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대통령은 생전에 공개석상에서 네 번 눈물을 흘렸다. 첫 장면, 1973년 8월 그는 일본 망명 중에 토쿄에서 중앙정보부에 납치되었다. 죽음 직전에서 구사일생으로 살아나 동교동 자택으로 돌려보내졌고, 곧이어 기자회견을 갖던 중 굵은 눈물을 흘렸다. 그 모습을 자서전은 이렇게 전한다. "‘큰 배에 옮겨져 괴한들이 나를 바다 속으로 던지려 할 때는 예수님께 살려 달라 기도를 드렸다’는 대목에서 목이 메었다."

1987년 9월, 그는 망명과 연금생활로 갈 수 없었던 광주 망월동 묘역을 처음으로 찾았다. 두 번째 장면이다. 다시 자서전으로 돌아가자. "나는 즉석연설을 하고 곧바로 5.18 묘역으로 향했다. 연도에는 수많은 현수박이 걸려 있었다. "민주주의여 소생하라." "우리의 눈물을 닦아 주십시오." 광주의 염원이자 광주의 눈물이었다. 망월동 5.18 희생자 묘역 주변에는 수만 명이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5.18 유가족과 부상자들을 껴안고 그냥 울어야 했다. 얼마나 울었던지 그때의 광경이 잘 떠오르지 않는다."

세 번째 장면은 1994년 1월이다. 그는 민주화운동의 평생 동지였던 늦봄 문익환 목사의 장례식에 참석했다. 고인의 영정을 보고 터진 울음은 상주 문성근의 손을 잡고 오랫동안 계속되었다. 그는 고인을 이렇게 기억했다. "신학자로, 목회자로, 시인으로, 통일 운동가로 문 목사는 맑고 곧게 살았다. 분단 국가의 대표적인 양심이며 지성이었고, 한국 현대사의 한복판을 치열하게 살았다. 나는 문 목사와 때로는 의기투합했고, 때로는 의견이 달랐다. 하지만 사람이 주인인 세상을 만들자는 뜻에는 한 치의 어긋남이 없었다."

故 노무현 전 대통령 영결식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이 권양숙 여사의 손을 잡고 울고 있다. Ⓒ연합뉴스

그가 마지막으로 눈물을 흘린 곳은 노무현 대통령의 영결식장이다. 2009년 5월, 처음 서거 소식을 듣고 '내 몸의 반이 무너진 것 같다'고 했던 휠체어 의지할 만큼 쇠약한 몸으로 영결식에 참석했다. 권양숙 여사의 손을 잡고 엉엉 목 놓아 울었다.

노무현 대통령이 우는 모습은 2002년 대선 동영상으로 유명하다. 가히 태풍에 비견되던 지지율이 끝없이 떨어지고, 이른바 후단협의 공세에 시달리던 그해 가을, 그는 지지자들의 응원연설을 들으며 조용히 눈물을 흘렸다. 김대중 대통령은 온 얼굴을 찡그린 채 펑펑 울었던 데 비해 노무현 대통령은 약간 떨린 표정으로 가만히 울었다. 두 사람의 우는 모습이 평소 행동과 반대인 점도 재미있다.

이순신은 무장에 대한 선입관이 무색하게 남도바다 전장 한가운데서 자주 울었다. 전쟁의 무자비함 속에 던져진 백성들의 비참하고 불쌍한 모습을 보고 울었다. 굶주림과 추위에 신음하는 병졸들의 참혹함 앞에서 울었다. 아산에 있던 셋째 아들 면이 왜군에 의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수하 장졸들이 눈치 채지 못하게 혼자 물러나 통곡했다.

울음은 지극히 사적인 감정의 발로이다. 아무리 큰 정치인의 울음도 마찬가지이고, 우리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인물 가운데 한 사람인 이순신의 울음도 같다. 그러나 세 사람의 울음은 사적임과 동시에 지극히 공적이다. 그들이 눈물흘린 곳은 역사의 현장이었다. 그들은 자신만을 위하여 울지 않았다. 민주주의와 백성을 위해서 울었다.

어제 김병준 총리지명자가 기자회견을 했다. 그가 그토록 투철한 사명감과 책임의식을 가진 인물인지 솔직히 몰랐다. 과거 참여정부 시절 큰 꿈을 갖고 정부에 참여했지만 미처 이루지 못한 일들에 대한 아쉬움, 최순실의 국정농단으로 누란의 위기에 처한 나라에 대한 걱정 등을 전하는 그의 말과 표정이 절절하다. 헌법에 규정된 총리의 권한을 100% 행사하겠다는 자신감, ‘내치’는 자신이 전담하기로 대통령과 이야기를 했으므로 각종 현안에 대해 자신의 소신을 굽히지 않겠다는 당당함, 여야 정당과 협의해 실질적인 거국내각을 구성하겠다는 포부에 이르기까지 그의 말과 표정은 현란했다.

김병준 국무총리 내정자가 3일 오후 서울 종로구 통의동 금융감독원 연수원에서 기자간담회 도중 눈물을 보이고 있다. Ⓒ연합뉴스

과연 지금의 정치상황이 김 지명자의 소망을 허락할 만큼 호락호락한지 의문이다. 안타깝게도 김 지명자는 작금의 정치적 맥락에 무지하거나 애써 무시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국정운영의 통제력을 상실하면서 발생한 실질적인 국정공백을 메울 해법으로 제시된 거국내각에는 두 가지 중요한 전제가 있다. 하나는 국회에서 여야합의로 구성해야 한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대통령이 국정에서 손을 떼야 한다는 것이다.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거의 모든 언론의 일치된 의견이다. 박 대통령은 이를 전면 거부한 것이며, 김 지명자는 대통령의 편에 서서 정치권과 언론 전체에 맞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총리인준이 가능할까? 김 지명자 총리 지명 수락은 그의 바람과는 달리 국정공백을 연장시키고 현재의 위기를 짙게 만드는 결과를 낳을 뿐이다. 다시 고백하건대 진짜 놀라운 것은 그의 자신감과 당당함이 아니라 그의 무모함이다.

김 지명자가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면서 울먹이는 모습을 보았다. 뜬금없어 보였다. 그의 울음은 누구를 위한 것일까? 사적인가 공적인가? 다 큰 남자가 사적 울음을 타인 앞에서 흘리는 모습을 보는 일은 썩 유쾌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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