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가 에드워드 웨스턴은 이렇게 말했다.
“모든 표현매체는 작가로 하여금 매체 자체의 한계를 느끼게 한다.”

아마도 웨스턴이 꼭 집어 말하고 싶은 매체는 사진이었겠지만, 그는 ‘모든 표현매체’로 범위를 넓혔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어떤 매체도 ‘한계 없는’ 것은 없다. 오히려 한계(혹은 경계)는 범장르적인 골칫거리인 동시에, 궁극의 탐구영역으로 인식되어 왔음을 예술사는 증언하고 있다. 표현하지 않는 예술은 없고, 표현은 매체를 통해 드러나며, 적극적이건 소극적이건 모든 표현자들은 도구종속적이다. 자칭타칭 세상의 ‘딴따라’들은 저마다 제 몸에 맞는 도구를 끼고 산다.

고상함을 내팽개친 어떤 시인의 손에 이끌려 대전의 공장에 내려간 건 지난 해였다.

▲ ⓒ 노순택
악기공장은 고요했다. 기계들은 숨을 거두었다. 깜깜했다. 암흑천지였다. 목 잘린 기타가 나뒹굴 거라는 환상을 확인할 길이 없었다. 창문 없는 공장. ‘창문없음’은 바람없음, 햇볕없음의 이음동의어였다. 왜 그랬을까. “우리 사장님은 창문에 ‘딴생각’이라는 글자가 붙어있는 줄 아는 분이었다”고 해고노동자는 쓰게 웃었다. 딴생각하다가 사고 나면 큰일이기에, 노동자를 사랑하고 돈과 음악을 사랑했던 박영호 사장님은 창문을 만들지 않았다. 나무에 사포질을 하고, 휘발성 광택제가 분사되는 공장에 창문 하나가 없었다. ‘딴생각’은 모조리 저격당했다. 전기가 끊긴 창문 없는 공장 안에서, 시인은 내게 사진을 찍으라고 명하였다. 웨스턴의 명언은 이럴 때 변주된다. “사진은 찍새로 하여금, 사진 자체의 한계를 느끼게 한다!” 빛 없는 곳에 사진은 없다. 모든 사진은 빛에게 빚진다. 빛 없는 곳은 찍새에게 대략난감의 늪이다. 이를 어찌할꼬.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때우는 지지리 궁상의 잔대가리를 굴리는 수밖에. 배터리가 닳은 희미한 손전등이 급조되고, 재료운반용 수레가 삼각대를 대신했다. 보였다. 어둠 속에 덩그러니 방치된 미완성 기타들, 먼지 쌓인 작업대, 해를 넘긴 달력, 어디에 쓰는 것인지 모를 온간 재료들들, 손도구들들. 셔터를 오래도록 열어둔 채 기타에 손전등을 비췄다. 어둠 속에 두런두런 오가는 말들마저 렌즈 속으로 기어 들어왔다. 온갖 말들의 요점은 이랬다. “일하고 싶다, 속상하고 야속하고 원망하는 마음 다 묻어두고.”

1973년 성수동에서 자본금 2백만원으로 출발한 (주)콜트악기는 인천과 대전에 공장을 세우고 사세를 확장해 왔다. 회사는 연속흑자행진을 이어왔고, 이는 세계 기타시장의 30%(OEM 포함)를 점유하는 성과로 나타났다. 박영호 사장은 천억원대의 부자가 되었다. 이는 최저임금 수준의 저임금과 산업재해에 시달리면서도 묵묵히 일해온 노동자들의 덕이었다. 하지만 박 사장은 어느 날 공장을 닫았다. 바다건너 값싼 노동력을 찾아, 노조도 없고, 창문도 없고, 딴생각도 없는 지상낙원을 찾아....

해고노동자들은 오늘도 거리에서, 15만볼트가 흐르는 송전탑 위에서, 악기상점 앞에서 피켓을 든 채 ‘한여름의 추위’에 떤다. 딴생각은 없다, 다시 일하고 싶을 뿐.

세상의 기타쟁이들은, 이 사연 알까? 그대들의 도구는, 설운 눈물에 젖었다.

* 이 사진과 글은 <씨네21> 692호에 실렸던 원고를, 다시 게재한 것입니다.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