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전반기 최고의 빅 매치로 꼽히던 기아와 SK의 3연전이 끝났다. 1승1무1패를 나눠가졌다. 무승부가 패로 기록되는 특이한(!) 셈법 때문에 두 팀 모두 1승2패를 한 셈이 됐다.

빅 매치다운 혈전이었다. 최근 2년간 ‘일본에 가도 통하는 전력’이란 평가를 받고 있는 SK는 강팀의 치밀함을 보여줬고, 2000년대 들어 ‘최강의 선발진’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기아의 마운드는 쉽사리 지지 않는 팀 컬러란 무엇인지를 제대로 보여줬다. 1차전 승부가 다소 싱겁게 끝나긴 했지만, 2, 3차전은 모두 연장 12회를 꽉 채워 끝났다. 소름끼치도록 긴 경기였다.

▲ 6월 25일 KIA와 SK의 경기, 12회말 3루수 최정이 투수로 등장하였고, 결국 투수 폭투로 경기는 KIA의 승리로 끝이났다. ⓒ 네이버 스포츠 동영상 캡처
혈전이었다 보니 두 팀 모두 만만치 않은 내상을 입었다. 무엇보다 SK는 보이지 않지만, 무엇보다 강한 전력이었던 포수 박경완을 잃었다. ‘광주구장의 저주’의 완결판쯤 될 박경완의 부상은 기나긴 레이스를 남겨둔 SK에 돌이킬 수 없는 상처로 남을 것이다. 당장에 SK 덕아웃은 투수의 볼 배합에 일일이 사인을 내는 과로에 시달릴 것이다. 박경완의 공백은 ‘끝내기 폭투’로 동반 패배를 이루지 못한 3차전의 결과부터 시작된 셈이다.

기아 역시 쉽사리 지지 않되, 끝내야 할 경기를 끝내지 못하는 찜찜한 팀 컬러를 그대로 노출했다. 잔루 만루가 난무했던 2차전 무승부는 기아 타선의 무내용함을 절감케 한 경기였다. 무엇보다 기아가 아파야 하는 건 되살아난 줄 알았던 한기주가 여전히 신통치 않다는 점이 경기로 입증된 모양새이다. 기아 입장에서 보자면, 3차전은 12회 연장에 가지 말았어야 하는 경기였다. 9회말에 올라온 마무리 투수가 2점차의 리드를 지키지 못하는 팀에게 우승은 너무 사치스런 얘기이다.

그러나 정작 하려고 하는 얘기는 3연전에 대한 총평이 아니다. 다시 한 번, SK의 야구 스타일에 관한 문제이다. 이번 3연전은 SK를 향해 있는 야구 팬 사이트들의 분노가 무엇에 연유하는 문제인지를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2차전 12회 말 기아공격 2사 2, 3루의 상황에서 이종범이 타석에 들어섰다. SK의 투수는 윤길현이었다. 승부를 가늠할 수도 있는 승부처였지만, 이종범과 정면 대결을 하는 듯 보였던 윤길현은, 난데없이 이종범의 갈비뼈를 강타하는 공을 던졌다. 공을 잡은 그립으로 봐서는 실투였다고 믿어야 할 상황이었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프로야구를 상징하는 타자에게 담대한(!) 공을 던져 놓고도 윤길현은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일그러진 표정의 이종범은 순간 투구가 고의적이었다고 판단한 듯 포수를 노려보았다. 물론, 승패를 결정짓는 상황에 서있는 투수가 상대팀 타자에게 고개를 숙이는 행동을 하면 팀 전체의 사기에 영향을 미치고, 모양이 빠질 수도 있다. 그러나 이전에도 SK는 몇 차례 고의성 짙은 빈볼로 무리를 빚은 팀이었다. 상대의 홈에서 가장 결정적인 순간에 등장한 최고의 타자를 향해 어찌되었건 결과적으로 무리한 투구가 됐다면 제스처를 취했어야 했다고 판단되는 상황이었다. 흔한 말로 동업자가 아닌가. 그래도 좋다. 여기까지는 뭐 승부에 몰입하면, 그럴 수도 있다손 치자.

진짜, 문제는 3차전이었다. 앞서 말한 양팀의 한계와 팀 컬러가 이러저러하게 엮이며 이번에도 승부는 예상밖의 연장에 이르렀다. 최근 들어 환상적인 구위를 보이고 있는 곽정철의 활약으로 12회 초 마지막 공격에서 SK는 점수를 내지 못했다. 그리고 12말 마지막 기아 공격에서 SK는 도저히 있어서는 안 될 몹쓸 포지션을 선보였다. 12회 초에 점수를 뽑지 못하면서 SK는 무승부는 패로 셈하는 규정으로 인해 어차피 이길 수 없는 상황이 됐다. 어차피 못 이길 거라면, 기아와의 동반 패배는 큰 의미가 없다고 판단했는지 김성근 감독은 3루수 최정을 투수로 내보내고, 마운드에서 몸까지 풀었던 투수 윤길현을 1루수로 기용했다.

▲ 투수로 등판한 SK 3루수 최정 ⓒ 네이버 스포츠 캡처
황당했다. 눈을 의심했다. 반사적으로 ‘지려거든 곱게 지지 에라이~’라는 말이 튀어나왔다. 최정이 아무리 재능 있는 선수라도 ‘소년장사’라고 불리는 선수를 마운드에 올리는 것은 선수 개인뿐만 아니라 구장을 찾아온 팬과 지루함을 참으며 TV를 시청한 팬들에게 지나친 모욕을 던지는 기용이었다. 투수 엔트리에 들었던 윤길현을 1루수에 기용한 것은 보란듯하다는 생각밖에 안 들게 했다. 경기가 끝나고 기사를 검색해보니, 윤길현이 어깨가 좋지 않았다고 했는데, 그는 어제도 승부처에 나와 이종범을 맞혔던 투수였고, 바로 그 경기에서 몸까지 풀었던 투수였다.

최정은 첫 타자에게 3루타를 맞았고, 다음 타자에게는 볼넷을 주었다. 고등학교 때까지 투수를 봤던 가락이 남아있었는지 제법 빠른 공을 던지긴 했지만, 역시 무모했다. 뒤늦게 상황을 이해한 동거인이 SK가 왜 타자를 투수로 올렸냐고 물었다. 이틀 연속 연장을 오니 엔트리가 바닥난 상황에서의 고육지책이라고 대답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야신’이라 불리는 김성근 감독이 KBO의 불합리한 룰에 초강수의 조롱을 던지고 있다고 생각할 참이었다. 근데, 문제는 바로 그 때였다. 이만수 코치의 얼굴이 잡히더니 SK 내야진이 우왕좌왕하기 시작했다. 포지션을 바꾸나 보다는 해설자의 멘트를 들으며, ‘그럼 그렇지. 아무래도 윤길현을 올리려나 보다’ 했다. 그런데 아니었다. 투수는 여전히 최정 그대로였고, 유격수와 2루수를 내야 왼편으로 몰았다. 이때, 동거인이 소리쳤다. “공포의 외인구단이다!”

그렇다. 좌타자의 밀어치기를 잡아내기 위한 극단적 시프트였다. 져주려고 했던 것이 아니다. 일부러 져주려 했던 것이 아니라면, 동반 패배가 무의미하다고 판단한 것이 아니라면 야신 김성근 감독은 대체 무얼 한 것일까?

이건, 너무 비열하다. 게임을 이렇게 운영해선 안 된다. 최정의 폭투로 기아가 이기는 순간 참을 수 없는 수치심이 몰려왔다. 이런 경기를 보자고 바쁜 시간 쪼개 TV를 붙들고 있었나 싶었다. 어차피 패배한 경기라도 투수를 소모하기 싫었더라도 투수를 마운드에 올렸어야 했다. 그게 아니라 비기는 게 왜 패배가 되느냐를 항의하고 싶었더라면 경기 막판 1, 2루를 비워놓는 상식밖의 지시를 하지 말고 곱게 졌어야 했다.

김성근 감독이 완전히 틀렸다. 이 순간 SK를 향한 조롱과 저주는 온전히 그의 몫이다. 나 역시 그에 대한 호감을 거두련다. 그는 더 이상 신도 뭣도 아니다. 최소한 경기장을 우스개로 만들고, 5시간 가까이 최선을 다한 선수들을 개그맨으로 만들지 말았어야 했다. 12회 초 타석에 들어선 김광현은 ‘무서웠다’고 했다. 패전 투수가 된 최정은 넋이 나간 표정을 지었다. 윤동균 KBO 경기위원은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경기에 이긴 기아 역시 패배자의 모습이었다. 그 흔한 하이파이브조차 하지 않았다. 어떤 야구 기자가 84년의 ‘져주기 게임’ 이후 가장 수치스런 경기라고 썼던데, 나에겐 내가 본 경기 중에 가장 모욕적인 게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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