 없다.

박정희 정권식 특혜에 익숙했던 대기업들은 시장원리를 중시하는 신자유주의적 개혁의 초창기에는 오히려 저항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정부가 주도한 신자유주의적 개혁 조치들은 대기업이 시장원리에 따라 공정한 경쟁을 통해 성장하지 않고 국가의 일방적 지원에 힘입어 문어발식 확장을 반복하는 현실을 뜯어 고쳐야 한다는 문제의식이 담겼기 때문이다. 경제에 대해 아는 것이 없었던 전두환 전 대통령이 경제정책의 전권을 당시 통화주의 이론의 세례를 받은 미국 유학파 관료들의 손에 맡기면서 대기업들의 위기의식은 커져갔다. 직선제를 통해 선출된 노태우 정권 때 대기업들이 정부의 정책 변화를 요구하며 들고 일어난 것은 대기업의 기득권을 축소하는 시장주의 개혁을 더 이상 참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대기업들의 태도가 바뀐 것은 김영삼 정부 때다. 이때부터 대기업들은 저항을 하기 보다는 신자유주의의 표현과 이론을 자신들이 장악하는 것으로 전략을 바꿨다. 시장원리의 구현이 대기업에 대한 배려를 통해 가능한 것처럼 프레임을 변경한 것이다. 이런 전략은 작은 정부 및 세계화라는 당시의 정책적 유행과 조응해 성공을 거두었다. 한국이 세계 각국과의 시장원리에 기반한 경제 전쟁에서 살아남으려면 경쟁력을 키워야 하고, 경쟁력이란 곧 대기업의 이윤 증대라는 도식은 박정희 시대를 거쳐 신자유주의의 중흥기를 지나고 나서도 이렇게 살아남았다.

이 도식의 효력이 아직까지 남아있기 때문에 정치는 언제나 대기업에 어떤 ‘역할’을 요구하며 반대급부로 특혜를 주는 방식의 행동양식을 버릴 수 없었던 것이다. 민간인 최순실 씨의 국정농단은 이런 상황을 사익을 추구하기 위해 이용함으로써 가능했다. 즉, 대기업들이 박근혜 대통령과 독대를 하고 나서 재단에 돈을 낸 것은 박근혜 정권이기 때문에 일어난 사건이 아니라, 한국의 이런 체제에서 그저 당연한 일이었던 거다. 재벌 총수들이 국회에 나와 별 죄의식 없이, 마치 언젠가는 치러야 했을 일을 그저 감당하는 것과 같은 태도로 무성의한 답변을 한 것은 이 때문이다.

문제의 근본적 해결을 위해서는 ‘정경유착’을 바라보는 관점이 바뀌어야 한다. 문제는 정치와 경제가 유착되었다는 것 자체가 아니다. 이는 현상일 뿐이다. 본질은 기업 활동으로 거둔 이윤을 국가가 누구에게 어떻게 배분할 것인가 이며, 이를 위해 정치가 무엇을 하느냐의 문제이다. 정치가 부의 재분배를 통한 양극화 해소와 사회안전망 강화를 위해 제도를 뜯어 고치는 사명을 다하지 않고, 이 책임을 편의적으로 기업에 떠넘기고 있는 현실을 돌아봐야 한다.

국민들은 6일 재벌 총수들이 출석한 국정조사 청문회에 대해 많은 불만을 쏟아내고 있다. 핵심의혹에 대한 날카로운 질문은 찾을 수 없었고, 변죽만 울리다 끝이 났기 때문이다. 보수언론은 경제인에 대한 망신주기식 청문회를 중단해야 한다고 점잖게 지적하고 있다. 정치권이 망신주고 호통치는 ‘쇼’를 하기 위해 재벌 총수들을 불러다 놓았다는 비판이다.

그러나 앞의 관점으로 보면 국정조사 청문회가 이렇게 맥이 빠지는 모양이 된 것은 국조특위원들의 준비가 부족했다거나 정치적 욕망이 앞섰다거나가 아니라 ‘의지’의 문제였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정치가 잘못된 체제를 바꾸려는 힘든 노력을 의식적으로 기피하고, 대기업도 자신들에게 불리한 체제 변화를 감당하기보다는 총수가 망신당하는 연례행사를 한 번 치르는 걸로 현상을 유지하려 한 결과인 것이다.

세계 각국의 정치가 현실을 감당하지 못하면서 ‘이변’이 속출하는 시대다. 계속 이런 식으로 자기 사명을 외면하면 한국 정치도 어떤 비극을 맞이할지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국민들은 박근혜 정권의 파탄적 최후가 다가오는 속에서도 다음 대통령으로서 누가 적임자인지 판단하는 데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시대가 무엇을 원하는지를 파악하고 이를 적극적으로 짊어지는 결단의 정치가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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