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의 목탁’은 언론에 관한 가장 고전적인 레토릭이다. 사회에 경각심을 주기 위해서는 늘 한발 앞서 문제의식을 가져야 한다는 충분조건과 언론 자신이 문제의 원인이어서는 안 된다는 필요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현실은 어떤가. 언론의 문제의식은 대체로 사후약방문이다. 문제가 곪고 곪아야 목탁을 울린다. 그런가 하면 언론 자체가 사회적 문제이기 일쑤다. 신문시장은 이 나라 불공정거래의 온상이다.

▲ 서울 종로구 세종로 동아일보 사옥. ⓒ미디어스
동아일보의 젊은 사주와 간부들이 불법 주식거래 혐의를 받고 있다. 특정 기업의 내부정보를 이용해 수십억원의 시세 차익을 얻었다는 의혹이 물증으로도 뒷받침되고 있는 모양이다. 불법 주식거래에 대해 목탁을 두드려야 할 언론이 정작 불법을 저질렀다. 당사자야 그렇다 치고, 다른 언론들은 뒤늦게라도 목탁을 두드려야 할 텐데, 일부 언론은 아예 침묵하거나 들릴 듯 말 듯한 소리를 내고 있다. 지독한 동업자 정신이다.

일부 언론의 행태는 되풀이된다. 올해만 해도 ‘장자연 리스트’ 사건이 그랬다. 한 언론사의 특정 임원이 리스트에 거명됐으나, 일부 언론은 이 대목만 쏙 빼놓고 대서특필했다.

몇 해 전 안기부 엑스파일 사건 때도 그랬다. 중앙일보 사주가 정치권과 검찰에 떡값을 배달하려는 계획이 담긴 녹취록이 폭로됐으나, 이 신문은 “불법 녹취”라는 주장만 되풀이했다. 이 신문은 1960년대 모기업에서 사카린을 밀수하다 들통이 났을 때도 한 줄도 보도하지 않았다.

예불시간 다 지나고서 울린 목탁 소리가 그나마 깨져 있다면 목탁을 울리지 않는 것만 못하다. 적어도 그 소리는 다른 모든 소리에 견줘 상대화되어야 한다. 때늦은 소리와 깨진 소리는 다른 수많은 소리와 비교될 때 식별할 수 있다. 여론의 다양성은 그래서 중요하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이들의 소리가 가장 우뚝하고, 더구나 이들의 소리는 대개 카르텔로 묶인 하나의 소리여서 다른 소리들을 모두 덮고도 남는다.

이들은 한목소리로 신문의 방송 소유를 주장해왔다. 이를 위해 거짓 통계도 들이대고 모순된 논리도 갖다 붙였다. 그중 하나가 여론의 다양성을 위해 신문이 방송을 소유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현재 지상파 3사의 방송시장과 여론의 점유율이 너무 높기 때문이라는데, 그건 우리나라가 기본적으로 공영방송 체제라는 걸 외면하고 사영방송시장 논리를 적용한 결과다. 정부가 권력을 독점하고 있으니 한 국가 안에 여러 정부가 들어서야 한다는 논리와 같다. 이런 해괴한 논리는 ‘사회의 목탁’이라는 레토릭이 이들에겐 소수 언론을 위한 소수 언론에 의한 소수 언론의 이데올로기일 뿐이라는 역설적 반증이다. 자신의 허물을 먼저 폭로할 수 없다면 그런 말은 처음부터 입에도 담지 말아야 한다.

※ 이 글은 <한국방송대학보> 제1548호(2009-07-20)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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