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무성 새누리당 전 대표가 대선불출마를 선언하면서 정국이 다시 한 번 요동치고 있다. 김무성 전 대표는 지금의 사태에 책임을 통감한다며 탄핵 발의에 앞장서겠다고도 했다. 김무성 전 대표가 이러한 선택에 실린 정치적 의미가 무엇인지를 두고 여러 해석이 쏟아지고 있다.

먼저 이러한 선택을 한 배경을 짚어보기 위해 김무성 전 대표가 내놓은 입장문을 정확히 분석해볼 필요가 있다. 김무성 전 대표는 “박근혜 대통령으로 인해 초래된 보수의 위기가 보수의 몰락으로 이어지는 것을 방치할 수는 없다”, “보수의 썩은 환부를 도려내고 합리적인 보수, 재탄생의 밀알이 되고자 한다”, “양 극단의 정치를 배제하고, 민주적 협치를 만드는 데 앞장서고자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 현 사태의 원인 중 하나를 5년 단임의 제왕적 대통령제로 규정해 권력구조 개편을 포함하는 개헌을 추진하겠다는 의사 또한 밝히고 있다. 결국 탄핵 발의를 개헌을 고리로 한 정계개편 시동의 계기로 삼겠다는 얘기로 볼 수 있다.

이에 앞서 22일 언론은 김무성 전 대표와 정진석 원내대표, 최경환 의원이 최근 연쇄 회동을 해 당 수습 방안을 논의하면서 비대위 구성 등에 일부 합의했다는 보도를 내놓기도 했다. 남경필 경기도지사와 김용태 의원의 탈당으로 분당 위기를 눈앞에 둔 상황에서 당 주류인 친박계와 비주류가 이를 봉합하기 위한 정치협상을 진행했다는 것이다. 실제 다음 달 사퇴론을 강하게 주장하는 이정현 대표도 “제로 그라운드에서 이 문제를 다시 논의해보자고 제안할 용의가 있다”는 입장을 내놓은 바 있다.

이에 대해 동아일보는 23일 친박계와 비박계가 골고루 섞여있는 중진 6인의 회동에서 비대위 구성을 위한 실질적인 논의를 시작한 상태라며 비대위원장 후보로 박관용 김형오 강창희 전 국회의장, 김황식 전 국무총리, 더불어민주당을 탈당한 손학규 전 대표, 조순형 전 의원, 인명진 목사, 이영작 전 한양대 석좌교수 등 8명이 거론됐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새누리당 김무성 전 대표가 23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대선 불출마를 선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제는 그렇잖아도 남경필 도지사와 김용태 의원이 탈당을 선언한 상태에서 이 사실이 비박계의 단일대오를 무너뜨릴 수 있는 소재가 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 23일 비박계 의원들의 논의기구인 비상시국회의 자리는 고성이 오가는 등 험악한 분위기가 연출된 것으로 전해진다. 비박계 내의 최대그룹을 형성하고 있는 김무성 전 대표가 친박계와 사태 수습을 위한 일정한 정치적 합의에 도달할 경우 결국 현재의 내분사태가 당권을 둘러싼 대결구도로 해석될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이다.

김무성 전 대표의 대선 불출마 선언은 이런 상황에서 비박계의 불만을 잠재우고 자기 주도권을 되찾으려는 의도가 실려 있는 걸로 보인다. 김무성 전 대표가 사태의 ‘봉합’을 선택하는 경우 현재 대다수가 당 잔류 입장을 유지하고 있는 비박계 의원들은 둘로 쪼개졌을 가능성이 크다. 당 수습을 위해 친박계와 모종의 합의를 이루는 것은 어쩔 수 없다는 쪽과 김무성 전 대표를 믿을 수 없다는 쪽으로 양분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후자에 속하는 인사의 경우 남경필 도지사와 김용태 의원의 뒤를 따라 당을 나가는 수밖에 남지 않게 된다. 새누리당에 가해지는 원심력은 더 커지고 이후 상황은 당 외의 인사들이 주도하게 되는 것이다.

결국 김무성 전 대표의 선택은 당분간 비박계 인사들이 당 내의 단일대오를 유지하면서 탄핵안 발의까지 공동행보를 이어가는 효과를 거둘 걸로 보인다. 차라리 김무성 전 대표가 탈당을 선택해 조기에 새누리당을 분당 시키는 시나리오를 가동시키지 않는 것에 의아해하는 기류도 있으나, 현역 의원들의 입장에서는 새누리당이 갖고 있는 정치적 조직적 인프라를 쉽게 포기할 수 없는 것도 사실이다.

또 실제 분당을 본격적으로 추진하더라도 한 번에 최대한의 조직이 움직일 수 있어야 파급력이 커진다. 즉, 새누리당 비박계의 관점에서 거사(?)의 1차적 목표는 보수정치 전체에서의 ‘친박계 고사’일 수밖에 없는데, 이 경우 속죄양(?)이 될 ‘친박계’의 범위는 최소화시켜야 한다. 김무성 전 대표가 언급하는 합리적 보수를 ‘노아의 방주’에 비유하자면 최대한 많은 인간과 동식물을 집어넣되 누가 어떻게 봐도 죄를 지은 게 명확한 존재들은 천벌을 받도록 방주 바깥에 방치해 놓는 그림이다.

정진석 원내대표가 페이스북에 남긴 글에서 김무성 전 대표의 ‘결단’에 대해 “보수의 저력을 보여주는 자기희생”이라면서 “보수 혁신의 큰길로 나서야 할 때”라고 반응한 것은 이런 해석을 뒷받침하는 요소다. 정진석 원내대표는 “지금은 새누리당이 아니라 보수 전체가 살아남느냐, 죽느냐의 순간”이라고도 썼는데, 이는 현재 국면을 돌파할 수 있는 로드맵의 내용을 ‘보수혁신’을 내건 정계개편 프로젝트를 경유해 ‘보수재집권’으로 보고 있다는 점을 분명히 보여주는 것이다.

김무성 전 대표의 이러한 행보는 일각에서 꾸준히 제기하고 있는 개헌을 고리로 한 제3지대 정계개편론에 다시 힘을 싣는 결과로 이어질 걸로 보인다. 김무성 전 대표의 이날 입장문에 나타난 “보수의 썩은 환부를 도려내고”, “양 극단의 정치를 배제하고”, “민주적 협치를 만드는 데 앞장서겠다”는 등의 표현은 정의화 전 국회의장이나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전 비대위 대표가 제시한 ‘비패권지대론’을 연상케 하기 때문이다.

이 정계개편 과정에서 개헌이 현실화될 경우 ‘대선 불출마’를 선언한 김무성 전 대표 역시 국가 원수가 될 수 있는 길이 남아있다는 점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최근 제3지대 정계개편을 언급하는 개헌론자들은 일제히 내각제 개헌을 염두에 둔 듯한 발언을 내놓고 있다. 내각제는 보통 다수당의 대표가 수상을 겸하거나 연립정권을 이룬 정당의 구성원들이 수상을 선출하는 절차를 갖추는 형식으로 돼있다.

그간 유력하게 거론됐던 분권형대통령제 등으로 개헌론자들의 총의가 모일 경우에도 여전히 김무성 전 대표의 ‘마지막 꿈’은 현실화될 수 있는 길이 남아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2020년부터 새로운 헌법의 효력을 갖추도록 하고 총선과 대선을 이 시기에 같이 치러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경우 2017년 대선에서 선출되는 대통령은 2020년까지만 임기를 수행하게 된다. 김무성 전 대표로서는 이번에 대선에 불출마하더라도 2020년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는 수를 다시 한 번 노려볼 수 있는 셈이다.

이런 상황이라면 야권으로서는 김무성 전 대표와 함께할 것은 함께하면서도 책임을 물을 것에 대해서는 분명히 묻는 원칙적 입장을 견지할 필요가 있다. 박근혜 정권을 보수세력이 탄생시켰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보수세력은 박근혜 대통령과 최씨 일가의 관계를 알고 있었고, 이 문제가 반드시 ‘국정농단 사건’으로 비화될 가능성을 자기들끼리 걱정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오직 권력의 쟁취를 위해 보수세력은 똘똘 뭉쳐 대통령이 되어서는 안 될 사람을 대통령으로 만들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경우 지금은 ‘헌법적 절차’를 언급하며 탄핵에 동의하는 듯한 발언을 하고 있으나 자신의 재임 중에 ‘보수재집권’을 위해 박근혜 대통령에게 사실상 자리를 넘겨주는 선택을 한 원죄를 갖고 있다. 이 대목에 대한 명확한 평가 없이는 아무리 개헌을 추진한다고 해도 같은 사태가 또 일어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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