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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베를린에서 '박근혜 퇴진' 촛불을 든다는 것[독일벼리] 집회는 자연스러움이다
장성준 언론학박사, 미디어스 독일통신원 | 승인 2016.11.12 11:27

시절이 하 수상하니 헛웃음도 안 나온다. 비리와 기행의 면면이 어찌나 찬란한지 하나씩 겉으로 드러날 때마다 눈이 부셔 바라보기 어려울 지경이다. 지난 4일 대통령이라 불리는 사람이 대국민 ‘담화’를 발표한다는 소식에 부러 생중계를 시청했다. 여기 시간으로는 2시 30분, 참 ‘이러려고 새벽까지 잠 안 자고 기다렸나 회의감이 들 정도’의 어리광을 들었다. 그 울먹임 속에는 작금의 상황을 직시한 최고 통수권자의 정련된 불편함이 들어 있었다.

그가 분별이 없다 혹은 진정성이 없다고들 말하지만 실제로 그만큼 자신의 태도를 분명히 보여준 담화가 또 있을까 싶다. 그것을 담화라고 부를 수 있다면 말이다. 국민들에게 송구스럽다고 말하는 자리에 사과가 아닌 담화라는 명목을 붙인 것 자체가 고의성이 짙은 어휘 선택이라 본다. ‘국가적 위기’, ‘안보’, ‘경제’ 등등을 운운한 것도 프레임 놀이에 지나지 않는다. 발화자가 불편함을 스스로 통제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지 않은가. 국민들이 길거리에 나와 당신의 지위를 내려놓으라고 말하는 것 자체가 납득되지 않는 태도가 역력하다.

대통령 권한이 제왕적이었던 박정희 정권 때를 생각하면 안 될 것이다. 현재를 사는 대한민국 사회의 시민들은 집회와 시국선언, 단체 활동을 통해 더 이상은 몰상식한 상황과 인물을 참아낼 여력도 이유도 없음을 외치고 있다. 외국에 나와 살고 있는 우리도 시국을 좌시하지 않으려 움직임을 만들었다. 12일 해외 여러 지역에서 총궐기가 있을 것이다. 여기 독일에서는 베를린과 뮌헨, 프랑크푸르트를 중심으로 집회가 열려 필자도 참석할 예정이다. 2014년 이후 매년 세월호 희생자 추모식이 열리기는 하지만 그와는 성격이 다른 대규모 집회이기에 모종의 설렘과 기대감을 갖고 있다.

며칠 전 재독 한국인들이 자주 이용하는 사이트에서 이번 집회와 관련해 흥미로운 설전이 있었다. “이렇게 쪽팔린 일을 굳이 해외에서 널리 알려야 하는 것에 대한 의문점”이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와 작성자와 답글자들 사이에 댓글 공방이 펼쳐졌다. 글의 요지는 한국 내 집회의 필요성과 역사성은 통감하지만 타지인 독일에서의 집회는 ‘실효성이 의문’이며 ‘자기 얼굴에 침 뱉는’ 식의 역효과가 있을 것이라는 주장이었다.

유학생 중심의 이용자 특성상 조회수가 높거나 댓글이 엄청난 것은 아니었지만 관련 글이 여러 편 올라오면서 꽤 눈길을 끄는 주제가 되었다. 해당 글의 주장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한국의 이미지가 나빠진다.’, ‘국내의 문제이기 때문에 해외에 적극적으로 알리는 이유를 모르겠다.’, ‘국익, 교민의 생활, 경제 면에서 볼 때 도움이 안 된다’라는 입장이었다. 이에 반대하는 편에서는 ‘잘못된 것을 바로 잡기 위해 해외에 살고 있는 국민의 뜻을 보여주는 것이 당연하다.’, ‘타국에서라도 뜻을 전하겠다는 의미’라며 맞섰다.

11월 12일 베를린집회 공고(http://www.koreaverband.de/termin/demonstration-gegen-park-geun-hye/)

독일 베를린에서 집회를 한다는 것

집회는 세상에 외치는 목소리로 시작되는 의사소통의 장이다. 이 의사소통은 특정한 시간적 지역적 제약을 뛰어넘는 활동이며 생활 속에서 항시 존재해왔던 작은 울림들의 표출 과정이다. 독일에서 접하는 국내 상황에 관한 뉴스들을 보면 이 사회에 불만과 불신을 제기해야 마땅한 시점이라 판단된다. 국내 이슈에 대한 외국에서의 시위가 부끄럽다는 주장을 몇 가지로 반박해보면 다음과 같다.

그들은 첫째, 현 정권을 비판하는 활동이 국가 이미지를 훼손한다고 하는데 이는 국민과 국가를 별개의 개념으로 생각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부조리로 가득 찬 위정자가 지위를 포기하도록 압력을 가하는 것은 국민이 잘못 세운 정권을 국민 스스로가 고쳐나가겠다는 의사표현이다. 국민이 있어야 국가가 존재함을 기억한다면 이것이 국가에 대한 평가 절하가 될 수는 없는 일이다.

두 번째 오류는 실체가 없는 ‘국익’이라는 개념을 현존하는 사람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억지하는 근거로 내세운 것이다. 국익은 국민이 살아가면서 만들어내는 가치로서 그들 삶의 결과물이기 때문에 국가의 이익을 국민의 이익보다 앞서 생각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박정희 정권의 독채, 전두환 정권의 탄압, 이명박 정권의 비리 모두 합의되지 않은 국익이 현현하는 국익보다 우선시되어 발생한 불행한 역사다. 이 잘못된 국익에 대한 개념을 부수는 작업은 지역과 인종의 제한 없이 꼭 필요한 일이다.

마지막으로 집회를 통해 무엇을 얻고자 하는지 실효성은 있는지에 대한 의문은, 간단하다. 해보면 안다. 비록 우리나라 현대사에서 집회가 세상을 바꾼 경우는 그리 많지 않지만 지금까지도 억지로 발라놓은 틈새들에 균열을 만들어 온전하게 다시 메우는 역할은 충분히 해내어왔다. 집회는 눈에 보이는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탄압과 비리, 권력들을 깨는 작업이다. 외국에서 그곳의 현지인들에게 어떤 사실을 알리기 위함일 수도 있고 타지에서 생활하고 있는 교민들의 각성을 촉구하는 것이 목적이 될 수도 있다. 어떤 쪽이든 간에 집회의 진행과 결과는 예측할 수 없으며 그 행위 자체가 실효성을 지닌다.

찬성과 반대 입장 모두 현재 상황이 빨리 해결되어야 한다는 점에는 동의했지만 이를 행하는 방식에서의 생각 차이가 가져온 논쟁이었다. 집회에 대한 이런 생각의 충돌은 비단 국내냐 국외냐의 차이에서 발견되는 것은 아닌 듯하다. 입장이 저마다 달라 도매금으로 다루기는 어렵지만 한국의 지인들 중에서도 집회 때문에 겪어야 하는 불편함을 두고 화내는 사람들이 적잖이 있었고, 집회 이후에 바뀌는 것이 없을 것이라는 의견도 흔히 들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집회는 자연스러움이다

집회는 우리나라 헌법 21조에 명시된 민주주의의 기본 권리다. 그런데도 한국 사회에서는 집회 또는 시위를 특정 단체나 개인의 이익을 위한 집단행동을 해석하는 경향이 강하다. 그래서 많은 경우 집회를 ‘불법시위’라고 규정해 의미를 격하시키고 탄압해왔다. 비근한 예로 파업또한 단체행동권, 쟁의권 등으로 보장된 권리임에도 불구하고 자신들만의 이익을 추구하는 ‘불법 파업’으로 매도되기 십상이다. 사람들이 모여 활동할 수 있는 충분한 근거가 있음에도 정부와 언론에서는 무언의 합의를 강요해왔던 것이다.

때문에 집회는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활동’이 아니라 부당하고 불편한 상황의 대명사처럼 인식되게 되었다. 해외에서 집회를 하는 이유에 의구심을 갖는 것이나 한국에서 열리는 집회에 반감을 갖는 입장 모두 집회를 부자연스러운 것으로 바라보는 시각에서 파생된 것이라 본다. 앞서 소개한 게시글에서처럼 집회라는 활동이 누군가의 ‘시선’ 혹은 ‘이익’을 고려해야하는 일로 생각되는 것도 같은 맥락이라 판단한다.

기본적으로 우리 사회는 한 가지 일에 대해 서로 다른 시각을 수용하는 데 익숙하지 않은 듯하다. 우리네 생활 속에 있는 불만의 층위들이 다르기 때문에 대응하는 방식에도 차이가 있는 것이 당연하다. 집회는 하나의 목적으로 모인 움직임이지만 그 계기는 참여한 사람마다 다르다. 누군가는 현 정권 초창기부터 집회의 필요성을 통감했을 수도 있지만 누군가는 이번 사태를 계기로 실망감을 표출하기 위해 나온 자리일 수 있다. 하나의 목소리를 뽑아내도록 강제하는 집회보다 하나의 목소리를 자연스럽게 만들어내는 집회가 더 파급력이 세지 않을까. 집회는 특정한 목적을 다양한 방식으로 표출하는 자리이며 그 자연스러움이 경직된 정치권력과 사회의 모순을 부수는 원동력이 된다.

그렇기 때문에 집회는 누군가의 주목을 바라는 자리가 아니라 순수한 움직임들이 모인 과정이자 결과가 되어야 한다. 이런 생각에서 해외에서 집회를 열어야만 하는가를 의문시하는 의견을 존중하기는 하지만 그와 관계된 의견을 이해하거나 옹호할 생각은 없다. 같은 목적의식을 갖고 있지만 그 방식에 있어 전혀 다른 길을 택했기에 개인적인 의견을 표명하는 것뿐이다.

집회 외부의 억압뿐 아니라 내부의 원인으로도 자연스럽지 못한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 몇 해 전 한 집회에서 있었던 일이다. 주최 측의 봉사자들 중 사진촬영을 담당한 몇 명이 좋은 구도를 위해 참가자들의 위치를 배정하고 행동에 약간의 제약을 가했다. 사진에 찍히는 것부터가 별로 내키지 않아 자리를 피하고 싶었지만 운이 없었는지 카메라와 가장 가까운 자리에서 촬영을 당하고 말았다. 마음이 불편해져 금방 자리를 떴는데, 당시 동행했던 친구에게 그때의 심경을 토로했다가 되레 주최측과 봉사자의 노력을 폄하하지 말라는 질책을 받았다. 집회의 기록을 남기고 싶다면 사람들이 참여하고 있는 모습 그대로를 담는 것이 훨씬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하나의 모습만을 강요한다면 그 역시 또 다른 층위의 억압이 될 수 있으며 함께하지 않는 사람들을 간단히 배제해 버리는 인식의 오류를 범할 수 있다. 집회는 더 멋있게 보이기 위해 꾸미고 포장하는 자리가 아니며, 그 안에 있는 사람이든 밖에 있는 사람이든 살아가는 모두가 자신들의 가치를 발견하는 자연스러움의 행진이어야 할 것이다. 12일의 거대한 자연스러움이 이 정권이 막아 놓은 민주주의의 물꼬를 다시 트는 결정적 도움이 되길 기대해본다.

장성준 언론학박사, 미디어스 독일통신원  webmaster@media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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