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_ 과거 텐아시아, 하이컷 등을 거친 이가온 TV평론가가 연재하는 TV평론 코너 <이주의 BEST & WORST>! 일주일 간 우리를 스쳐 간 수많은 TV 콘텐츠 중에서 숨길 수 없는 엄마미소를 짓게 했던 BEST 장면과 저절로 얼굴이 찌푸려지는 WORST 장면을 소개한다.

이 주의 Best: 봉태규 엄지 척! <살림하는 남자들> (11월 8일 방송)

근래 들어 가장 속 시원한 방송이었다. KBS <살림하는 남자들>의 봉태규 덕분이다. “아내가 찾기 편하도록 일부러 식자재 정리를 안 한다”는 김일중의 핑계에 “애초에 같이 정리를 하면 되지 않냐”고 반격했다. “임신했을 때 잘해주면 그게 오래 간다”면서 자신의 경험을 으스대는 김일중에게 또 다시 “그건 당연한 거 아닌가”라고 되물었다.

KBS 2TV <살림하는 남자들>

‘사이다 발언’의 절정은 살림 관련 발언이었다. “살림을 도와준다는 말을 많이 하는데 그 표현이 혼나야 되는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결혼을 같이 했으니까 살림도 같이 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남자 시청자들이 불편해 할 수 있다”는 김일중의 말도 안 되는 깐족거림에도 굴하지 않고 “그런 남자들 혼나야 돼. 뭐 말이 많아, 같이 해야지”라고 소신을 꺾지 않았다.

사실 봉태규가 대단하거나 위대한 얘기를 한 게 아니다. 정말, 지극히 당연한 얘기를 한 건데, 윤손하는 눈을 반짝이며 “멋있다”를 연발했다. 왜? 그동안 이런 남자가 없었으니까.

결혼한 지 1년 5개월, 살림한 지도 1년 5개월이 된 봉태규의 하루는 그야말로 ‘리얼’이었다. 대형마트에 가서 시식을 하고 주부들과 셀카를 찍던 김승우의 하루가 어떻게 보면 방송을 위한 리얼리티였다면, 하루 종일 아기 이유식 재료를 다듬고 다듬고 또 다듬던 봉태규의 하루는 주부 그 자체였다.

방송을 위한 하루가 아니라, 오로지 아이를 위한 하루. 전혀 카메라를 의식하지 않았다. 대구살, 닭가슴살, 소고기 안심, 시금치를 데치고 다듬었다. 옥수수와 대추를 손질했다. 색깔까지 맞춰 큐브에 보관하면서, 자신을 칭찬해 줄 아내를 상상했다. 다듬고 데치고 체에 거르고 또 다듬고 데치는 무한반복. 누군가에게는 다소 지루한 그림일 수 있겠지만, 주부들의 입장에선 정말 이보다 더 공감이 가는 예능이 없었다.

특히 봉태규가 빛났던 건, 단순히 살림을 잘해서가 아니라 살림과 육아를 대하는 우직한 태도 덕분이다. 함께 출연한 남성 동료들이 야유를 넘어 분노를 표출해도, 전혀 흔들리지 않는 모습이었다. 남들보다 튀지 않기 위해 자신의 생각과 다른데도 동조하는 척 하거나 혹은 괜한 허세를 부리는 경우가 있는데, 봉태규는 방송 내내 자신의 소신을 꺾지 않았다. “살림은 다 힘쓰는 일이고 체력적으로 굉장히 힘든 일이기 때문에 살림은 남자가 해야 한다”, “도와준다는 생각보다 같이 했으면 좋겠다”는 발언으로 마무리한 방송. 이보다 더 아름다운 클로징이 어디 있으랴.

이 주의 Worst: 문제의식이 전혀 없는 <부모-위대한 엄마 열전> (11월 10일 방송)

일단 반성부터 한다. 최근 KBS <안녕하세요>에 나온 ‘최악의 남편들’에 대해 혹평을 쓴 적이 있다. 그런데 EBS2 <부모-위대한 엄마 열전>(이하 <부모>)에 나온 남편에 비하면, <안녕하세요>의 남편들은 최소한의 양심은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에게 ‘최악’이라는 꼬리표를 너무 성급하게 붙여준 것, 반성한다.

EBS2 <부모-위대한 엄마 열전>

지난 10일 방송된 <부모>에는 아내와 함께 귀농하여 부모님을 모시고 아이 둘을 키우는 남편이 출연했다. ‘나는 일을 하니까 육아는 전적으로 아내가 담당한다’는 생각은 <안녕하세요>의 남편이나 <부모>의 남편이나 똑같았다. <부모>의 남편이 더 문제인 건, 반성의 기미조차 없는 태도였다. <안녕하세요>의 남편들은 과거엔 잘못했을지언정 앞으로는 노력이라도 해보겠다는 최소한의 양심은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부모>의 남편은 그런 문제의식조차 보이지 않았다. “육아에 대해서는 생각할 여력이 없고 앞으로도 그럴 것 같다”고, 너무나 당당하게 말했다.

설거지하는 아내에게 아들을 목욕시키라고 얘기하고, 아들 목욕을 시키는 아내에게 딸의 기저귀를 갈라고 얘기한다. 정작 남편은 소파에 누워 TV를 보고 있다. 애가 둘이나 있는 아빠가 아기 기저귀를 전혀 갈지 못하는데, 그것이 이상하다는 인식을 전혀 하지 않는다. 남편은 인터뷰에서 “아내가 집안일을 할 때 어머니나 아버지가 계셨으면 갈아주셨을 텐데”라며 당시 부모가 자리에 없었기 때문이라는 말도 안 되는 핑계를 댔다.

남편의 책임감은 오로지 농사일에만 있다. “저는 일했으니까 육아 문제는 아내가 다 맡아야 한다”는 사고방식을 갖고 있다. 심지어 아내가 워킹맘인데도 말이다. 설사 아내가 전업주부라 해도, 집안일은 아내가 대부분 맡더라도 육아는 공동책임의 것이다.

그러나 <부모> 제작진은 이런 남편의 태도를 지적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런 남편을 대하는 아내의 공격적인 태도를 지적하기만 한다. 자녀교육전문가 조선미 교수는 “남편의 농사일이 아주 많아서 힘든 상황”이라며 남편을 두둔한다. 물론 전문가의 말이 틀린 건 아니다. 남편이 맡아야 하는 농사일이 많고, 그것 때문에 주변 사람들에게 쉽게 짜증을 낼 순 있다. 그러나 남편의 근본적인 원인은 ‘짜증’이라는 감정이 아니라, ‘육아는 내 책임이 아니다’라는 사고방식이다. 그것은 농사일이 적어진다고 해서 바뀌는 신념이 아니다.

조선미 교수는 시종일관 남편의 무책임함보다 아내의 태도를 지적했다. “아내가 남편에게 (집안일 부탁이) 당연한 것처럼 얘기하면, 남편은 반발밖에 안 한다”면서 부드럽게 ‘부탁’할 것을 요구한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육아는 공동책임의 것이다. ‘부탁’이라는 것은 원래 나의 일인데 남에게 시키는 것이지만, 육아는 누가 누구에게 부탁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책임져야 하는 것이다. 내레이션마저 남편의 편이었다. 아이가 둘인 아빠가 기저귀를 못 가는 것에 대해 지적하거나 답답해하기는커녕 “궂은 농사일은 아무리 힘들어도 마다하지 않는 걸 보니 사람들은 다 잘하는 게 따로 있나 보네요”라는 너무나 밝고 긍정적인 내레이션을 했다.

그래놓고 프로그램 제목은 <위대한 엄마>다. 남편의 무책임한 태도에 반기를 들기보다는 ‘위대한 엄마’, ‘위대한 모성애’라는 이름으로 참고 견디라고 강요하는 것처럼 들린다. 아마도 아내는 자신이 출연한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이런 생각을 하지 않을까. 내가 이러려고 아이를 낳았나 자괴감이 들고 힘들다.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