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상수 감독과 배우 김민희를 둘러싼 불미스러운 스캔들을 의식한 듯이, 김주혁, 이유영, 김의성, 유준상, 권해효 등 이름난 배우들이 출연함에도 불구, 감독, 배우 모두 불참하는 언론 시사회를 가졌다는 <당신자신과 당신의 것>. 홍상수 영화가 언제나 그랬듯 이 영화는, 그에게 있어 미지의 영역이자 계속 탐구하게 만드는 남자와 여자를 다루었다.

영화 전체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이나 대사는 영락없이 ‘홍상수표’가 맞는데, 이전 홍상수 영화와 좀 다른 점이 있다면 남자주인공 영수(김주혁 분)이 유부남이 아니라는 것. <옥희의 영화>(2010)의 진구(이선균 분)도 유부남 아닌 대학생이었지만, 옥희(정유미 분)가 진구보다 더 사랑한 유부남 송교수(문성근 분) 때문에 유부남 대학교수와 어린 여제자와의 은밀한 만남을 안타까운 사랑이야기로 정점을 찍었다.

그런데 <당신자신과 당신의 것>은 이전에 결혼 경험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법적으로 완전히 싱글인 영수와, 결혼한 적 없는 민정(이유영 분)이 메인 캐릭터로 등장한다. 그리고 서사 구조가 한결 가벼워졌고, 그에 따라 영화가 관객들에게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도 분명해졌다. 예전 같으면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친절한 상수씨’로서의 변화다.

<당신자신과 당신의 것>의 이야기는 대충 이러하다. 평소 영수와 민정의 만남을 못마땅하게 여기던 중행(김의성 분)이 친구들 사이에서 떠도는 민정의 기행을 털어놓으며, 영수의 마음을 심란하게 한다. 중행이 낮에 자신에게 했던 말이 걸렸던 영수는 그날 밤 민정과 심하게 다투고, 민정은 영수에게 당분간 만나지 말 것을 선언한다.

여기까지는, 홍상수 영화뿐만 아니라 대다수 사랑 이야기에 단골로 등장하는 흔하디흔한 에피소드다. 그런데, 골 때리는 이야기는 그 이후부터다. 과거 민정과 안면이 있다고 접근하는 유부남들에게 민정의 일란성 쌍둥이 혹은 매우 닮은 여자로 자신을 소개하는, 민정과 똑같은 여자. 이 여자가 진짜 민정이의 일란성 쌍둥이인지 아니면 민정이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여자 스스로가 민정이 아니라고 하니까. 이 영화에서 중요한 것은, 만약 민정이 자신의 정체를 숨기는 것이라면 왜 다른 사람 행세를 하는지에 관한 이유가 아니라, 지금 당신 눈앞에 보이는 여자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다.

민정은 자신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더 알려고 하는 영화감독 상원(유준상 분)에게 “당신은 모르는 것이 많다. 너무 많은 것을 알려고 하지 마라”라고 확실한 선을 긋는다. <당신자신과 당신의 것>이 관객들에게 진짜 하고 싶은 말은 어쩌면 이게 전부일지도 모른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아는 척 하는 남자들의 오만함은 홍상수 영화 특유의 찌질함을 대변하는 트레이드마크였고, 그 남자들의 ‘아는 척’ 때문에 상처 받은 여자들은 결국 그 남자의 곁을 떠난다.

그런데 지난해 개봉한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에서부터 홍상수 영화는 조금씩 달라지고 있었다.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 <당신자신과 당신의 것>에서도 여자를 성적 대상으로만 바라보거나 자신의 ‘앎’을 과시하며 그 기준으로 여자를 재단하고자하는 아재들이 등장하지만, 우스꽝스러운 해프닝으로 지나갈 뿐 예전의 홍상수 영화들처럼 그 자체만으로 묵직한 울림을 주지는 못한다.

오히려 관객들의 마음을 건드리는 쪽은 이전의 홍상수의 남자들에 비해 자신이 가지고 있던 아집을 내려놓고, 여자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에 맞추어주는 남자들의 변화다. 여전히 홍상수 영화 특유의 찌질한 남자의 범주에 머물고 있지만, 자신의 단점을 감추려고 하다 웃음거리가 된 홍상수의 옛 남자들에 비해 자신의 ‘찌질함’을 대놓고 드러내는 남자들은 솔직하고 용감하다.

예전에 비해 한결 친절해지고 부드러워진 홍상수 영화라고 한들, 보고 나온 이후에 밀려 나오는 씁쓸함은 여전하다. 자기중심적인 사고와 편견에서 벗어나 현재 자기 눈앞에 있는 여자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존중해주는 남자들의 변화는 놀랍지만, ‘너무 많은 것을 알려고 하지 마라’, ‘모르는 게 행복하다’ 등의 대사는 모름의 미학을 설파하기보다, 최근 자신을 둘러싼 이런 저런 이야기에 대한 홍상수 감독 자신의 변론처럼 들린다. 이 또한 <당신자신과 자신의 것>을 있는 그대로 봐줄 수 없는, 지나친 ‘앎’과 편견이 빚어낸 한계이겠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