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권기간 내내 대통령 박근혜에 대한 불만의 핵심은 ‘불통’으로 표현되었다. 집권 초기 박근혜에 대한 가장 통렬한 비판 가운데 하나는 3년 전 이맘때 정희진 씨가 <경향신문>에 실은 칼럼이었다고 나는 기억한다. “대통령은 말을 하라." 제대로 하라는 것도 아니고, 법대로 하라는 것도 아니고, 딴소리 하지 말라는 것도 아니고, 국민의 세금으로 잠자는 공주를 뽑은 게 아니니 제발 말을 하라는 얘기라니. 지금은 더 이상 그에게 말을 요구하는 사람조차 없다. 그때도 지금도 그가 입을 열 때면 부끄러움은 온전히 우리의 몫으로 남곤 했다.

말과 정치의 관계가 그러하듯, 말과 운동도 뗄 수 없는 관계다. '대통령은 말을 하라'라는 말을 인권교육운동에 대입해 본다. 1990년대 중반 인권운동의 구석진 자리에서 출발한 인권교육운동이 2008년 ‘인권교육센터 들’의 창립으로 본격화한 이후, 인권교육운동에도 많은 변화가 찾아왔다. 인권교육을 단체 이름 전면에 내세운 단체들도 여럿 생겼고, 인권교육이란 이름으로 이루어지는 교육들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 그런데 알기가 힘들다. 다들 어떻게 하고 있는지 거의 기록되지 않는다. 인권교육은 조용하다. 어떤 고민을 안은 채 좌충우돌 가고 있는지, 가야 하는지 말을 거는 이들이 별로 없다. 기록되지 않고 말하지 않는 운동이란 도대체 어떤 것일까.

지난 11월 지역의 한 도서관에서 있었던 인권교육 현장. 이날 무슨 이야기가 오고갔는지는 나와 참여자의 기억에만 남겨져 있다(사진 출처=인권오름]

말하지 않는 인권교육

교육 활동이라는 특성과 인권교육이 처한 조건을 헤아려보면 인권교육운동은 사유화(私有化)의 위험을 언제나 안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교육 현장은 외부에 쉽게 공개되지 않는다. 장기적 기획 아래 여럿이 함께 수행하는 교육보다는 일회성 교육이 인권교육의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기록되지 않는 한, 교육현장의 기억은 오롯이 수업을 맡은 개인에게만 남겨진다. 큰 울림과 반향을 나은 교육은 후일담이나 개인 기록물을 통해 전해지곤 하지만, 그 역시 공적 기록은 아니다. 실패했거나 미심쩍음이 남은 교육에 대한 고백이나 고민은 더더욱 침묵의 영역에 남겨지기 쉽다. 활동을 하느라, 다음 교육을 준비하느라, 일상을 살아내느라 다들 바쁘다. 기록을 남길 틈이 없다. 경험을 통해 개별의 몸에 축적된 역량들은 온전히 개인의 것이지, 운동 전체의 역량으로 이어지기 힘들다. 그 사람의 부재는 곧 기억과 역량의 단절을 의미한다.

다른 단체들은 어떻게 하고 있나, 국가인권위원회와 같은 기구들은 대체 어떻게 인권교육을 하고 있나 살펴보고 싶어도 난망하기 이를 데 없다. 남아있는 기록은 공개된 홍보물, 사전에 제작된 자료집, 몇 회기에 몇 명이 참여했다는 정도의 보고가 대부분이다. 자료집은 실제 이루어진 교육과 괴리가 있다. 나도 교육을 앞두고 원고 독촉을 받으면 몇 년 전 작성해둔 원고를 보내놓고 막상 당일에는 다른 자료로 교육을 진행하는 경우가 많다. 인권교육은 일방향의 수직적 교육을 지양한다. 어떤 프로그램으로 참여자에게 말을 걸었고, 어떤 대화가 오갔는지, 어떤 일들이 일어났는지가 중요한데 정작 그 사후 기록은 찾아보기 힘들다. 남겨진 사진들은 대개 "우리 교육 참 좋아요. 참 잘 됐어요. 꼭 필요해요"라고만 말하는 것 같다. 사유화된 기억은 조작되기 쉽다. 그런 의미에서 인권교육운동은 역사를 지운 채, 혹은 역사를 만들지 못한 채 흘러가고 있다.

이대로라면 운동으로 출발한 인권교육에서 교육은 남고 운동은 사라질 위험이 크다. 인권 신장과 사회변화에 기여한다는 사명감과 자부심으로 교육활동을 수행하는 개인 교육가는 남을지언정, 전체로서의 인권교육운동은 흩어질 위험도 크다. 이런 관행이 제도화의 흐름과 만나 가속도가 붙으면, 인권교육보다 먼저 제도화된 어느 교육처럼 교육 자료를 영업비밀인 양 꽁꽁 숨겨둔 채 서로 경계하고, 공적 담론의 장이라곤 예산을 더 받아내기 위해, 성과를 치장하는 자리 정도에 그치는 날도 그리 멀지 않을 것 같다.

지난 5월 <빅이슈> 판매원들과 만난 인권교육 현장(사진 출처=인권오름)

전령사로서의 인권교육

무엇보다 인권교육가에게는 교육에서 만난 참여자들이 꺼내놓은 이야기들을 사회에 전해야 할 전령사로서의 책임이 있다. 인권교육 현장에서 오간 이야기는 비밀을 전제로 한 고백의 경우를 제외하곤 말한 자와 들은 자 사이의 사적인 대화가 아니다. 인권교육가는 들었으므로 전해야 한다. 말이든, 글이든, 교육이든, 토론이든, 정책기획이든, 후속 대응이든, 다른 어떤 형태로든. 당장이든 나중이든 기록은 전령사로서 인권교육가가 짊어져야 할 몫이다. 알찬 교육을 준비하고 인권교육의 방향을 제시하고 제도화 흐름에 대응하는 것만큼이나 교육 현장의 기록을 남기는 일에 시간과 에너지를 할애해야 할 이유다.

인권교육 10년의 기록, '인권교육, 날다'

"인권교육은 말을 하라." 나와 동료들이 바쁜 활동을 이어가면서도 현장기록이 담긴 교육후기를 남기고 후속자료집을 만드는 데 공을 들여온 것도 이 때문이다. <인권오름> 창간과 더불어 개설됐고 10년이 넘는 오늘까지 유지되어 온 [인권교육, 날다] 꼭지는 인권교육운동이 걸어온 발걸음과 고민의 흔적을 (비록 일부지만) 고스란히 담은 기록물이다. 이 꼭지를 통해 우리는 막막한 벌판에서 처음 발걸음을 떼는 인권교육가들에게 앞선 실험들을 소개할 수 있었고, 어떤 질문과 프로그램을 통해 참여자들의 인권감수성을 길어 올렸는지 지혜를 전할 수 있었고, 또 우리가 부딪힌 장벽들을 고백할 수 있었다. 물론 4주에 한번 글쓰기를 이어가는 부담이 만만치 않았다. 고단했지만 그 기록하는 시간들이 인권교육활동가로서 우리를 단련하고, 인권교육을 '말하는 운동'으로 만들고, 인권교육운동의 역사를 남기게 해주었다.

그 10년의 시간을 함께 한 <인권오름>이 내달 문을 닫는다고 한다. <인권오름>의 초대 편집인이기도 했던 나에게는 복잡한 심경을 불러일으키는 소식이다. <인권하루소식>에 이어 변화된 시대에 새로운 사명을 띠고 출발했던 시간들을 향한 그리움, 매주 매체를 발간하느라 수고해준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들에 대한 고마움, 매체에 대한 고민을 떠넘겨둔 채 고정 꼭지 기사만 채우느라 급급했던 미안함, 인권매체가 사라진다는 아쉬움, 원고 압박에서 잠시 벗어날 수 있겠다는 안도감까지. 대문을 닫는다는데 방을 안 뺄 재간이 없다. [인권교육, 날다]도 오늘 마지막 말을 담았다. 새로운 공간에서 인권교육운동은 다시 기록될 것이다. 때로는 부담스러워 뻥 차고 싶었지만, 덕분에 소중한 기록을 남길 수 있었던 너. [인권교육, 날다]야,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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