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탄핵가결이 유력해졌다. 새누리 비박계가 탄핵표결에 참여하기로 결정했다. 주말 촛불에 압박감을 느낀 탓일 게다. 공조를 복원한 야당들도 최소한 9일까지는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짐작컨대 그리고 기대하건대 탄핵찬성표는 가결정족수 200을 훨씬 상회할 것으로 보인다. 소위 순장조를 제외하면 총성도가 떨어지는 친박들도 이제는 제살길을 찾을 가능성이 높다. 보수언론도 거들 것이다. 하루속히 박근혜를 제거하는 것이 그나마 보수의 재건을 도모할 유일한 방안임이 너무도 명백하기 때문이다.

여기까지 끌어온 주역은 국민이다. 상대적으로 야당의 대응은 초라했다. 가을바람에 흔들리는 갈대가 저랬을까? 물론 상황이 바뀌면 대응도 달라져야 한다. 그렇지만 왔다갔다하는 것은 곤란하다. 야당이 입장이 2선 후퇴에서 하야로, 하야에서 탄핵으로 옮겨간 것은 비록 촛불 뒤꽁무니만 따라왔다는 비판을 받을수는 있지만 결정적 잘못은 아니다. 자연스러울 수 있다. 그러나 막바지까지 탄핵과 소위 '명예로운 퇴진' 사이를 오락가락한 것은 비판을 받아 마땅하다.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대표(오른쪽), 국민의당 박지원 비상대책위원장 겸 원내대표가 지난 1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야3당 대표 회동에 앞서 인사를 나눈뒤 자리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kane@yna.co.kr

탄핵표결날짜를 두고 더민주와 국민의당 그리고 지지자들이 벌인 비난전도 정도를 벗어났다. 2일과 9일 두 방안을 놓고 얼마든지 토론은 가능하다. 더민주는 9일을 주장하는 국민의당에 탄핵반대세력이라는 프레임을 씌우는 데 성공했다. 당초 원인을 제공한 것은 전날의 야3당 합의를 깨고 비박의 김무성 의원과 단독협상에 나선 추미애 더민주 대표다. 가결을 중시한 국민의당이 2일 표결을 반대하자 그걸 업어치기 한 셈이다. 더민주는 정치적 성공을 자축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경향신문>의 보도에 따르면 12월 1일의 해프닝이 있기 전에 더민주의 탄핵추진실무준비단 회의에서도 2일과 9일을 두고 토론이 있었다고 한다. 결국 2일로 결정했지만 아마도 당내 토론에서는 9일을 주장하는 사람들을 탄핵반대세력으로 비난하지 않았을 것이다.

비난전에 동원된 음모론이 더 문제다. 대부분의 음모론이 겉으로는 치밀한 인과관계의 사슬로 잘 짜인 것처럼 보이지만 허술하기 짝이 없다. 마치 태양계의 혹성이 한 줄로 서는 것과 같이 여러 가정과 우연이 맞아떨어져야 한다. 상대방을 무소불위의 힘을 지닌 엄청난 능력자로 보거나 아무 것도 모르는 바보로 간주하는 것이 음모론의 또 한가지 특징이다.

당초 더민주가 국민의당에 들이댄 음모론은 이렇다. 국민의당은 탄핵가결 명분으로 새누리 비박계에 힘을 실어주고, 개헌을 약속하고, 궁극적으로는 그들과 손잡고 제3지대를 만들려고 한다는 것이다. 국민의당이 2일 표결을 반대한 다음에는 조금 바뀌었다. 국민의당이 탄핵가결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서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탄핵표결 이전에 대통령에게 4월퇴진을 발표할 시간을 벌어주고, 이를 명분으로 비박계는 탄핵을 반대하고, 궁극적으로 탄핵을 무산시킨 후 비박계와 더불어 제3지대를 만들고, 개헌을 한 후 권력을 나눠가지려 한다는 것이다. 두 개의 음모론 모두 질문 몇 개로 간단하게 무너진다. 아니 민주당이 반대하는데 국민의당과 비박계의 힘으로 어떻게 개헌이 가능한가? 국민의당 지도부가 비박계와 합치자고 하면 소속 의원들과 당원들이 군말 없이 따라가는 충성도와 결속력을 갖춘 당이란 말인가? 촛불정국 이전이라면 모를까 국민의당이 지금도 비박계와 손잡으면 정치적으로 얻을 이익이 많다고 생각할 만큼 바보란 말인가?

국민의당이 제기하는 음모론도 한심하기는 마찬가지다. 문재인 전대표가 지지율이 제일 높기 때문에 대선을 최대한 빨리 해야하고, 탄핵은 헌법재판소가 인용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릴 것 같고, 따라서 협상으로 대통령을 빨리 퇴진시키는 것이 최선이므로 김무성 의원과 만난 것이라는 이야기다. 지금까지 더민주 지도부와 문재인 전대표가 하야나 탄핵에 대한 입장을 쉬 결정하지 못한 것은 상황이 그만큼 복잡하고 불확실했기 때문이다. 과연 그런 사람들이 갑자기 조기퇴진과 조기대선이 자신들에게 유리하다고 확신할 수 있었을까? 협상이 성공하면 비박계에 구걸하지 않겠다고 그토록 강하게 말하던 추미애 대표가 이를 어떻게 해명하며 촛불민심이 납득할 수 있었을까?

두 야당의 음모론은 뜻하지 않게 중요한 사실을 폭로한다. 두 야당은 입만 열면 촛불민심을 따르겠다고 했지만 사실 촛불민심을 전혀 믿지 않는다는 점이다. 반대로 상대당이 음모를 꾸며 얼마든지 촛불민심을 기만할 수 있다고 믿는다.

두 야당이 찌질한 음모론으로 상대방을 음해하는 일은 피해야 한다. 두 야당의 지도부만이 아니라 지지자들도 될수록 자제하는 것이 좋겠다. 두 야당이 경쟁하는 것 자체는 탓할 일이 아니다. 건전한 경쟁은 오히려 나라를 위해 좋다. 이제부터 두 야당이 경쟁해야 할 일은 먼저 탄핵에 공을 세우는 일이다. 경쟁적으로 나서서 새누리당 의원들을 설득하고 압박해야 한다. 구걸하지 말아야 한다는 소리는 맞지 않는다. 사익을 위한 구걸은 나쁘지만 공익을 위한 구걸은 좋은 일이다. 가결 후에 헌재 통과를 위해서 경쟁하는 것은 아무도 뭐라하지 않는다.

두 야당이 본격적으로 경쟁해야할 영역은 새로운 대한민국 건설을 위한 비전 제시이다. 야권에 속한 대선주자들의 과제이기도 하다. 구체제의 청산과 신체제의 건설을 구별하고 청산이 먼저라고 하는 의견이 있다. 청산이든 건설이든 황교안 권한대행체제 아래서 대선 전까지 할 수 있는 것은 별로 없다. 있다면 곧 진행될 국정조사와 특검을 통해 범죄에 직접 연결된 피의자들을 기소하는 것 정도다. 환부를 도려내는 수준이다. 총선이 없으므로 지금 당장은 새누리당을 심판할 방안도 마땅치 않다. 더 크고 근본적인 문제들, 박정희의 유산, 기득권세력, 재벌체제, 검찰권력 등을 해결하는 일은 손도 대지 못할 것이다. 결국 수 십 년간 쌓인 구체제의 적폐를 발본적으로 들어내고 새로운 시스템을 장착하는 일은 다음 정부의 몫이다. 두 야당과 대선주자들이 경쟁해야 할 지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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