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대선’이 현실화되는 것일까. 박근혜 대통령의 3차 대국민담화로 정치권의 움직임이 분주해지고 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새누리당 내 비박계와 탈당파 및 야3당으로 이뤄진 ‘탄핵연대’는 서서히 균열을 노출하는 중이다.

30일 열린 새누리당 의원총회에서 새누리당 정진석 원내대표는 “지난 주말 국가 원로들이 대통령의 내년 4월 사퇴, 6월 대선이라는 일정을 제시한 바 있다”, “대통령 사임 시기에 대한 논의에서 충분한 준거가 될 수 있다”는 등의 발언을 쏟아냈다. 정진석 원내대표는 “국회가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의결하면 여야는 국민에게 정리된 정치일정을 제시하지 못한 채 헌법재판소만 바라보게 될 것”이라며 “국정혼란이 가중될 수밖에 없다”고도 주장했다. 대통령과 친박계가 주장하는 ‘탄핵 대신 질서있는 퇴진’이라는 로드맵을 재론한 것이다.

4월 퇴진-6월 대선으로 정리해가는 새누리당

물론 지난 주말 국가 원로들이 박근혜 대통령의 4월 이전 사퇴를 주장한 게 정진석 원내대표가 주장하는 정치 일정을 염두에 둔 것이었는지는 확신할 수 없다. 당일 원로들의 모임에 참석했던 국민의당 정대철 상임고문은 이날 YTN라디오 <신율의 출발 새아침>과 전화 연결에서 자신들이 요구한 대통령의 퇴진 시점에 대해 “4월 이전이라고 했다. 그게 2월이 될지, 3월이 될지, 그래서 4월 이전이라고 하는 것은 60일 내에 대통령 선거가 이루어져서, 따뜻한 봄날에 선거를 하면 선거도 많이 더 참여할 수 있고, 투표 참여율이 높아진다는 것을 전제로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어쨌든 이들이 ‘4월’을 언급하면서 6월에 대선을 치르는 방안이 여권에서 다수안의 지위를 얻고 있는 것은 확실한 것 같다. 비박계 모임인 비상시국회의는 이날 회의를 통해 대통령 퇴진 관련 협상을 진행해보고 협상이 결렬될 경우 다음달 9일 탄핵 절차에 돌입하겠다는 입장을 재확인했다.

다음달 9일 탄핵 추진 일정은 전부터 이들이 주장한 바이기 때문에 특별히 볼 것은 아니다. 문제는 이들이 언급하는 ‘협상’의 내용이다. 이에 대해 이 모임의 대변인격인 새누리당 황영철 의원은 “최근 여야를 넘어 대한민국 원로들이 모여 말했듯 퇴진 시점은 4월 말이 가장 적절할 것으로 판단된다”고 설명했다.

6월 대선 일정에 정치권이 이심전심 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이유는 자치단체장들의 대선 출마 준비에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어떤 형식으로든 퇴진하게 되면 대선에 출마할 자치단체장들은 선거일 30일 이전에 사퇴해야 한다. 문제는 자치단체장의 지위를 갖고 있는 상태에선 당내 경선 준비 등 제대로 된 대선 출마 준비가 어렵다는 것이다.

6월 대선 현실화 될 가능성 커져

대선에 나가겠다는 이유로 자치단체장직을 가볍게 던져 버리는 것에 대한 정치적 부담도 있다. 나름의 ‘정치적 맥락’을 형성해야 하는데 여기에는 당연히 시간이 필요하다. 최근 박원순 서울시장이 국무회의 발언권을 적극적으로 행사한 것이나 이재명 성남시장이 탄핵 정국과 관련한 발언 수위를 꾸준히 높여가는 것은 이런 맥락에서 파악할 수 있다.

보수세력의 입장에서 보면 현재 여권의 후보가 준비되어 있지 않다는 점이 문제다. 김무성 새누리당 전 대표는 이미 대선불출마를 선언했고 대구를 지역기반으로 하는 유승민 의원은 새누리당이 사실상 정치적 파산 선고를 받은 상태에서 운신이 쉽지 않다. 결국 기대해볼 것은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연합뉴스)

일부 언론은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1월 중순 쯤 귀국한다는 애초의 계획을 1월 1일로 변경했다고 보도했다. 이에 대해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측은 1월 중순 귀국 계획에 변함이 없다고 해명하고 있다. 그러나 어쨌든 이후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행보에 관심이 쏠리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입장에서 대선 일정은 늦어질수록 좋다. 내년 1월이 되기 전까지는 국내에서 대선을 치를 수 있는 어떤 준비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야권의 시각으로 보면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등장은 두 가지 효과를 야기한다는 점에서 염려스럽다. 첫째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대안이 없는 보수세력의 ‘구세주’가 될 수 있다는 점이고 둘째는 그의 이후 행보에 여당 일부가 함께하는 정계개편이 현실화될 수 있다는 점이다. 후자의 경우는 야권 일부가 이에 합류할 가능성도 점쳐진다. 그러나 ‘반기문 대통령’의 탄생은 결국 ‘보수재집권’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는 데에서 결론이 크게 바뀌는 것은 아니다.

보수세력에 책임 물을 방법은 중단 없는 탄핵 뿐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쪽으로 정국의 흐름이 옮겨가는 것을 가장 경계하는 것은 야권 1위를 달리고 있는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인 것 같다. 얼마 전 JTBC <뉴스룸>과의 인터뷰에서 문재인 전 대표의 답변이 논란을 야기한 것은 바로 이 딜레마를 보여준다. 이날 문재인 전 대표는 ‘조건 없는 퇴진’을 요구하는 것은 결국 조기 대선을 염두에 둔 요구가 아니냐는 취지의 질문에 “헌법에 정해진 대로 해야 하지만 국민들의 우려가 많을 경우엔 그렇게 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애매한 답변을 내놓은 바 있다.

문재인 전 대표의 발언은 얼핏 보기에 모순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자세히 뜯어보면 이는 모순이라기보다는 ‘부자 몸조심’이다. 문재인 전 대표의 입장에서는 당시 국가 원로들이 제안한 4월 퇴진론을 일축할 수도 없고 지지할 수도 없다. 전자의 경우는 중도층, 후자의 경우는 탄핵 적극 지지층에 비판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조기 대선을 치를 경우 자신이 제일 유리하다는 걸 누구나 아는 상황에서 스스로 이를 기정사실화할 수도 없다. ‘의도가 있다’는 식의 논란에 휩싸일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문재인 전 대표 입장에선 ‘조건 없는 퇴진’을 요구하면서도 ‘조건이 없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 또 ‘퇴진’이란 과연 어떤 것인지를 다시 한 번 협의해볼 수 있다는 식의, 뒷문을 반쯤 열어놓는 어정쩡한 상태를 유지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마음 속으로는 조기 대선을 바라지만 이를 문재인 전 대표 스스로가 강제할 수단은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문재인 전 대표가 휘말린 이 논란이 현재 야권이 처한 딜레마를 잘 보여준다. 그러나 어떤 경우든 6월 대선 일정을 거부할 수 없는 국면으로 간다면 ‘부자 몸조심’ 보다는 ‘진검 승부’를 택하는 게 오히려 나을 수 있다. 지금 국면에서 ‘진검 승부’의 내용은 중단 없는 탄핵 추진이다. 만일 국회에서 탄핵소추안이 부결된다면 이는 어찌됐건 보수 세력의 책임이 될 것이다. 국회의 탄핵 실패는 박근혜 정권을 탄생시킨 자들이 ‘반기문’이라는 노아의 방주(?)에 올라 정치적 생명연장을 시도한 결과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국민의당 박지원 비상대책위원장 겸 원내대표(왼쪽부터),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대표, 정의당 심상정 상임대표가 30일 국회에서 야3당 대표 회동을 하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렇게 보면 자연스럽게 결론이 나온다. 야당들은 원내에서, 시민들은 광장에서 흔들리는 비박계를 압박할 필요성이 있다는 것이다. 돌아오는 주말의 광장이 또 중요해진 것은 이런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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