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온 국민이 힘들어하고 있다. 이 난관을 어떻게 헤쳐 나가야할지 고민에 빠져있는데 그 물음에 답해줄 수 있는 것은 역사다.”

힙합과 역사가 만나는 MBC <무한도전-위대한 유산>이 첫 방영된 지난 12일은, 100만이 넘는 시민이 서울 광화문, 시청광장, 종로 일대에 모여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외친 역사적인 날이었다. 당시 KBS 1TV와 SBS는 정규 방송을 중단하고 서울 도심에서 진행된 촛불집회를 생중계했지만, 유일하게 정규편성을 이어나간 MBC는 <무한도전>을 송출했다.

가뜩이나 시민들로부터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를 제대로 다루지 않는다는 비판을 한 몸에 받는 터라 시국을 무시한 정규편성은 자칫 역풍을 맞을 우려가 있었지만, 역사와 힙합의 콜라보레이션을 통해 힘들어하는 국민들의 자긍심을 높이는 <무한도전>이 민심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MBC 뉴스보다 낫다는 평이다.

MBC <무한도전> ‘역사 X 힙합 프로젝트 - 위대한 유산’

역사 교육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문제는 역사를 제대로 잘 배우는 것인데, 박근혜 정부가 수많은 비판 여론에도 꿋꿋이 강행한 ‘국정역사교과서’가 제대로 된 역사를 담았는지는 의문이다. 여러 매체에서 보도된 바 있지만, 현재 서울 도심에서 벌어지는 촛불 집회에서 가장 강력한 에너지를 분출하는 참가자는 청소년들이다. 매주 거리에 나오는 청소년들은 온갖 특혜로 얼룩진 최순실의 딸 정유라에 관한 일도 불만이지만, 국정 역사교과서를 강력하게 반대한다. 그런데 역사교과서의 직접적인 수요자들도 반대하는 그 ‘국정교과서’를 지지율 5%에 빛나는 박근혜 정부는 끝까지 밀어붙이려고 한다.

힙합과 역사의 콜라보레이션 ‘위대한 유산’ 프로젝트 외에도 <무한도전>은 그동안 역사 문제에 많은 공을 들여왔다. <무한도전> 멤버들이 아이돌들에게 역사를 가르친 ‘TV특강’도 있었고, 지난 8월 20일에는 ‘도산 안창호’ 특집을 방영하기도 했다. 그리고 이번에는 젊은층 사이에서 높은 호응을 얻는 힙합을 통해 역사를 어려워하는 어린 학생들에게 보다 쉽게 역사에 접근할 수 있는 길잡이 역할을 자청한다.

<무한도전>이 틈나는 대로 역사 교육에 팔을 걷어붙이는 이유는, 수많은 국민들이 즐겨보는 예능 프로그램으로서의 책무를 다하기 위함이다. 매회 다양한 주제로 프로그램을 이끌어나가는 프로그램 특성상 역사에 집중할 수는 없지만, 틈나는 대로 역사를 다루기 위해 노력했고 그 결과는 언제나 성공적이었다.

MBC <무한도전> ‘역사 X 힙합 프로젝트 - 위대한 유산’

하지만 이날 <무한도전>이 주목받은 것은 ‘역사’를 다뤘기 때문만은 아니다. 역사학자 E.H 카가 남긴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를 인용하며 역사를 통해 현재의 어려움에 대한 답을 얻을 수 있다는 설민석 선생의 강의처럼, 역사는 현재에도 유효한 메시지로 다가와야 한다. 이를 의식한 듯 <무한도전>은 수천 년 가까이 지속된 역사를 연대기 형식으로 모두 훑기보다, ‘순실의 시대’에 살아가는 사람들이 조금이나마 실마리를 찾을 수 있는 굵직굵직한 사건과 인물을 다루었다.

‘왜 힙합이냐’는 물음에는 고려 말 유행했던 청산가요, 임진왜란 이후 서민층 사이에서 인기를 끌었던 판소리, 탈춤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부조리와 차별에 저항하는 힙합의 원래 정신에서 벗어난 한국 힙합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하지만, 힙합이 시대정신을 표출할 수 있는 적합한 장르임은 분명하다. 흥미로웠던 부분은 탈춤의 주요 캐릭터였던 ‘말뚝이’와 ‘취발이’를 <무한도전> 유재석과 박명수로 비유하며, 서민의 편에서 애환을 이야기해주는 탈춤의 정신을 설명하는 장면이다.

MBC <무한도전> ‘역사 X 힙합 프로젝트 - 위대한 유산’

<무한도전>은 자막과 상황극을 통해 최근 벌어지고 있는 사회적 이슈를 담아내고 해학적으로 그려낸다. 지난 12일 방송에도 현 시국을 풍자하는 자막이 등장하였는데, 가령 유재석에게 맹목적으로 충성을 보이는 하하에게 ‘이런 간신’이라고 날리는 박명수의 멘트 이후,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가 박지원 국민의당 원내대표에게 보낸 문자를 패러디하여 ‘충성충성충성 MC유님 사랑합니다 충성’이라는 자막으로 처리한 것. 평소 친분이 두터운 다이내믹 듀오 개코를 띄워주는 하하를 ‘지인 특혜 의혹’이라며 내동댕이치며 ‘이런 친구는 버리는 게 상책’이라는 제작진의 코멘트는, 파도 파도 끝이 없는 ‘비선실세’ 존재 때문에 힘들어하는 국민들의 정서를 대변한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가 본격적으로 수면 위에 오른 지난 10월말부터, <무한도전>은 자막을 통해 현 시국을 풍자해왔다. 가령 <무한도전>의 대표적인 ‘불통의 아이콘’ 박명수를 빗대어 ‘끝까지 모르쇠인 불통왕’이라는 타이틀 부여부터, '요즘 뉴스 못 본 듯', ‘온 우주의 기운을 모아 출발’, ‘상공을 수놓는 오방색 풍선’, ‘알아서 내려와’ 등 명패러디가 수두룩했던 지난 29일 방송을 시작으로, 지난 5일에는 박근혜 대통령의 제2차 대국민 담화문에서 나온 유행어를 빗대어 ‘내가 이러려고 우주로 왔나’를 넣어 국민적인 ‘이러려고’ 패러디 열풍에 동참하기도 했다. 지난 1월 박명수를 두고 생각할 겨를 없이 보이는 대로 읽은 ’박앵무새’라고 부른 <무한도전>의 선견지명(?)은 감탄을 자아내기까지 한다.

MBC 예능프로그램 <무한도전>

<위대한 유산> 특집을 함께 진행할 래퍼들과의 만남과 역사 강의가 주를 이룬 지난 12일 방송. 현 시국에 대한 직접적은 풍자는 어려웠지만, 자막을 통해 패러디 정신을 잃지 않은 <무한도전>은 불과 한 주 만에 풍자가 쏙 들어간 tvN <SNL 코리아 시즌8>과 대조되기도 한다. 그러나 MBC 뉴스가 망각한 공영방송의 책무를 예능인 <무한도전>이 대신하고 있다는 지적은, 한때 민주 시민들이 제일 사랑했던 방송국 MBC로서는 뼈아프게 다가올 법하다. 역사를 써내려가는 <무한도전>의 시대정신이 허울뿐인 공영방송 MBC의 체면을 그나마 세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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