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걷다보면 맞춤법이 틀린 글자들을 발견하는 일이 종종 있다. 좌판에서 물건을 파는 아줌마 아저씨가 손으로 또박또박 써내려간 그런 글을 볼 때면 비록 맞춤법은 틀렸을지언정 사람 사는 냄새 같은 게 묻어있어 좋다. '얼음'을 '어름'으로 썼든 '환불없음'을 '환불없슴'으로 썼든 그 자체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어차피 서로 말귀를 알아듣고 필요한 의사 소통만 되면 문제될 일도 없다.

그런데 얼마전 세간에 회자됐던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의 '맞춤법 사건'은 솔직히 너그럽게 넘겨줄 마음이 없다. 생뚱맞게도 영어 실력을 강화하기 위해 국어를 영어로 가르쳐야 한다고 주장한 사람 아니었던가. 무엇보다 한 나라의 대통령이 되겠다고 나섰고 심지어 각 여론조사에서 지지율 1위를 기록하고 있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가장 기본적인 '습니다/읍니다' 종결어미조차 틀리고 말다니 이건 실망감을 넘어 코가 막히고 귀가 막히고 뚜껑이 열린다.

그런데 언론들은 참 관대했다. 일부 인터넷매체와 일간지 인터넷판을 빼곤 주요 일간지와 방송에선 모두 기사화하지 않았다. 대통령 후보의 국어 실력은 검증 대상도 되지 않는 걸까? 가십으로라도 슬쩍 꼬집고 넘어갈만 한데 반응이 없다. 자신들도 맞춤법과 띄어쓰기와 씨름하면서 종종 실수하는 마당에 이 정도쯤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눈감아 준 것인지도 모른다.

지금과 같은 인터넷, 디지털 시대에 '어른들은 모르는 10대의 말'이 판치는 요즘, 시시콜콜 맞춤법을 강조하는 것이 얼마나 의미가 있냐고 묻는다면? 사실 짜장면을 '자장면'으로 쓰는 것이 정확한 표기라고 다들 알고는 있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실생활에서 짜장면이라고 말하고 또 아주 공식적인 글이 아니면 보통 짜장면이라고 쓰는 데 익숙하다.

그렇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평범한 사람들의 평범한 생활 속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방송뉴스 자막이 걸핏하면 비문과 오타로 장식되고 공공기관의 안내판이 온통 맞춤법 오류 투성이라면 모두 너그러이 받아주겠는가?

언어는 개인과 사회의 문화와 철학을 담는 그릇이다. 그렇기 때문에 표준 맞춤법을 정하고 달라진 시대와 문화를 반영해 개정과 수정을 반복한다. 언어가 가로막히면 세대가 가로막히고 상상할 수 없는 많은 것들이 단절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이명박 후보가 '않겠읍니다'로 쓰든 '받치겠읍니다'로 쓰든 그것이 뭐 그리 대수냐고 쉽게 말할 수가 없다.

이명박 후보의 심정이 궁금하다. 소설가 이외수씨가 현충일 방명록에 쓴 이 후보의 글을 찾아 맞춤법 오류를 빨간펜으로 일일이 수정하고 이를 인터넷에 올려 "한글도 제대로 쓸 줄 모르는 분"이라고 공개적으로 비난했을 때 말이다. 얼굴이 화끈거리긴 했을까? 집에서 '습니다 습니다 습니다'를 몇번씩 써보면서 공부했을까? 아니면 '별 것 아닌 것 같고 저런다'며 기분 나빠 했을까?

난 정말 알고 싶다. UCC로 내용을 만들어 방송사 TV토론에 공모하면 질문으로 채택해줄까? KBS의 대선후보 초청 토론은 '타운홀 미팅' 즉 국민패널들의 질문만으로 이뤄진다는데 누구 이 질문 하는 사람 없으려나.

어쩌면 이명박 후보만의 문제가 아닐지도 모른다. 각 대선 후보들을 모아놓고 초등학교 때 보는 '받아쓰기' 시험을 실시해보면 다들 몇 점이나 받을지 알 수 없다. 대선 후보들끼리 서로 딴소리나 하고, 국민들의 질문과 요구도 못 알아듣고 딴청을 피우기 일쑤니 아예 한국어능력시험을 보게 하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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