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이 사실상 분당의 길로 가게 될 걸로 보인다. 25일 새누리당은 박근혜 대통령 탄핵 소추안 협의와 비상대책위원회 구성 등을 논의하기 위해 의원총회를 열었으나 친박계 대다수가 참석하지 않는 반쪽 상태에서 뚜렷한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

가장 문제적인 장면은 새누리당 정진석 원내대표가 탄핵 소추 관련 일정 등의 협의를 자신에게 일임해달라고 요구한 바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 자리에서 정진석 원내대표는 “야당의 주장대로 허겁지겁 12월 2일, 9일 대통령 탄핵안 처리는 답안지로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발언했다. 이에 대해 비박계로 분류되는 나경원 의원은 “12월 2일 탄핵안 처리를 무조건 반대한다는 취지로 모든 권한을 위임하는 것에 반대한다”고 발언했고 다수의 비박계 의원들은 이에 동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진석 원내대표의 주장은 사실상 ‘탄핵안 처리 연기’로 받아들여질 여지가 있다. 정진석 원내대표가 이 자리에서 주장한 것은 헌법재판소가 탄핵심판을 조기에 마치는 경우 각 당의 대선후보 선출 절차가 미비한 상태에서 혼란이 벌어질 수 있고, 탄핵심판 과정이 길어지는 경우엔 박근혜 대통령이 황교안 국무총리 대행 체재로 사실상 임기를 채울 수 있다는 것이다.

정진석 원내대표는 이렇게 주장하면서 헌법재판소법 제51조 ‘피청구인에 대한 탄핵심판청구와 동일한 사유로 형사소송이 진행되고 있는 때에는 재판부가 심판절차를 정지할 수 있다’는 대목을 인용했다. 이 조항에 의하면 헌법재판소가 최순실 씨 등 기소된 이들의 1심 선고가 나올 때까지 탄핵심판을 정지할 수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정진석 원내대표는 “노무현 대통령 탄핵 때는 사실 관계의 다툼이 없어 2달 만에 끝났지만, 이번에는 많은 사실 관계를 두고 다툴 수가 있어 헌재가 증거 조사를 하거나 최소한 6개월 정도 걸리는 1심 결과를 기다려야 한다”며 이와 같이 주장했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에 대해선 야당의 주요 인사들이 한결같이 부정적 해석을 내놓고 있다. 국민의당 박지원 비대위원장은 해당 조항에 대해 “대통령의 내란외환죄가 적용될 경우 만든 규정”이라면서 “박 대통령이 현직을 유지하는 상황에선 탄핵과 동일한 사유로 재판받을 가능성이 없고, 대통령직을 사퇴하고 형사재판을 받는다면 더는 탄핵절차를 진행할 이유가 없다. 그래서 어떤 경우에도 헌재법 제51조가 적용될 일은 없다”고 주장했다. 더불어민주당 금태섭 대변인도 언론을 통해 박근혜 대통령이 기소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 조항이 적용될 가능성은 없고,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기소됐을 경우에도 심판을 정지 ‘할 수 있다’로 규정돼있으므로 큰 문제가 안 될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이와 같은 반론이 존재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결국 정진석 원내대표가 경계하는 것은 탄핵안 가결 및 탄핵심판 인용 결정 이후 조기대선 국면인 것으로 해석된다. 조기대선 국면이 문제가 되는 것은 이미 대략의 주요 대권주자 윤곽이 나와있는 야권과 달리 여당의 경우 뚜렷한 대안이 없는 상황이기 때문으로 보인다.

새누리당 정진석 원내대표가 25일 오후 국회 예결위회의장 앞에서 의원총회를 마치고 나오다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여당이 생각하는 거의 유일한 대안은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다. 최근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임기를 마친 후 계획을 묻는 CNN 등의 질문에 애매한 답변을 내놔 대선 출마 가능성을 여전히 열어두고 있는 상태다. 정진석 원내대표는 충청권 출신으로 그간 ‘낀박’이란 평가를 받으며 중도적인 행보를 이어왔다. 충청권 출신 대통령의 탄생을 염원하는 지역 민심이 아직도 유효한 상태라는 점을 볼 때 앞으로도 정진석 원내대표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대권주자로서 본 궤도에 오를 때까지 여러 방법을 통해 정치적 지원을 이어갈 걸로 보인다.

그러나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물리적으로 내년 1월 중순이 지나야 국내 정치 활동 재개가 가능하다는 한계를 갖고 있다. 유엔 사무총장 임기가 올 12월 말에야 끝나기 때문이다. 야권이 제시한 시간표대로 헌법재판소가 탄핵심판청구 결론을 조기에 내리는 경우 자칫 잘못하면 국내에 들어오자마자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 대선을 둘러싼 본격적인 경쟁에 노출되는 악조건을 감수하게 되는 것이다.

이번 사건의 파문이 이 정도로 번지기 이전이었다면 준비된(?) 새누리당 내 친박들이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을 무리 없이 대선 후보로 만들어 주었을 가능성이 크지만 지금은 그런 것도 아니다. 오히려 새누리당은 최근의 여론조사에서 국민의당에 밀리며 제3당으로 전락하는 수모를 겪고 있다. 즉,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무리없는 대권 도전을 위해서는 탄핵소추안이 조기에 가결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정진석 원내대표의 발언은 이런 관점으로 해석이 가능하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을 가운데 놓고 본다면 무리 없는 대권도전을 위해 해소돼야 할 일이 한 가지 더 있다. 그것은 새누리당의 분당과 이른바 ‘제3지대’로 요약될 수 있는 정계개편이다. 이런 상태에서는 ‘친박’이 지지한다는 타이틀을 갖고는 그 누구도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될 수 없다. 그런데 더불어민주당이나 국민의당에는 이미 ‘정치적 오너’가 존재한다. 따라서 현실적으로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대권에 도전하는 방법은 비박계 인사들이 참여하는 정치세력을 발판으로 삼는 걸 고려할 수밖에 없다.

정계개편을 위해서는 ‘개헌론’에 계속 불을 붙여야 한다. 정진석 원내대표가 개헌 문제를 자꾸 거론하는 속내를 여기서 찾을 수 있다. 정진석 원내대표는 이날 의원총회에서도 “개헌도 탄핵과 병행해서 추진해야 한다”, “헌법 개정 없이 차기 대선을 치르면 다음 정권에서도 5년 단임의 비극이 재현된다”고 주장했다. 최근 정계개편에 적극적인 인사들이 일관되게 개헌을 언급하고 있다는 것은 자기들끼리의 대략의 공감대가 어느 정도 형성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시도다.

결국 이런 행보는 ‘보수정권 재창출’을 기획하는 것으로 이어지는데, 여기서 볼 수 있는 것은 오로지 박근혜 대통령 및 친박계와의 결별을 통해서만 이게 가능하다는 것이 새누리당 내부에서도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점이다. 정진석 원내대표의 발언을 봐도 그렇고 친박계 인사들을 내쫓는 데 실패하면 자신들이 나갈 수 밖에 없다는 비박계 인사들의 태도를 봐도 마찬가지다. 오로지 시대착오적인 친박계 정치인들만 박근혜 대통령과 정치적 운명을 같이 하겠다는 태도를 보이며 정치를 망치고 있다.

결국 새누리당은 분당이 될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출당 여부가 새누리당 윤리위에서 28일 논의될 전망이지만 이 역시 친박계가 다수인 새누리당 지도부가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효력을 잃게 된다. 이런 상황이 뻔히 보이는데 비상대책위원회를 제대로 구성할 수 있을 리도 만무하다. 박근혜 대통령의 정치 실패가 누구도 뒤집을 수 없을 것 같던 보수정치세력의 뿌리까지 뒤엎어버리는 상황으로 가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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