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야 탄핵 여론이 거세지는 상황이지만, 박근혜 대통령은 그저 ‘눈 가리고 아웅’으로 일관하고 있다. 야권은 탄핵소추가 공론화될 때를 대비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내놓고 있을 정도다. 그럼에도 박근혜 대통령은 태도를 바꾸지 않고 있다. 불가사의할 정도다.

박근혜 대통령이 3일 발표한 청와대 인사를 보면 이런 생각이 더욱 확고해진다. 한광옥 신임 대통령 비서실장은 익히 알려진대로 김대중 전 대통령 측과 가까운 인사이다. 지난 2012년 18대 대선에서 동교동계가 새누리당으로 집단 투항(?)하면서 국민대통합위원장을 맡았는데, 실제 무엇을 했는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이러한 인사가 대통령 비서실장이 된 것은 말하자면 ‘생색내기’이다. 김병준 국무총리 후보자와 마찬가지의 원리다. 야권이 요구하는 것은 대통령의 실질적인 2선 후퇴인데 야권의 입맛에 맞을만한 인사를 중용하는 걸로 공격을 비껴가려는 것이다.

신임 대통령 비서실장에 임명된 한광옥 국민대통합위원장이 2일 오전 서울 광화문 집무실에서 소감을 말하고 있다. (연합뉴스)

박근혜 정부의 역대 대통령 비서실장들은 단 한 사람을 빼놓고는 불행한 처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허태열 비서실장은 박근혜 정부 출범 몇 개월 만에 쫓겨났다. 당시 허태열 비서실장 경질을 놓고 이런 저런 ‘설’들이 돌았으나 교체 사유가 명확히 밝혀진 것은 없다. 이제와서 보면 여기에도 비선의 의중이 작용하지 않았는가 추측할 만 하다. 실제로 최순실 씨가 사용한 걸로 추정되는 태블릿을 보면 당시 비서진 교체 계획을 담은 문건 등이 존재한다는 보도가 이미 나왔다.

국정원장 출신으로 기용됐던 이병기 전 비서실장은 제대로 역할을 하지 못해 ‘왕따설’의 주인공이 되기도 했다. 동아일보 김순덕 논설위원이 칼럼을 통해 “이병기 비서실장은 청와대 왕따”라는 풍문을 전하자 실제 국회 운영위에서 이와 관련된 질답이 오가는 웃지 못할 풍경이 연출된 것이다. 그 후임으로 등장한 이원종 전 비서실장은 국회에서 “청와대에 가봐야 할 일도 없는데 여기 앉아있으라”는 조롱까지 당하는 수모를 겪었다. 최순실 씨가 대통령의 주요 연설문 작성에 간여했다는 JTBC의 보도가 나오기 직전 해당 의혹에 대해 “봉건시대에나 있는 일”이라고 말하는 바람에 청와대 돌아가는 사정을 하나도 모르는 사람이 되었기 때문이다.

한광옥 신임 비서실장이 이들의 전례를 따르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한광옥 신임 비서실장은 이원종 전 비서실장 사퇴 직후부터 인사 대상자로 이름이 언급됐다. 뒤집어 말하면 국회 운영위에 외교안보수석이 대리 출석 하는 상황을 방치하면서까지 비서실장 임명이 늦어진 것은 한광옥 신임 비서실장 외의 인사들이 더 중요하게 고려됐다는 점을 의미한다. 이런 맥락이라면 과연 한광옥 신임 비서실장이 이병기 이원종 전 비서실장의 전철을 밟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실제 현 시국의 통제는 청와대의 공식 직함을 갖고 있는 인사들의 의지와는 별 관계없이 작동하고 있다. 김병준 총리 후보자 지명에 대해 황교안 총리는 물론 여권의 모든 인사들이 사전에 연락을 받거나 내용을 공유한 바 없다는 증언을 하고 있다는 게 대표적이다. 심지어 황교안 총리는 곧바로 이임식을 예정했다가 취소하는 황당한 지시를 할 정도였다. 항의성 사표를 썼다가 거둬들였다는 얘기도 돈다. 자기가 경질된다는 것을 언론 보도를 통해 알았다면 분노하지 않을 수가 없을 것이다.

김병준 총리 후보자의 인선 자체는 지난 주말 여당 지도부가 건의한 사항이라고 한다. 애초에 언론을 통해서도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비대위 대표, 손학규 전 의원과 함께 이름이 보도됐을 정도이니 이러한 보도는 사실일 것이다.

그런데 그렇다 해도 ‘최종 결정’이 누구에 의해 어떤 과정을 거쳐 이뤄졌는지는 여전히 베일에 싸여있다. 김병준 총리 후보자 지명이 발표되던 시점에 새누리당 지도부는 이정현 대표의 사퇴 여부를 놓고 수준 낮은 입씨름을 벌이고 있었다. 문제제기의 총대를 맨 새누리당 정병국 의원은 총리 후보자 지명 발표 직후 이럴 거면 뭐하러 우리가 입씨름을 벌이고 있느냐는 자조섞인 한탄을 할 정도였다. 더군다나 이때는 대통령 비서실장, 정무수석 등도 공석이었다. 청와대 인사수석도 몰랐다고 하니 결론은 대통령 혼자 아침에 일어나 결심했다는 얘기가 되는데, ‘비선 실세’가 귀찮아 할 만큼 모든 일을 물어봤다는 박근혜 대통령이 과연 그렇게 했을지는 의문이다.

그러니 김기춘 전 비서실장에 의심의 눈초리가 쏠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김기춘 전 비서실장은 재임 중에도 유일하게 ‘문고리 3인방’ 등과 사이가 좋았던 인물로 알려져 있다. 최순실 씨의 귀국 직후 수많은 언론이 ‘김기춘 배후론’을 보도했고 조선일보 마저도 김기춘 전 비서실장과 새누리당 최경환 의원이 막후에서 대응 방향을 조율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만일 김기춘 전 비서실장이 사태에 개입하고 있다면 이는 또다른 비선실세 논란을 불러일으킬 만한 사안이다. 아무런 공식적 직책이 없는 사람이 총리 및 청와대 참모진 인사, 검찰 수사 상황, 기타 정국 운용 등에 전면적으로 개입하고 있다는 얘기가 되기 때문이다. 김기춘 전 비서실장도 이걸 모르지 않기 때문에 2일 ‘박정희 대통령 탄생 100주년 기념사업 추진위원회’에 참석한 자리에서 세간의 의혹에 전부 모르쇠로 일관했다.

그러나 누군가 검찰을 통제하지 않으면 벌어질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어 의혹은 더 짙어지고 있다. 검찰은 2일 최순실 씨에 직권남용 혐의를 적용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최순실 씨가 공무원 신분은 아니나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과 공모한 혐의라는 것이다. 한겨레 등 언론은 이를 ‘봐주기’로 해석하고 있다. 직권남용은 상대적으로 형량이 적고 재판에서 유죄로 인정되는 경우도 많지 않다는 것이다. 특히 검찰이 제3자뇌물수수 등의 혐의를 피해간 것은 결정적이라는 평가다. 검찰은 대기업들이 미르 K스포츠재단에 출연한 돈에 대해 앞으로도 뇌물로 판단하지 않겠다는 입장인 걸로 전해진다.

즉, 모양만 요란했지 실속은 없는 ‘눈 가리고 아웅’식 수사를 진행하고 있는 것이다. 안종범 전 수석이 박근혜 대통령에게 지시를 받은 것에 불과하다고 주장한 것도 마찬가지다. 이 증언을 통해 안종범 전 수석은 제3자뇌물수수 혐의를 피해갈 수 있는 법적 발판을 마련하게 됐다. 언론은 이 증언으로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검찰 수사가 불가피해졌다고 쓰고 있다. “대통령은 수사할 수 없다는 게 다수설”이라던 김현웅 법무부 장관은 3일 국회에 출석해 필요한 경우 대통령에게 수사를 자청하라고 건의하겠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비서관이 2일 오후 서울 서초동 중앙지검으로 들어서고 있다. (연합뉴스)

그런데 이 모든 상황을 반영해도 확인할 수 있는 결론은 결국 대통령이 자청해야 검찰이 수사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대통령이 응하지 않으면 검찰의 수사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얘기다. 안종범 전 수석이 ‘대통령’을 언급해 법적 책임을 피하고, 대통령은 자신에 대한 수사에 동의하지 않으면 남는 것은 결국 ‘솜방망이’ 밖에 없게 된다.

이게 안종범 전 수석이 마음놓고 ‘대통령이 시켜서 한 일’이란 취지의 주장을 내놓고 있는 배경일 수도 있다. 안종범 전 수석은 앞서 김기춘 전 비서실장과 함께 언급된 새누리당 최경환 의원과 가까운 사이로 알려져 있다. 두 사람은 1985년부터 1991년까지 미 위스콘신대학에서 함께 수학했다. 최경환 의원이 경제부총리로 임명될 당시 1기 경제팀을 책임졌던 조원동 경제수석을 유임하자는 주장에도 불구하고 굳이 비례대표 국회의원이던 안종범 전 수석을 청와대에 입성토록 했다는 것은 이제 유명한 이야기다. 즉, 안종범 전 수석은 대통령을 배신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으나 여전히 최경환 의원을 통해 ‘통제’되고 있을 가능성도 크다는 거다.

물론 검찰의 대통령 수사가 현실화될 수도 있다. 그러나 결국은 이 역시도 누군가 배후에서 조율하는 상황 속에서 진행될 것이다. 요란하고 화려하지만 실속은 없는 결론은 이미 예정되어 있다. 그러니 거리의 시민들이 하야와 탄핵 요구를 더 강하게 외치는 수밖에 없다. 거리의 외침은 야권의 주요 대권주자들까지 직접 하야 요구를 언급하도록 만들고 있다. 새누리당 내 비박계 인사들까지 “대통령이 일부러 야당이 하야를 요구하도록 의도하고 있는 것 같다”고 할 정도이다. 결국 이 역시 어떤 ‘큰 그림’ 안에 있을 수 있다는 얘기지만 시민의 요구가 한도를 넘으면 이러한 계산도 무력해진다는 건 자명한 사실이다. ‘눈 가리고 아웅’으로 이 상황을 넘길 수 없다는 걸 보여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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