촉이 좋은 사람들은 제목과 포스터만 봐도 대강 알 수 있겠지만, <우리 손자 베스트>는 최근 가장 논란 많고 뜨거웠던 집단 ‘일간베스트’와 ‘어버이 연합’을 전면으로 다룬 블랙코미디 영화다.

올해 열린 제17회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전주 시네마 프로젝트’로 공개된 이후 약 7개월간의 표류 끝에 극장 개봉으로 만나는 이 영화는 전주에서 상영할 당시에도 언급 자체만으로도 조심스러워지는 ‘그 집단’들을 적극 등장시켰다는 점에서 뜨거운 반응을 얻었다. 거기에 그들을 그려내는 방식도 속된 말로 끝내주니 이 영화의 개봉이 기다려질 수밖에 없었다.

영화 <우리 손자 베스트> 스틸 이미지

7개월 만에 관객들과 정식으로 만나게 된 <우리 손자 베스트>. 영화를 제작할 당시에도, 심지어 이 영화가 전주국제영화제에서 공개될 당시에도 전혀 예측하지 못했던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라는 희대의 사건을 맞닥뜨리게 된다. 일찌감치 개봉일자를 잡아 놓은 영화 관계자들은 영화보다 더 스펙타클하고 임팩트 있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 속수무책 무릎을 꿇어야했지만, <우리 손자 베스트>는 소재가 소재이니만큼 오히려 호재를 맞은 분위기이다.

행여나 실제 그 커뮤니티에 속한 구성원들이 영화를 보고 상처를 받을까봐 ‘너나나나베스트’, ‘어버이별동대’로 이름까지 바꾼 배려까지 보여준 <우리 손자 베스트>는 현 대한민국 사회의 ‘암적 존재’로 지목받는 이들의 행동을 희화화시키면서도, 한편으로는 연민의 시선을 아끼지 않는다. ‘너나나나베스트’의 열혈회원이자 패악질을 일삼는 교환(구교환 분)이 사실은 평범하지 않은 가정에서 자라나 사람들의 따뜻한 관심이 필요한 ‘헬조선’의 청년 중 하나일 뿐이요, 자기와 다른 생각을 가진 노인에게 무지막지한 폭력을 가하는 애국보수 정수(동방우 분) 또한 과격한 사상에 빠질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인간적인 관점에서 바라보고자 한다.

영화 <우리 손자 베스트> 스틸 이미지

일베와 어버이 연합의 실체를 파헤치려 하기보다 그 집단에 속한 한 개인의 관점에서 현재의 대한민국을 보고자 하는 <우리 손자 베스트>는 자칫 피상적으로 이들을 바라보게 할 위험 소지가 높아 보인다. 하지만 걱정 붙들어 매시라. 이 영화의 진가는 정수와 교환이 진심으로 손을 잡게 되는 후반부에 있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올 때까지 어디로 튈지 짐작조차 할 수 없는 <우리 손자 베스트>는 요즘 한국 영화에서는 볼 수 없는 괴작의 향기까지 묻어난다.

극중 주인공인 교환, 정수와 그 주변 캐릭터들을 표상하는 방식을 제외하고는 이야기 구성, 촬영, 편집 그 어느 것도 쉬이 정형화 되지 않은 <우리 손자 베스트>는 전통적인 극영화의 기본에 충실한, 보통의 한국영화에 익숙한 관객들에게는 황당함을 안겨줄 수도 있다. 하지만 장면과 장면 사이가 자연스럽게 이어지지 못한 채 뚝뚝 끊어지고, 거칠게 나아가는 전개 또한 이 영화에서만 느낄 수 있는 묘미다. 일베, 어버이 연합이 아닌 사람들이 봤을 때는 같은 편이라고 생각하는 그들조차 고루 섞이지 못하는데 하물며 완전히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끼리 완전한 통합과 화합이 가능할까.

영화 <우리 손자 베스트> 스틸 이미지

처음부터 ‘너나나나베스트’ 열혈회원 교환을 이해하고자 시작한 촬영은 아니었지만, 나름 그를 이해하려고 노력은 한 것 같았던 카메라는 결국 마지막 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 내동댕이친다. 극 중 애국 보수 어르신으로 칭하는 ‘어버이별동대’를 바라보는 영화의 시선은 더욱 모호해진다.

결국 이들을 어떻게 바라보는가는 전적으로 관객의 몫에 달려있다. 지난 10월 말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불거진 이후 매주 토요일 수백만의 시민들이 박근혜 대통령을 퇴진을 외치는 동안, 극 중 교환이 속한 극우성향 사이트는 잠시 주춤해진 가운데 정수가 속한 애국보수 어르신들은 비슷한 성향의 집단과 연계하여 여전히 세를 과시하고자 한다. 과연 우리는 사상 초유의 촛불정국 속에서 오히려 촛불을 부정하고 반동의 움직임을 보이는 현실의 교환과 정수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그들을 이해하려는 것은 가능할 수 있을까. 이에 대해 명쾌한 정답을 내리지는 못하지만, 여러 가지 생각거리를 안겨주는 <우리 손자 베스트>이다. 8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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