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전국 곳곳에서 노동자 농민들의 시위가 벌어졌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동안 대통령 선거에만 집중한 나머지 노동자와 농민들,그리고 우리 주변 소외된 이들의 목소리를 듣는 데는 소홀했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김주하 앵커가 11일 방송된 MBC <뉴스데스크>를 끝내며 한 클로징 멘트다. 사실 11일 서울에서 개최된 ‘범국민 행동의 날’ 집회의 핵심은 이 부분이다. 같은 날 SBS <8뉴스> ‘비정규직 해결하라’는 리포트를 보면 이런 부분이 나온다.

“해마다 이어져온 행사기는 하지만 올해는 특히 온 국민의 관심이 대선에만 쏠린 나머지 서민 문제가 외면당하고 있다는 위기감이 반영돼 있습니다.” 이날 집회가 왜 열리게 됐으며 집회가 참가한 ‘사람들’의 요구가 무엇인지를 정확히 진단하고 있는 김주하 앵커의 클로징 멘트와 SBS의 이 리포트는 하지만 개별적으로만 돋보인 채 주목을 받지는 못했다.

개별 리포트에서 핵심은 짚었으나 ‘의제화’에는 실패

▲ 경향신문 11월12일자 14면.
주목을 받지 못한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방송사들은 이날 정부와 시위대간의 ‘충돌’을 중계방송 하듯이 반복함으로써 이날 시위 역시 ‘많고 많은 집회’ 가운데 하나라는 인상을 심어줬다. 집회의 자유를 헌법으로 보장하고 있는 국가에서 정부가 ‘교통혼란’ 등을 이유로 원천봉쇄 방침을 밝힌 것 자체가 논란의 여지가 많음에도 방송뉴스는 이를 문제 삼지 않았다. 갈등 혹은 폭력에 대한 ‘이미지’가 내용을 압도하는 상황에서 SBS의 개별리포트와 MBC 클로징 멘트가 주목받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방송사들이 이번 집회를 다루는 방식 자체가 ‘상투적’이었던 점도 하나의 요인으로 지적된다. 시위현장의 충돌을 중심으로 구성되는 리포트는 이제 ‘리포트’로서 별다른 의미를 가지지 못한다. 이날 집회도 정부의 원천불허 방침으로 이미 ‘충돌’이 예견된 상황이었는데 만약 방송사들이 상투성을 벗어던지고자 했다면 이번 집회가 갖는 의미나 성격 등을 좀더 분석적으로 끌어냈어야 했다. 하지만 방송사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분석적인 접근방식의 부재는 필연적으로 의제화의 부재를 동반했다. 사실 SBS의 리포트 ‘비정규직 해결하라’에서 “특히 온 국민의 관심이 대선에만 쏠린 나머지 서민 문제가 외면당하고 있다는 위기감이 반영돼 있다”는 부분을 아래와 같이 바꿔도 크게 무리는 없다.

“온 언론의 관심이 대선에만 쏠린 나머지 서민 문제가 외면당하고 있다는 위기감이 반영돼 있다.”

쟁점이나 의제별로 묶이지 못하는 리포트 … 파편화된 양상 보여줘

▲ 11월11일 방송3사 메인뉴스 (왼쪽부터 KBS <뉴스9> MBC <뉴스데스크> SBS <8뉴스>).
이날 집회가 “온 국민의 관심이 대선에만 쏠린 나머지 서민 문제가 외면당하고 있다는 위기감이 반영돼” 있다는 점을 ‘인지’했다면 이를 쟁점화 시켜 의제화 하는 것은 언론의 ‘영역’이다. 하지만 방송뉴스는 이날 주요 대선주자들의 동향을 단순 전달하는데 ‘공’을 들이면서도 이날 집회에 대한 대선주자들의 입장 등을 이끌어 내서 이를 쟁점화시키는 데에는 무관심했다.

주요대선 주자들의 동향과 이날 집회를 별도로 분리해서 개별 리포트로 처리함으로써 빚어진 현상이다. 그런데 좀 웃긴다. 앞서도 언급했지만 방송사들은 이날 집회의 성격을 분명히 파악했기 때문이다. 다시 한번 언급하면 이렇다.

“오늘 전국 곳곳에서 노동자 농민들의 시위가 벌어졌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동안 대통령 선거에만 집중한 나머지 노동자와 농민들,그리고 우리 주변 소외된 이들의 목소리를 듣는 데는 소홀했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11월11일 MBC <뉴스데스크> 김주하 앵커 클로징 멘트)

“해마다 이어져온 행사기는 하지만 올해는 특히 온 국민의 관심이 대선에만 쏠린 나머지 서민 문제가 외면당하고 있다는 위기감이 반영돼 있습니다.” (같은 날 SBS <8뉴스> ‘비정규직 해결하라’ 리포트 가운데 일부)

주요 대선 주자 동향은 동향대로 전달하고, 이날 집회에서 나온 요구는 그것대로 전달하면 된다는 식이다. 종합적으로 엮어서 이를 의제화 시키는 데에 별 관심이 없는 것 같다. ‘에라이 한심한 방송뉴스야 …’ 하면서 핀잔 한번 주고 모른척 지나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은데 그럴 수가 없다.

이들의 이 같은 보도행태가 온 국민의 관심을 대선에만 쏠리게 만드는 ‘원동력’이고 서민 문제가 외면당하도록 만드는 ‘원천’이기 때문이다. 그 ‘원동력’과 ‘원천’이 언급한 “온 국민의 관심이 대선에만 쏠린 나머지 서민 문제가 외면당하고 있다는 위기감이 반영돼 있다”가 “온 언론의 관심이 대선에만 쏠린 나머지 서민 문제가 외면당하고 있다는 위기감이 반영돼 있다”로 수정돼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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