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의 3차 대국민담화로 정치권 전체가 흔들린다. 새누리당 내 비박계는 ‘4월 퇴진’을 고리로 탄핵 전선에서 뒷걸음질 치는 기류가 역력하고, 국민의당 역시 이에 끌려가고 있다. 이런 혼란 속에서 더불어민주당도 스텝이 엉키는 모습을 보이면서 ‘탄핵전선’은 그야말로 엉망진창의 지경에 이르고 있다.

1일 인터넷 여론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 것은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대표가 1월 말을 대통령의 퇴진 시한으로 제시했다는 소식이다. 이는 추미애 대표와 탄핵 추진 문제에 대한 담판을 짓겠다고 나선 김무성 새누리당 전 대표의 설명이다.

추미애 대표는 자신이 이 자리에서 탄핵을 강행해야 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으며 ‘법적으로’ 대통령이 1월 말에 퇴진토록 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 거라고 해명했다. 더불어민주당은 공식적으로 추미애 대표의 이 발언이 국회에서 탄핵안이 가결될 경우 대통령이 1월 말에 퇴진하게 된다는 뜻이었다고 해명했다.

비박계, 탄핵 전선에서 이탈

그러나 추미애 대표가 언급한 ‘1월 말’이라는 단어는 여당 인사들에 의해 아전인수식으로 해석돼 또다른 효과로 이어지고 있다. 그간 협상을 거부하던 야당이 ‘1월 말’이라는 구체적인 안을 제시함으로써 탄핵이 아닌 국회 내에서의 대통령 퇴진에 대한 협상 국면이 열렸다는 식이다. 새누리당은 이날 의원총회를 열어 ‘박근혜 대통령의 4월 퇴진, 6월 조기 대선’을 당론으로 채택했다. 친박과 비박이 이후 일정에 대한 합의를 이룬 것이다.

물론 아직 친박계와 비박계 사이에 균열이 남아있는 건 사실이다. 비박계 인사들이 중심이 된 비상시국회의는 박근혜 대통령이 4월에 스스로 퇴진하겠다는 의사를 밝히면 탄핵을 철회할 수 있다는 주장을 반복하고 있다. 친박계는 박근혜 대통령이 3차 대국민담화를 통해 퇴진 방법과 일정을 제시해주기를 요청한 만큼 국회가 협의를 통해 방법을 만들어 내야 한다는 주장을 유지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스스로 물러나겠다는 입장을 밝히지 않는 한 국회가 대통령의 퇴진 방법으로서 고려할 수 있는 것은 탄핵과 개헌 밖에 없다. 친박계는 어쨌든지 간에 탄핵을 이 선택지에서 제외하자는 것이기 때문에 결국 남는 실효적인 방법은 현직 대통령에 한해 임기를 단축하는 원포인트 개헌 뿐이다. 그런데 이 안에 대해서 비박계는 반대라는 입장을 명확히 하고 있다. 탄핵과 개헌을 연계시키는 것은 일종의 논점이탈이 된다는 의미다.

‘원포인트 개헌’이냐, ‘원샷 개헌’이냐

그러나 비박계가 여전히 개헌을 통한 정계개편이라는 카드를 놓을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도 간과할 수 없는 대목이다. 국회 법사위원장을 맡고 있는 새누리당 권성동 의원은 이날 MBC라디오 <신동호의 시선집중>과 전화연결에서 “임기단축만을 위한 개헌은 국민들한테 죄를 짓는 것”이라면서 “비용이 어마어마하게 드는데, 실질적인 내용을 바꿔야지 임기단축 하나만 갖고 개헌할 수 있겠는가”라고 발언했다. 사실상 권력구조 개편과 대통령 임기 단축을 한 번에 처리하는 ‘원샷’ 개헌을 주장하는 셈이다.

새누리당 김무성 전 대표(오른쪽)와 유승민 의원이 1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비상시국위원회 대표자-실무자 연석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친박계로 분류되는 새누리당 박맹우 사무총장 역시 이날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와의 전화연결에서 “임기를 단축시키고 가능하면 권력구조까지도 중요한 부분을 개헌해서까지 하면 참 좋겠다(고 생각한다)”면서 “개헌과 상관없이 어느 일정을 정하고 공감대를 협의를 하고 대통령이 사임을 하고 그때부터 한 두 달 내에 대선을 하는 이런 모양이 되어도 좋다”고 발언했다. 즉, 대통령에게 4월 퇴진을 결단하도록 요청하되 임기 단축을 포함한 권력구조 개편의 ‘원샷’ 개헌을 시도하는 ‘투트랙’ 전략에 새누리당의 친박계와 비박계과 공감대를 이루는 수순인 셈이다.

물론 청와대는 여전히 대통령 스스로 퇴진 일정을 결정하는 것에 동의하지 않고 있다. 만일 청와대의 이런 입장이 실질적인 탄핵의 마지노선으로 평가되는 9일 직전까지 유지되면 비박계는 또 다른 선택의 갈림길에 서게 된다. 친박계와 공감대를 이룬 상태인 대통령 임기단축 및 권력구조 개편을 포함한 ‘원샷’ 개헌을 추진하거나 탄핵을 강행하거나의 양자택일이다. 이는 순전히 그 당시의 국민여론과 이것이 만들어 낸 정치적 조건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여전히 유효한 개헌 통한 제3지대 정계개편

‘개헌’은 여당 뿐 아니라 야권을 흔들어 놓을 정치적 폭탄으로 여전히 잠재적 위력을 갖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스스로 4월 퇴진을 선택하는 경우 국정 운영을 대행할 국무총리를 추천하는 국면으로 넘어갈 수 있는데, 여기서 ‘개헌론자’를 선택할 것인지를 두고 야권 내 세력들이 격돌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국민의당은 개헌을 통한 정계개편으로 제3당의 지위를 벗어나려는 정치적 모험을 선택할 수 있고, 더불어민주당의 경우는 문재인 전 대표의 대권주자로서의 지위를 인정하고 싶지 않아하는 이른바 ‘비문’ 세력이 일종의 탈출구로서 개헌 정국을 활용할 수 있다. 실제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전 비대위 대표는 ‘비패권지대’ 등의 구호를 내세우며 ‘개헌파’ 인사들을 하나로 모으는 작업에 진력하고 있다는 보도다.

1월 귀국을 앞두고 국내 여론의 본격적인 탐색에 나선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존재도 무시하지 못한다. 최근 국내 언론은 반기문 총장의 최측근인 김원수 유엔 사무차장이 지난달 15~20일 국내에 머물며 국내 동향을 탐지했다고 보도하고 있다. 또 조선일보는 1일 보도에서 국민의당 정대철 상임고문 발언을 인용해 “반기문 총장이 귀국해 대선에 출마하더라도 친박이나 새누리당으로 가지는 않을 것”이라는 주장이 나온다고 보도했다.

또, 중앙일보는 이날 김원수 사무차장이 지난달 19일 새누리당 정진석 원내대표를 만나 “반 총장은 귀국하면 김대중, 김영삼, 노무현 전 대통령의 부인을 예방해 지난 10년 동안 유엔 사무총장으로서의 업무에 대해 말씀드릴 것으로 안다”고 발언했다고 보도했다. 이는 의례적인 것으로 볼 수도 있으나 민주화 이후 국가 원수들과의 접점을 형성하기 위한 시도라는 점에서 또 다른 ‘정치적 신호’로도 읽을 수 있다.

‘촛불시위’ 통해 드러나는 여론이 중요하다

반기문 사무총장을 범보수 인사로 분류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이런 흐름들을 종합해보면 결국 새누리당 내 상당수 인사들이 참여하는 개헌을 고리로 한 제3지대 정계개편이 상당한 힘을 갖고 추진될 가능성이 높다. 문제는 이 정계개편이 박근혜 대통령을 중심으로 한 친박세력과 얼마나 무관한 것으로 보일 수 있느냐 이다. 반기문 사무총장 측이 굳이 김대중, 김영삼, 노무현 전 대통령을 언급하고 있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이는 두 가지 방식을 통해 가능한데 하나는 실제로 제3지대라는 노아의 방주(?)에 대표적 친박계 인사들이 오르지 못하도록 막는 것이다. 또 다른 하나는 새누리당을 비박계가 접수하고 시범케이스(?)로 대표적 친박계 인사 몇 명을 정치권에서 사실상 내쫓는 것이다. 탄핵을 포기하고 비상시국회의를 해산하면 지도부 사퇴를 할 수 있다는 친박계의 입장은 비박계를 이 시나리오로 유도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이게 현실이 되면 결국 포장지만 바꾼 보수세력의 재집권이 이뤄지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모든 시나리오가 무위가 되고 9일 탄핵이 강행되는 수가 남아있기는 하다. 국민의 여론이 즉각적인 탄핵을 원한다는 점이 실제로 확인이 되는 경우다. 이날 김무성 전 대표는 ‘광장의 시민이 탄핵을 바란다’는 지적에 대해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다. 즉, 비박계의 탄핵 찬성 표결은 광장의 시민이 ‘탄핵을 바란다’는 것을 보여줄 때만 가능하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주말의 촛불 집회는 여전히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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