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국민 참 대단하다. 100만이 넘는 사람들이 광장을 메웠다. 조금의 흐트러짐도 없이 당장 방을 빼라고 외쳤다. 하야 또는 탄핵 찬성 여론은 73.9%로 치솟았다.(리얼미터) 이제 박근혜 대통령에게 남은 것은 내려오는 길 밖에 없다. 그러나 이제 고작 1회전이 끝났을 뿐이다. 아니나 다를까, 대통령은 다시 뻣뻣해졌다. 대면조사를 거부하고, 한일군사정보협정도 체결했다. 청와대의 입을 통해 퇴진도 2선후퇴도 전혀 고려하고 있지 않다는 생각을 밝혔다.

본격적인 싸움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장기전이다. 단기전과 전략을 달리 해야 한다. 무엇보다 지치지 말아야 한다. 힘을 허투루 쓰지 말고 비축했다 고비 고비에 폭발시켜야 한다. 흐름이 끊겨서도 곤란하지만 무조건 광장에 계속 모이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계기를 포착하고 국면을 전환하면서 싸움을 이어나가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연합뉴스)

탄핵추진은 좋은 계기가 될 수 있다. 탄핵에 대한 반대 의견도 적지 않다. 의석수 부족과 보수적인 헌법재판소 구성 때문에 실현 가능성이 적고, 헌재 판결 시한이 6개월로 너무 길다는 것이 핵심 반대 논거다. 일리가 전혀 없지는 않다. 그렇다고 퇴진만 외치다가 대통령이 계속 버티고, 탄핵을 추진할 시기마저 놓치면 그것도 문제다. 탄핵을 추진하면 새누리당을 분열시킬 수도 있다. 헌재를 압박하는 게 대통령을 압박하는 것보다 수월하고 가능성도 높다. 이렇게 의견이 갈릴 때에는 계산하기보다 대개 원칙을 따르는 것이 맞다. 탄핵은 이럴 때 쓰라고 헌법이 보장한 장치이고, 국회가 탄핵을 추진하는 것은 권리이자 의무이다. 이것이 원칙이다.

탄핵추진이 퇴진운동의 열기를 누그러뜨릴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정반대다. 광장에서 싸움을 이어가는 것은 한계가 있다. 메아리 없는 외침을 계속하는 것은 지루하고 힘들다. 탄핵이 발의되면 훨씬 다양하고 재미있게 싸울 수 있다. 첫 단계로 시민들이 국회를 포위하고 새누리당의 비박계 의원들을 압박해 탄핵안에 찬성토록 만드는 것이다. 국회통과라는 고비를 넘기면 이번에는 상징적으로 헌재를 포위해서 재판관들이 국민의 뜻을 거스르지 않도록 압력을 가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우리는 4.19혁명, 87년 6월 항쟁에 이어 한국사회를 뿌리 채 바꿀 시민혁명의 첫 단계에 접어들었다. 혁명은 단숨에 이뤄지지 않는다. 대통령 퇴진만으로 새로운 대한민국이 저절로 만들어지지도 않는다. 어쩌면 장기전이 더 좋을 수 있다. 박근혜의 퇴진과 탄핵을 추진하면서 우리가 청산해야 할 것이 무엇이고 우리가 이룩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정치권과 시민사회가 함께 토론하는 충분한 시간을 가질 수 있을테니 말이다. 다양한 규모로, 각 단체별로,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분야와 주제를 망라한 토론 광장이 열려야 한다.

2016년 민중총궐기 대규모 집회가 열린 12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시청 앞 광장을 가득 메운 국민들이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촉구하며 촛불을 밝히고 있다. (서울 사진공동취재단=연합뉴스)

우리가 청산해야 할 일차적 대상으로 박근혜-최순실 부역자들을 지목한다. 부역자라는 표현이 걸린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본질을 놓칠 우려가 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뿌리를 보아야 한다.

첫째, 재벌이다. 사태 초기에 최순실이 대통령의 위세를 빌어 재벌로부터 삥을 뜯은 것이란 시각이 있었다. 잘못된 관찰이다. 진실은 재벌이 박근혜-최순실 일당을 헐값에 에이전트로 고용한 것이다. 삼성의 사례가 말해준다. 최순실이 국민연금을 움직여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에 찬성하도록 했다는 증언이 나온다. 이재용 부회장은 7천4백억의 평가이익을 봤을 뿐 아니라 삼성 경영권 승계의 결정적 전기를 마련했다. 불과 기백 억을 지불하고 거둔 이익이다. 국민연금은 반대로 약 2조원의 손실을 봤다. 이래도 재벌을 일개 부역자라 할 수 있을까? 공범, 아니 그 이상이다.

재벌이 저지르는 불법만 막아서 될 일이 아니다. 재벌은 막강한 영향력으로 세제, 노동정책, 전기요금, 공정거래 등 국가의 주요정책을 자신들의 입맛대로 요리한다. 각각의 정책들은 재벌기업에 수조에서 수십조의 추가적인 이익을 안기고, 중산층과 서민, 중소기업, 그리고 비정규직에게 고스란히 그 부담을 떠넘긴다. 불평등은 더욱 심화된다. 새로운 대한민국에서 재벌중심의 경제구조를 더 이상 용납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

둘째, 검찰이다. 종종 우리 검찰을 권력의 시녀라 한다. 이번에도 검찰은 박근혜-최순실 일당이 권력을 농단하는 데 충실히 기여했다. 정윤희 문건파동 때 검찰이 제대로 수사했더라면 일이 이토록 커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난 과정에 검찰이 내린 모든 결정은 검찰 자신의 권력을 극대화하는 데 목적이 있었다. 스스로 권력인 것이다. 지금 대통령을 수사하면서 연출하는 장면도 마찬가지다. 대통령이 더 이상 자신들의 권력 강화에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검찰독립은 잘못된 도그마다. 검사장 직선으로 국민의 통제를 강화하거나 권한과 영역을 쪼개 상호 견제하도록 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

셋째, 대통령제이다. 우리 대통령은 무소불위의 권한을 갖지만 그에 상응하는 책임을 지지 않는다. 대통령의 권한의 크기는 소수에 의한 권력농단이 일어날 가능성과 양의 상관관계를 갖는다. 역대 대통령 모두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권력농단 시비에서 자유롭지 않다. 이미 국민 다수가 현재의 대통령제를 그대로 둘 수 없다고 본다. 국민과 정치권이 함께 대안을 찾아 개헌을 해야 한다.

시민혁명의 내용, 새로운 대한민국의 상을 충실히 준비해야 한다. 우리가 또 다시 '혁명은 안 되고 방만 바꿔버렸다'고 한탄할 수는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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