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그룹 이종왕 법무실장이 지난 9일 사직서를 제출했다. 대한변호사협회에 변호사등록까지 취소했다. 삼성그룹 이학수 전략기획실장이 직접 만류했으나 “변호사 자격증 없이 법무를 맡을 수 없다”며 사의를 굽히지 않았다는 게 삼성 쪽 설명이다.

삼성 쪽이 공개한 이종왕 법무실장의 이메일을 보면 이런 내용이 있다. “김 변호사 문제로 회사에 말할 수 없는 피해를 끼쳐 법무책임자로서 송구스럽다. 이런 파렴치한 행위를 하는 사람이 변호사라는 사실에 대해 같은 변호사로서 큰 자괴감을 느낀다.”

이 실장이 언급한 파렴치한 행위를 하는 사람은 다름 아닌 김용철 변호사다.

▲ 매일경제 11월12일자 15면.
이종왕 삼성법무실장의 돌연사퇴에 대한 다양한 해석들

삼성쪽 입장이니 일단 ‘이해’하고 넘어가자. 뭐 어차피 삼성 입장이야 안봐도 비디오 아닌가. 언론은 저널리즘 차원에서 돌다리를 하나씩 두들겨보면서 짚을 건 짚되, 아닌 건 “이거 아닌 것 같은데” 하고 지적하면 그만이다. 그게 언론의 사명이자 숙명이다.

삼성과 대척점에 서 있는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의 입장은 이렇다.

“김용철 변호사의 양심고백을 근거 없는 말이라고 비난하며 사퇴한 것은 이 문제를 삼성 전ㆍ현직 법무실장 간의 사적인 진실 공방으로 몰고 가려는 의도인 것 같다. 의혹이 있으니 검증하자는 것인데, 자신이 있다면 수사에 응하면 그만인 것을 삼성은 왜 자꾸 인신공격성 발언으로 싸움을 하려 하는지 모르겠다.”

사실 김용철 변호사의 비자금 의혹제기로 시작된 이번 파문이 향후 검찰 수사로 이어진다는 점을 감안했을 때 이 실장의 돌연 사퇴는 석연치 않다. 주도적으로 ‘비자금 정국’을 이끌어야할 책임을 지고 있는 법무실장이 돌연 사표를 제출했다? 이메일에 드러나지 않은 다른 배경이 있다는 해석이 분분한 것도 이 같은 배경 때문이다.

오늘(12일) 일부 신문들이 이 실장의 사퇴와 관련해 여러 분석과 해석을 내놓고 있는 것도 이런 점을 감안한 것으로 보인다. 그 가운데 몇 가지만 추스르자.

“이와 관련해 삼성 안팎에선 의혹이 확산되는 것을 차단하고 사내 '책임론'이 제기되는 것을 막기 위해 이 실장이 '총대'를 멨다는 해석도 나온다.” (매일경제 12일자 15면 <이종황 삼성법무실장 돌연 사직 왜?>)

“이 실장이 사실상 문책을 당한 게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삼성이 법무실 주도로 지난 5일 김 변호사의 주장을 조목조목 반박하는 해명자료를 냈으나 별다른 효과를 보지 못한 데 대한 책임을 지고 사퇴한 게 아니냐는 것이다.” (한겨레 같은날짜 <삼성 이종왕 법무실장 ‘돌연사태’ 배경 촉각>)

▲ 한겨레 11월12일자 8면.
“일각에서는 이고문이 검찰의 부담을 덜어주려는 의도도 있다고 보고 있다. 검찰 간부 출신인 이실장이 그룹 법무실장으로 있으면 검찰이 부담을 느낄 수 있고 외부에서도 오해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종왕 실장은 사법시험 17회 출신으로 정상명 검찰총장과 동기다. 그러나 이고문이 떠난 것은 삼성비리 사건을 삼성그룹이 아닌 ‘법무실’에 국한된 사건으로 축소하려는 의도가 숨어있다는 시각도 있다. 김변호사를 관할하에 두고 있던 이고문이 회사를 떠남으로써 이 사건을 법무실의 문제로 인식되도록 하려 한다는 것이다.” (경향신문 같은 날짜 2면 <검찰부담 고려? 사건축소 의도?>)

사퇴 배경의 진위보다는 삼성 입장 두둔하기에 바쁜 언론들

그런데 삼성의 ‘전위대’로 나선 일부 언론이 있다. 삼성 비자금 파문이 터진 초기부터 줄곧 삼성 쪽에 무게중심이 기울어져 있던 신문들인데, 그 ‘대오’가 전열의 흐트러짐 없이 지금까지 줄곧 ‘삼성의 삼성에 의한 삼성을 위한’ 논조를 고수하고 있다. 추스르면 다음과 같다.

<삼성 “김용철 변호사에 법적대응”> (국민일보 11월12일자 2면)
<“김용철 변호사 거짓폭로 보며 자괴감”> (동아일보 11월12일자 10면)
<삼성, 김용철씨에 법적 대응 검토> (중앙일보 11월12일자 2면)
<“김용철 변호사 사건의 본질은 거짓폭로” … 이종왕 삼성 법무실장 사퇴 / 삼성 “협박성 편지 받아”> (한국경제 11월12일자 12면)

▲ 중앙일보 11월12일자 2면.
이들 신문의 기사 내용을 굳이 요약 정리할 필요는 없다. 이들의 신문과 삼성의 해명 및 보도자료는 별반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주도적으로 ‘삼성 비자금 정국’을 이끌어야할 책임을 지고 있는 법무실장이 돌연 사표를 제출했는데도, 그 배경을 짚지 않은 채 삼성 입장 전달하기에만 바쁜 언론이다. 무엇을 기대하겠는가. 차라리 이 참에 ‘삼성 계열사’로 들어가는 게 어떨지 싶다.

특히 중앙일보의 경우 ‘최소한의 예우’마저 내던지는 ‘싸가지 없음’을 보여줬다. 김용철 변호사에 대한 호불호와 상관없이 그래도 대다수 신문이 변호사라는 호칭을 수반하고 있는 것과는 달리 중앙일보는 ‘씨’라는 호칭을 붙임으로써 자신의 정체성을 그대로 드러낸 꼴이 돼버렸다. 이럴 땐 그냥 피식 한번 비웃어주면 된다. “중앙 니들이 그렇지 뭐 …”

국민 동아 중앙 한국경제와 ‘외부 칼럼진들’…이들을 기억하자

한국경제는 기사로도 모자라 외부칼럼까지 동원했다. 윤창현 서울시립대 경영학 교수가 ‘삼성을 위해 공격수’로 나섰다. <휘슬 블로어는 도덕성이 핵심>이라는 글인데 이런 저런 거룩한(?) 말씀을 해놓으셨는데 핵심은 이거다.

“가장 의문스러운 것은 차명계좌의 존재를 미리 알았으면서도 계속 침묵으로 일관하다가 전관예우 차원의 급여지급기간이 끝나고 나서야 문제를 제기한 부분이다. 심경의 변화가 있었다는 식으로만 보기에는 문제가 있다. 조직으로부터 챙길 것 다 챙기고 더 챙길 것이 없어지자 비로소 폭로를 한 것은 아무리 봐도 모양새가 나쁘다. 이 때문에 그가 정말 자신이 속했던 조직을 위한 순수한 마음으로 이러한 행동을 했는지 의문시되는 것이다.”

▲ 한국경제 11월12일자 38면.
웃긴다. 더 이상 챙길 게 없는 사람이 ‘구속까지 각오하고’ 이런 ‘행동’을 저지른다는 얘기인가. 김용철 변호사가 굳이 ‘한 몫 단단히 챙기고자 했다면’ 이미 챙길 수 있는 시간적 여유와 기회는 많았다. 기자회견 직전까지 삼성쪽이 김 변호사를 막기 위해 얼마나 고군분투 했는지를 보면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거래’를 하려 했다면 진작에 했을 터.

이런 상식적인 의문은 뒤로 한 채 윤창현 교수는 ‘휘슬 블로어’의 도덕성만 운운하고 있다. 자신의 과오를 세상에 공개하면서 어떤 처벌도 달게 받겠다고 참회하는 게 도덕적이지 않다면 대체 뭐가 도덕적이란 말인가. 윤창현 교수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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