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최순실 씨 등에 대한 공소장을 공개하면서 정국은 탄핵 국면으로 넘어가는 모양새다. 더불어민주당은 탄핵 시기와 추진방안을 즉각 검토하고 탄핵추진검토기구를 설치하겠다는 입장이고 국민의당 역시 당론으로 탄핵 추진을 명시한 상황이다.

국회에서 탄핵소추안이 가결되기 위해서는 그간 익히 알려졌듯 새누리당 내 비박계의 협력이 절실한 상황이다. 검찰이 최순실 씨 등에 대한 공소장에 박근혜 대통령이 범죄 행위에 있어서 주도적 역할을 했다는 점 등을 구체적으로 적시함으로써 탄핵 추진의 명분이 강화됐다는 점은 기대해볼만한 부분이다.

탈당하거나 대통령을 내쫓거나, 기로에 선 비박계

그러나 비박계가 일치단결해 탄핵소추안에 찬성 표결을 할 것인지는 아직까지 명확하지 않은 상태다. 새누리당 김무성 전 대표 등도 탄핵 절차에 착수해야 한다는 점을 언급하고 있을 뿐 박근혜 대통령이 탈당하지 않은 상태에서 새누리당에 당적을 둔 채로 탄핵소추안에 찬성 표결 하는 것에는 정치적 부담이 따른다. 어쨌든 새누리당의 당헌·당규는 자신들이 배출한 대통령에 대하여 정치적 책임을 함께하도록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간 비박계 인사들 일부는 탄핵 추진에 앞서 대통령이 탈당해줄 것을 요구해왔다. 그러나 박근혜 대통령이 스스로 탈당을 선택할 가능성은 지금으로서는 미미하다. 대통령이 탈당을 스스로 선택하지 않으면 강제로라도 내보내야 한다. 비박계 인사들의 별도 논의기구인 비상시국회의에서 유승민 의원이 그간의 입장을 뒤집고 당 윤리위를 열어 출당을 추진해야 한다는 주장을 편 것은 이 때문이다.

새누리당 나경원 의원 등 비박계 의원들이 14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비상시국준비위 회의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러나 여러 상황에도 불구하고 결국 대통령의 탈당 혹은 출당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그래도 탄핵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정치 논리상 비박계가 새누리당을 나가야 한다. 그러나 이를 쉽게 추진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당장 남경필 경기도지사가 22일이나 23일 당을 나가겠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으나 국회에서 탄핵소추안에 의결권을 갖고 있는 사람 중 같이 탈당하겠다는 인사는 김용태 의원 정도이다. 추가로 동반 탈당을 선택하는 인사가 늘어날 수는 있으나 ‘집단 탈당’이나 ‘분당’으로 부를 규모는 아닐 가능성이 크다.

여전히 당 내에서의 해결책을 모색해보자는 비박계 인사들은 크게 두 가지 문제에 발목을 잡히고 있다. 첫 번째는 박근혜 대통령과는 별개로 선거에서 여전히 ‘1번’을 지지할 가능성이 큰 영남권 지지층의 문제다. 본의 아니게 대통령으로부터 ‘배신의 정치’로 규정된 유승민 의원이 비박계 대권주자 중 탈당에 가장 미온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다. ‘조직’이란 ‘관성’이 있을 수밖에 없는 집단이어서 의원들이 탈당을 선택하더라도 기층 조직이 같이 움직일 거냐는 별개로 판단해야 한다는 문제도 있다. 이런 틀에서 보면 탈당이 미온적인 비박계 인사들은 친박계를 내보내면 내보냈지 자신들이 나가봐야 불이익을 볼 가능성이 크다는 판단을 내리고 있는 걸로 보인다.

두 번째 문제는 박근혜 대통령이 검찰에 총력수사를 지시한 LCT 비리 의혹 문제다. 특히 영남권 비박계 인사들이 연루됐을 가능성이 제기되는 가운데 섣불리 탈당을 선택했다가 어떤 정치적 불이익을 받게 될지 알 수 없다. 최순실 씨 등에 대한 공소장에 대통령의 책임이 예상보다 강하게 기술됐고 이에 대해 박근혜 대통령 측이 정치적 중립이 지켜지지 않았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기 때문에 검찰로서는 LCT 비리 의혹 수사에서 나름의 균형을 맞추려고 할 수도 있다. 비박계 인사들의 입장에선 이래도 걱정, 저래도 걱정인 문제가 돼버린 것이다. 이 문제에 의한 피해를 최소화하면서 사실상의 ‘분당’을 현실화하기 위해서는 결국 최대한의 숫자가 동시에 탈당해야 하면서 실질적인 정계개편의 그림으로 연결될 수 있어야 하는데, 이것은 각자의 사정이 있는 상황에선 하루이틀 사이에 결론 낼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이런 점들을 고려해보면 분명 비박계 인사들의 집단행동이 모색되고 있고, 이는 어떤 방식으로든 분당 혹은 집단탈당이라는 그림으로 귀결되고 있으나 결국 시점과 정치적 맥락에 따라 탄핵소추안의 발의 및 표결 날짜가 변할 수 있다는 예상을 해볼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청와대나 친박계 지도부가 비박계에 대한 개별접촉 및 설득에 들어가는 경우 탄핵소추안 가결이 유력시되는 상황이라도 뒤집힐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야권은 돌고 돌아 또 다시 ‘총리’가 문제

이에 반해 야권은 탄핵소추안에 대한 일괄적인 찬성 표결을 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춘 걸로 보인다. 그러나 탄핵을 추진하면서 만나는 첫 번째 장애물이 직무정지 된 대통령의 권한을 누가 대리할 것인가라는 게 문제다. 이대로 국회에서 탄핵소추안이 가결될 경우 결국 황교안 국무총리가 대통령 권한을 대행하는 사태가 일어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은 각 정파의 유불리를 떠나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민심과도 맞지 않는 일이다.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가 20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야권 대권 주자들의 '비상시국 정치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부겸, 문재인, 박원순, 심상정, 안철수, 안희정, 이재명, 천정배. (연합뉴스)

그렇기 때문에 야권 일각에선 탄핵을 추진하기 전에 먼저 국회 추천 총리를 합의하고 이의 임명을 박근혜 대통령에 요구해야 한다는 주장을 내놓고 있다. 이에 대해 청와대는 여전히 헌법에 규정된 권한을 충분히 보장하는 것 이상의 정치적 맥락, 즉 사실상의 퇴진을 전제한 국무총리 지명은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쟁점이 김병준 국무총리 후보자를 지명한 당시로 되돌아가버린 셈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사실상의 퇴진을 전제한 국무총리 지명을 받아들이더라도 야권이 그걸 누구로 합의할 것이냐의 문제도 여전히 남아있는 상태다. 국회가 합의할 수 있는 국무총리가 개헌 또는 향후 정계개편에 대한 입장을 어떻게 가지냐에 따라 각 정치세력과 대권주자들 간의 이해관계가 엇갈리게 되기 때문이다. 특히 탄핵 국면 와중에 정계개편이 현실화되는 시나리오에 대해 야권 일각에서는 “제2의 3당합당이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까지 내놓고 있다.

실제로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 사이에 이런 저런 소소한 견제가 오가고 있다는 건 향후 정국에 대한 주도권 다툼이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란 걸 보여준다. 국민의당 박지원 비대위원장은 21일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에 대해 “문재인 전 대표가 마치 대통령에 당선된 것처럼 말하고 있다. 광장의 분노를 대변하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는 문재인 전 대표가 “박근혜 대통령이 결단을 내려준다면 대통령이 명예롭게 퇴진하고 퇴진 후 대통령의 명예가 지켜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발언한 것에 대한 반응이다.

문재인 전 대표의 발언은 박근혜 대통령의 퇴임 후 자신들이 집권했을 경우 검찰 수사의 진행에 대한 언급으로 보인다. 실제 야권이 박근혜 대통령 퇴진의 반대급부로 약속해 줄 수 있는 것은 이 점이 유일하다. 즉, 문재인 전 대표로서는 여전히 박근혜 대통령이 스스로 물러날 가능성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비판을 받을 수 있는 행보를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이는 결국 탄핵 국면에서 문재인 전 대표가 선호하지 않는 인사가 국무총리가 될 가능성을 경계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해석을 낳는다.

물론 다른 해석도 가능하다. 박근혜 대통령이 ‘퇴진을 전제한 국무총리 임명’에 동의하지 않는 상황을 개선해보려는 노력이 아니겠냐는 거다. 이 경우 박지원 비대위원장의 비판은 ‘악의적’인 것이 된다. 어떤 경우든 야권이 지혜롭게 의견을 모아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을 이끌어내길 바라는 국민적 정서에는 맞지 않는 일이다. 야권이 이를 유념하고 행동하지 않으면 ‘보수재집권’이 현실화 돼버릴 수 있다. 그때 가서 “죽 쒀서 개 줬다”고 후회해 봐야 소용이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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