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800만 관객을 동원하며 돌풍을 일으켰던 곽경택 감독의 영화 <친구>가 MBC 드라마 <친구, 우리들의 전설>(이하 드라마 <친구>)로 돌아왔다.

문제하나 내고 시작하자. “가로안의 ‘OOO’, ‘OOOO’을 맞춰라~!”

드라마 <친구>의 한동수 역을 맡은 현빈은 인터뷰에서 “무엇보다 OOO이 없어서 ‘정말’ 좋았다. 어떤 신이든 시간을 충분히 갖고 촬영할 수 있었다. 이전에는 해보지 못한 경험이었다”라고. 또 이준석 역을 맡은 김민준은 “OOOO이라 리얼하게 리허설을 할 수 있었고 시간적으로도 굉장히 많이 준비를 할 수 있었다. 동선 하나하나까지 리허설을 완벽하게 했기 때문에 막상 찍을 때는 감독님의 별다른 디렉션이 없어도 원활하게 촬영이 진행됐다. 배우들이 잠을 못자 눈이 안 떠지거나, OOO이라 앞뒤 상황을 모르고 촬영하는 일이 없었죠”라고 말했다.

▲ 6월 27일 첫방영되는 MBC 드라마 '친구'ⓒMBC

세 글자 OOO의 정답은 ‘쪽대본’이고, OOOO의 답은 ‘사전제작’이다. 이쯤 되면 어떤 이야기를 하려는지 감이 오지 않나. 바로 사전제작이야기다. 드라마 <친구>는 100% 사전제작을 앞두고 있다. 사실 한국 드라마 계에서 쪽대본은 제작의 관행이요, 사전제작은 그야말로 실현할 수 없는 꿈이자 숙제와도 같았다. 물론 많은 시도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리고 드라마 <친구>와도 같이 100% 사전제작으로 방영된 드라마들도 있었다. 그렇다면 <친구>가 100% 사전제작이라고 해서 주목될 이유가 없는 거 아닌가? 그러나 전혀 그렇지 않다.

그래서 준비했다. ‘사전제작’이란 이름으로 시도되거나 제작됐던 드라마들의 이야기를. 사전제작 드라마에 대한 이론적인 논의들은 식상하니 지금까지 나왔던 사전제작 드라마들을 통해 <친구>의 사전제작이 왜 다시 주목받는지를 살펴보자는 거다. (더 많은 사전제작 드라마들이 있었으나 한국 드라마 상 사전제작에 있어 중요한 포인트가 되는 작품들만 선정했다.)

그동안 사전제작된 드라마들, ‘다모’에서 ‘2009공포의외인구단’까지

◇2003년 MBC 드라마 <조선여형사 다모(茶母)> : “아프냐, 나도 아프다”를 기억하는가. 2003년 MBC에서 방영된 <다모>. 한국 드라마의 사전제작 역사에서 MBC 드라마 <다모>를 빼고 설명할 수는 없다. 하지원, 이서진, 김민준 주연의 <다모>는 한국 드라마 상 첫 번째로 사전제작을 시도한 것으로 보는 견해가 많기 때문이다.

▲ '다모'ⓒMBC
‘다모폐인’을 만들 정도의 큰 인기를 모았던 <다모>는 연기자들의 자연스러운 연기와 탄탄한 스토리도 큰 호응을 얻었지만 무엇보다도 화려한 영상도 그 인기에 한몫했다. 그런데 어떻게 이런 평가들이 가능했을까? 그 영상미의 비밀은 고화질(HD) 카메라 촬영과 완성도를 높이기 위한 컴퓨터 그래픽 작업에 있었다. 당시 제작진은 5분의 영상을 꼬박 1박2일의 시간을 들여 컴퓨터로 보정하는 작업들을 진행했는데 그것을 가능하게 했던 것이 바로 사전제작이었다. 사전제작으로 드라마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한 시간을 번 셈이다.

그러나 아쉽지만 <다모>의 경우 쪽대본은 없었지만 종방영이 되는 날까지 촬영을 강행할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다모>가 100% 사전제작이 아닌 50%의 사전제작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실망할 필요는 없다. 한국 드라마 상 사전제작의 첫 시작이 좋지 않은가. <다모>는 확실하게 작품성을 인정받았고 시청률도 그를 따라줬으니.

◇2006년 MBC 드라마 <내 인생의 스페셜> : 김승우, 명세빈, 신성우 주연의 MBC 드라마 <내 인생의 스페셜>도 한국 드라마의 사전제작에 있어 큰 의미를 가진다. 100% 사전제작 드라마가 전파를 탄 첫 번째 드라마이기 때문이다.

▲ '내 인생의 스페셜'ⓒMBC
당시 엄태웅, 에릭, 한지민 주연의 MBC 드라마 <늑대>가 있었다. 그러나 드라마 촬영도중 에릭과 한지민이 스턴트맨의 차량에 치이는 사고가 발생해 큰 부상을 입었고, 드라마는 3회까지 방영된 상태에서 제작이 무산됐다. 물론 후속작품은 아직 준비가 안 된 상황이었다. 이 때 등장한 것이 <내 인생의 스페셜>. 이 드라마는 2005년 5월 촬영에 들어가 100% 사전제작됐으나 방송사를 잡지 못하다가 비로소 <늑대>의 대체작으로 2006년 1월 MBC에서 방영될 수 있었다.

대체작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내 인생의 스페셜>에 대한 시청자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연기자들의 자연스러운 연기는 호평을 받았고 완성도 역시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사전제작 당시 12부작으로 제작됐던 <내 인생의 스페셜>은 MBC에서 8부작으로 편성되어 압축 편집되는 비운을 겪어야만 했다. <늑대>의 대체작으로 들어온 드라마기에 그 기간만을 허락받았던 것이다.

100% 사전제작된 <내 인생의 스페셜>이었지만 방영되는 과정에서 편집돼 사실상 사전제작의 의미가 퇴색됐다. 그 결과 시청자들은 중간 중간 인물들의 관계가 이해되지 않는다는 불평들을 들어야 했다.

◇2008년 SBS 드라마 <비천무> : 2008년 2월 SBS에서 100% 사전제작 드라마가 편성됐다. 김혜린 작가의 만화를 원작으로 한 주진모, 박지윤, 김강우 주연의 무협드라마 <비천무>가 그것이다. 이 드라마로 사전제작 드라마의 제작시스템의 보완이 절실하다는 논의들이 진행되기에 이르는데.

▲ '비천무'ⓒSBS
<비천무>가 문제된 것은 너무 오래 묻혀 있었다는 데 있다. 2004년에 제작이 시작됐으나 2008년에야 방영기회를 잡을 수 있었던 것이다. 세월 이기는 장사 없다고 국내 최초로 중국에서 올로케이션으로 촬영돼 시청자들의 관심을 촉발시켰던 <비천무>였으나 3년이란 공백을 이겨내진 못했다. 2004년의 액션연기와 영상기술이 3년 동안 높아진 시청자들의 눈을 끌어당기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실제 방영당시 시청자들은 액션이 ‘어색하다’고 지적했다. <비천무>는 24부작으로 제작됐으나 시청률의 저조로 결국 14부로 축소돼 종영됐다.

또한 주인공이었던 박지윤은 <비천무> 방영당시 활동이 뜸했던 터라 ‘박지윤’이 누구냐는 이야기도 들어야 했다. 제작이 끝난 뒤 바로 편성 방영됐다면 그 평가가 크게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2008년 SBS 드라마 <사랑해> : SBS가 2008년 다시 100% 사전제작 드라마를 편성했다. 이번에는 허영만 작가의 만화를 원작으로 한 안재욱, 한지혜, 환희 주연의 <사랑해>가 그것이다.

▲ '사랑해'ⓒSBS
이 드라마는 2007년 9월에 제작됐고, 2008년 1월 29일에 제작이 완료됐으며 방영도 4월 초에 됐다. <비천무>와 다르게 <사랑해>는 제작과 편성의 갭이 적은 케이스다. <사랑해>는 원작의 느낌을 살려 만화 같은 영상을 선보였고 종영 때까지 따뜻하고 유쾌한 드라마라는 호평을 받았다. 또 100% 사전제작돼 일본과 동시에 방영되기도 했다. 그러나 아쉬운 것은 시청률이었다. MBC <이산>이 방영되던 때와 맞물려 편성됐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사랑해>가 그야말로 한국 드라마의 완벽한 사전제작드라마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이 드라마 역시 <비천무>와 같이 방송편성이 확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제작에 들어갔었다. 촬영이 끝나갈 때쯤 SBS 방영이 결정됐고 그 당시에도 방송시기는 못박지 못했었다. 한마디로 묵힐 가능성이 높았다는 말이다.

주인공이 사전제작의 한계를 지적하기도 했다. 안재욱은 사전제작을 높이 평가하면서도 “촬영하면서 시청자들의 반응을 알지 못해 답답했고, 내가 잘 하고 있나란 생각이 들어 힘들었다”고 고백했다. 물론 그의 연기는 도마에 오른 적이 없었고 그의 우려와는 정 반대로 노총각 만화가의 모습을 잘 살렸다는 평가들이 쏟아졌다.

◇ 2009년 MBC <2009외인구단> : <친구>의 전작이기도 한 <외인구단>은 사전제작 드라마 중 최악으로 기록될 것이 자명하다. 당초 20부작으로 기획돼 사전제작되던 <외인구단>은 18회까지 촬영을 마치고 종영 2회분 촬영만 남겨놓은 상황에서 갑작스럽게 16부로 조기종영했다.

▲ '2009외인구단'ⓒMBC
스토리가 꼬이는 것은 당연지사. <외인구단>은 지옥훈련에서 돌아온 외인구단의 활약만을 손꼽아 기다렸던 시청자들이 화가 날 만한 정도의 결말을 선보였다. 마동탁과 오혜성의 대결도 없었고 엄지와의 삼각관계도 해결된 것이 없이 끝나버렸다. 또 외인구단은 플레이오프를 진출하는 것에서 만족해야 했다. 20부까지 가는 것으로 스토리를 전개해오다 갑작스런 조기종영 결정이 어설픈 결말을 낳게 한 것이다.

이에 제작사 그린시티픽쳐스 측은 “사과한다”면서 “가까운 시일 내에 조기종영에 대한 공식적인 해명 및 입장을 공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조기종영에 대해 MBC는 계약자체가 원래 방송횟수의 탄력적인 운용이었다고 이야기를 한다. 그러나 그건 핑계에 불과하다. 또 제작사는 편성 받을 때 방송사의 권력이 우위에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라고 항변할 수도 있겠으나 그 역시 핑계에 불과하다. 어찌됐던 갑작스런 결말로 피해를 입은 것은 시청자들이고 거기엔 MBC도 제작사도 공동책임인 것이다. 이것은 사전제작시스템이 제대로 구축되지 않은 데에서 온 폐해라고 볼 수도 있다.

100% 사전제작으로 돌아온 <친구>를 주목하는 이유

앞서 거론했던 사전제작 드라마들의 복잡한 사정은 100% 사전제작을 들고 나온 <친구>를 주목하게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사전제작시스템만을 따져봤을 때 <친구>는 분명 이전 사전제작드라마보다 진일보했다.

<친구>는 방송편성이 확정되고 나서 제작에 들어갔고, 방영 전 제작을 완료하는 100% 사전제작드라마이기 때문이다. <다모>처럼 시간에 쫓겨 촬영하지 않아도 되고, <내 인생의 스페셜>처럼 가위질 당할 일도 없고, <비천무>처럼 묵힐 일은 더더욱 없으며, <외인구단>처럼 조기종영을 이유로 생뚱맞게 끝날 일도 없을 것이다. 이 정도면 진일보했다고 볼 수 있지 않나. 때문에 사전제작의 장점들이 모두 포함된 드라마라는 것이다.

이것이 내가 드라마 <친구>를 주목하는 점이다. 100% 사전제작이 드라마 <친구>에 미치는 영향을 찾아보는 재미가 쏠쏠할 것 같다. 그동안 주인공 현빈과 김민준은 연기에 있어서 큰 비판을 받지 않았던 배우들이다. 그렇지만 또 그 반대로 아주 큰 칭찬을 받지도 못했다. 그래서 기대된다. 이들이 어떤 연기를 펼칠지. 이것은 영상과 음향, 조명도 마찬가지이며 드라마의 스토리도 포함된다. 재밌지 않나. 100% 깔린 멍석에서 벌일 이들의 한판 놀이가. 그러나 명심하는 게 좋겠다. 여기서 제대로 놀지 못하면 그건 고스란히 그들의 책임이라는 사실을. 쪽대본 없이 찍은 100% 사전제작드라마는 이 또한 의미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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